[정주영 100년 유산] "자동차는 혈관의 피" 예견…韓 산업 핵심 자리매김
자동차 후발주자임에도 독자 기술 확보 노력
최초 대량 양산형 고유모델 '포니' 개발 성공
아반떼 국산화율 99.9% 달해…수출 역군 성장
창업주 정신 이어 '종합 모빌리티 기업' 탈바꿈
![현대 포니 1호 생산 기념식 [출처=현대자동차그룹]](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552778-MxRVZOo/20260318152704942lgri.jpg)
올해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이 태어난 지 111년이 되는 해이자 지난 2001년 3월 21일 86세로 별세한지 25년이 된다.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한국 산업이 형성되고 확장된 100년의 시간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정주영은 건설로 기반을 세우고, 자동차와 조선으로 수출 제조국의 길을 열었다. 도로와 항만, 공장과 조선소를 직접 세우며 산업의 골격을 만들어낸 그의 선택은 단순한 기업 확장이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결정이었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제조·수출 중심 경제는 이 같은 결단과 실행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유산은 지금도 새만금과 같은 미래 산업 현장에서 형태를 바꿔 이어지고 있다. EBN은 '정주영 100년 유산' 기획을 통해 한 기업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한국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다시 짚어본다. <편집자 주>
◆자동차 독자 개발 위한 여정
정주영 창업회장은 국가를 사람의 신체로 비유했을 때 도로는 혈관, 자동차는 그 속을 흐르는 피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동차가 사람과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핵심이자,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을 이끌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수많은 정 회장의 발언 중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 명언은 현대차그룹의 기업 철학이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공업사로 자동차 수리업을 하다가,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독자 모델 개발을 선언했다. 당시 부자들의 사치품이었던 자동차가 언젠가는 국가의 대표 이동 수단이 될 것이라고 봤고, 일제와 미국 자동차 부품을 받아 조립하는 사업만 한다면 결국 대한민국은 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내부 반발이 심했다. 자동차 제조 기술력이 전무한 데다가, 막대한 투자를 해도 프로젝트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외부에서도 현대차에 기술력 제휴를 맺으려는 기업이 전무했다.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정 회장은 자신의 자동차 독자개발 포부를 측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정 회장은 "외국차 조립생산은 속 빈 강정이다. 당장은 편하고 안전할지 몰라도, 차종은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중요한 부품은 그들이 정하는 값에 사야 한다. 수출 시장 진출도 마음대로 못한다"며 "자동차는 일종의 바퀴 달린 국기다. 좋은 차를 만들어 세계 여러 나라에 팔면 자동차가 굴러다니면서 한국의 기술과 공업 수준을 세계에 선전하고 다닐 것"이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결국,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을 포함한 현대차 엔지니어 다섯 명이 이탈리아로 갔다. 유럽 본고장에서 밑바닥부터 기술을 배워오라는 정 회장의 특명이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기술자가 설계·디자인을 하는 걸 닥치는 대로 들여다보고 적었다.
![정주영 창업회장 [출처=현대자동차그룹]](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552778-MxRVZOo/20260318152706252sote.jpg)
◆현대차, 국가대표 수출 기업으로
정 회장의 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포니를 대량 생산해 전 세계에 수출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또다시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주한 미국대사가 직접 정 회장을 만나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라며 압박했다.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포니가 토리노 자동차 쇼에서 호평받았다 해도, 자동차 회사는 최소 50만대 규모의 생산량이 뒷받침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일인당 국민 소득은 몇천 달러에 불과해 내수 시장을 기대해선 안 된다. 수출 시장도 다른 공산품과 달리 장벽이 높다. 거기다가 100년 가까이 기술과 명성을 축적한 기라성 같은 선진국 자동차 회사가 버티고 있다"며 "독자 개발을 포기한다면 포드, GM 크라이슬러든 현대가 유리한 조건대로 조립생산을 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 자동차 기업 수장에 자동차 독자 개발을 포기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차분하고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도로가 발달하고 그 위를 자동차가 원활하게 다니면 그 나라의 경제가 생동력을 가지고 발달할 수 있다"며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값싸게 공급하는 것은 인체에 좋은 피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소년기다. 자동차 공업의 발전을 그만큼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내가 돈을 모두 쏟아붓고 실패한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그렇게 포니는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당시 판매가는 약 230만원. 전문직 월급의 23배 수준이었지만, 국내 출시 첫해에 1만726대가 팔리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포니는 이후 중남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60여 국으로 수출됐다. 울산 공장의 생산능력은 연 10만대, 30만대로 점차 증설됐다.
포니의 성공은 현대차가 글로벌 톱3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바탕이 됐다. 국산차 중 처음으로 세계 판매량 1000만대를 기록한 현대차의 대표 수출 아이콘 '아반떼' 2세대는 자체 개발한 엔진을 탑재하는 등 부품 국산화율이 99.9%에 달했다. 사실상 완전한 부품 국산화율을 달성한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V8 타우(Tau) 엔진은 2009년 미국 워즈오토가 선정한 세계 10대 최고 엔진에 이름을 올렸다.
![포니를 비롯해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개최된 '포니의 시간' 전시 오프닝 겸 '리트레이스 시리즈' 출간 기념회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발표하고 있는 모습 [출처=현대자동차그룹]](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552778-MxRVZOo/20260318152707524vaai.jpg)
◆현대차그룹, 글로벌 톱3 기업 넘어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
정의선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창업회장의 정신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어간다. 교통약자도 차별받지 않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게 하겠다는 담대한 목표에 따라 현대차그룹을 자동차 제작사에서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도심항공모빌리티(UAM), 휴머노이드 로봇 등 로보틱스 관련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창업주와 똑닮아 있는 점은 모두 독자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테슬라와 엔비디아 출신의 박민우 현대차 사장을 영입한 현대차그룹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의선 회장은 오토모티브 뉴스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이신 정주영 창업회장은 항상 '시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사람을 중시하셨다. 창업회장은 고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며, 고객의 의견을 경청하고 화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확신했다"며 "창업회장의 고객 중심 경영철학은 지금 현대차그룹 핵심가치의 근간이 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아버지이신 정몽구 명예회장은 선진 시장, 신흥 시장을 불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의 기회를 끊임없이 탐색했고 성취를 거두셨다"며 "품질, 안전, R&D에 대한 신념은 현대차그룹의 경영철학에 깊이 각인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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