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도 재미도 모두 잃은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자 수 20년 새 70% 급감

유진우 기자 2026. 3. 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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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1790만 명 시청
전년비 9.1% 감소
20년 새 70% 급감
플랫폼 지각 변동에 위상 흔들

미국 영화 산업계 최대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는 시청자 수가 20여 년 전 화려했던 전성기와 비교해 7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오스카 트로피가 곧 극장 흥행을 담보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세계 최고 권위라는 영예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KPop Demon Hunters'의 'Golden'으로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한 EJAE, 마크 손넨블릭, 곽중규, 이유한, 남희동, 서정훈, 테디 박.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각)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15일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청자 수가 179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970만 명보다 9.1% 줄어든 수치다.

장기적인 시청률 통계 추이를 보면 아카데미 시상식에 닥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 거장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화 타이타닉으로 작품상을 거머쥐었던 1998년 당시 텔레비전 시상식 시청자 수는 5700만 명을 기록했다. 이후 대중 관심이 서서히 식어가며 2014년 4370만 명으로 내려앉더니, 2018년 처음으로 3000만 명 아래인 2650만 명을 기록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에는 1040만 명까지 곤두박질치며 역대 최저치를 썼다. 20년 만에 절대 시청자 수가 70% 가까이 빠져나가며 끝없는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올해 행사는 예전처럼 방송 사고나 논란을 빚을 만한 농담 없이 차분하게 흘러갔다. 시상 결과에서도 이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또 영화 ‘시너스’는 4개 부문에서 트로피를 안았다. 시상식 직전 각종 전문 예측 매체가 한목소리로 내놓은 전망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 시상식에서 대니 후지카와가 케이트 ​​허드슨, 데미 무어, 엠마 스톤, 데이브 맥커리 등과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할리우드 산업 전문가들은 예측 가능한 수상 결과와 밋밋한 행사 분위기가 시청자 이탈을 불렀다고 했다. 영화 팬들은 