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노인 냄새…옷은 갈아 입으세요?”…고선웅이 비튼 셰익스피어, 이번엔 ‘리어왕 외전’
극단 마방진 20주년 연극 릴레이
![연극 ‘리어왕 외전’에서 리어왕 역을 맡은 배우 이영수 [옐로밤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ned/20260318150106566stmj.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슨 냄새야 이건? 며칠 전부터 계속 메슥거리던 게 다 이 냄새 때문이었네. 갈아는 입으세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큰딸 거너릴이 정내미가 떨어진다는 듯 리어에게 앙칼지게 덤벼든다. 두꺼운 옷을 뚫고 노인 냄새가 난다고 경멸하고, 양치를 안 해 입냄새가 난다고 타박한다. 원하는 것을 얻어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나, ‘부양의 짐’이 만만치 않다. 고약한 말들만 쏟아내는 거너릴은 그 어떤 아침 드라마 속 악녀 캐릭터보다도 모질다.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단 마방진의 연극 ‘리어왕 외전’이다.
거너릴 역을 맡은 강지원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연기한다”며 “뉴스를 보면 거너릴보다 악한 사람이 많고, 자녀로서도 부모를 이렇게 대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420년 전 고전 ‘리어왕’은 일종의 예견서였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며 돌봄이 굴레가 된 시대의 초상이 리어와 거너릴의 짧은 한 장면에 담겼다. 애초 효심보단 부동산 쟁탈전에 눈이 멀어 ‘부양’을 자처했으나, ‘돌봄의 피로’에 갇힌 거너릴은 오래 가지 못해 폭발한다.
강지원은 표현 방식은 다를 지라도 부모님의 나이 듦을 마주하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봤다. 그는 거너릴의 대사는 나이가 들며 나타나는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도 겪어왔던 일이기에 대사 한 줄 한 줄을 확장하고 있다”며 “늙음을 겪는 것은 공감하면서도 작품 안에선 자녀의 감정을 조금 더 나쁜 쪽으로 몰아가니 관객들의 입장에선 조금 마음에 찔린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리어왕 외전’이 6년 만에 돌아온다. 극단 마방진이 2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수용 시설의 난으로 그린 ‘칼로 막베스’에 이어 선보이는 연극 열전의 두 번째 작품. 딸들의 사랑을 테스트해 ‘땅 나누기’를 하는 늙은 왕 리어의 비극과 서자 에드먼드에게 속아 적자 에드가를 버리는 글로스터의 비극이 엮인 원작은 시대를 막론하고 공유되는 ‘고전’이다.
![연극 ‘리어왕 외전’에서 글로스터 역을 맡은 배우 정웅인 [옐로밤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ned/20260318150106852obhb.jpg)
개막을 앞두고 서울 성신여대 미아운정그린캠퍼스의 연습실에서 만난 배우들은 한바탕 놀이하듯, ‘리어왕’을 가지고 논다. 고선웅 연출가가 그린 ‘리어왕 외전’은 고전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고, 다른 시각을 입혀 동시대 연극으로 매만졌다.
고 연출가는 “익숙한 ‘리어왕’의 서사를 가져오되, 이를 비틀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외전’이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리어왕’이라고만 하면 ‘저게 무슨 리어왕이냐’는 지적이 있을 것 같았다”면서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했다.
‘리어왕 외전’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시대 간의 연결고리’로 무대에서 움직였다. ‘외전’은 원작의 스토리를 비틀어 결론도 달라졌다. 딸들에게 버려진 리어, 아들에게 배신당한 글로스터는 결국 죽음을 맞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인생은 깨달음의 연속이며,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 연출가는 “‘리어’는 어찌 보면 막장 비극인데, 코델리아가 살해되고 리어왕이 응징받아 상처를 입고 결국 충격에 죽는 원작의 마무리가 탐탁지 않았다”며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코델리아와 에드가의 서사를 연결해 다음 세대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연극엔 상징적 장치가 많다. 리어왕과 글로스터의 비극 서사가 핵심을 이루는 만큼, 고선웅 연출가는 두 사람의 캐릭터 해석에도 공을 들였다. 지나치게 비장하고 내내 어두운 정서로 휘감은 원작과 달리 ‘리어왕 외전’은 적절한 무게에 해학을 버무렸다. 판소리도 창극도 아니지만, 골계미와 과감한 서사의 신축(이야기 전개를 자유롭게 늘리거나 줄이는 창작·전승의 핵심 기법)이 눈에 띈다.
![연극 ‘리어왕 외전’ [옐로밤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ned/20260318150107124qzmm.jpg)
허구헌날 탄식하며 자신의 선택을 자책하는 리어왕은 이러쿵 저러쿵 읊조리는 대신 조용필의 ‘허공’으로 심경을 녹여낸다. 고 연출가는 “원작에서 리어왕의 탄식과 개탄이 너무 많아 관객이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판단했다”며 “관객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다 목격했기에 굳이 필요한 신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리어왕을 연기하는 이영석은 배우 인생 처음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는 “극 중반 기저귀만 차고 ‘허공’을 부르는 장면이 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어서 아주 어려웠다”며 “춤도 춰야 해서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무릎에 통증이 있어서 아프지 않게 춤추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며 웃었다.
내내 처절하고 심각해 이 작품에서 ‘비극의 인간화’를 몸소 보여주는 글로스터의 삶은 설운도의 ‘나침반’으로 치환한다. 글로스터 역할을 맡아 고선웅 연출가와 처음 호흡을 맞추는 정웅인은 극단과 고 연출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보고 너무 좋아 쫑파티까지 쫓아갔다”며 “그동안 매체와 무대를 해왔지만, 마방진과 고선웅 연출님을 지금 만난 것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60~70세가 돼서도 무대에 설 수 있는 토대를 고선웅 연출님을 만나 닦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 ‘리어왕 외전’ [옐로밤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8/ned/20260318150107417dcti.jpg)
원작 속 궁정 광대는 ‘거북이’로 대체된다. 고 연출가는 “원작에서 궁정 광대는 현명함을 잃은 리어왕에게 아주 멋진 문장으로 조언해 주는 역할”이라며 “듣다가 지칠 정도로 대사가 많은데 매력적인 몇 문장만 남겨 리어왕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거북이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리어(Lear)가 끄는 리어카(Rear-car)는 물러나는 세대의 처절한 유물이자, 폐지를 주우며 연명하는 이 시대 노인들의 메타포이면서 언어유희다. 왕관 대신 리어카를 끄는 리어의 모습은 권력을 잃은 왕의 몰락보다, 쓸모를 다해 버려지는 노년의 현실을 더욱 아프게 파고든다.
‘리어왕 외전’은 원작이 써 내려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따라가되 고전이 품은 이야기를 현대적 관점으로 되짚는다. 고 연출가는 “12년 전 초연 당시 설 명절 기간에 중국에서 자식이 여섯이나 되는 80대 노인이 3박 4일간 아파트 난간에서 노숙을 한 사연에 관한 뉴스를 보며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어반복이 되는 시대라는 점에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다. 가치 판단이 부재하고 마비된 현대인의 초상은 리어와 글로스터를 통해 다시 보여준다. 고 연출가는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 눈은 있지만 판단력이 흐려 보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리어왕의 문제적 세 딸을 바라보는 이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의미를 품었다. 코델리아 역을 맡은 이지현은 “고령화 사회에 맞는 이 이야기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며 “요즘엔 다정함이라는 것이 많이 결여돼있다. 이 무대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의 다정함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거너릴 역의 강지원은 “나이 듦에 관해 생각하게 되는 연극이다. 현명하게 나이 드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리이건 역의 조한나는 “리이건은 코델리아를 편애하는 아버지를 향한 애정 결핍이 뭉쳐있는 캐릭터”라며 “부모와 자식은 물론 모든 사랑의 정도차, 그로 인한 결핍이 어떤 일까지 만들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사랑을 생각하는 연극”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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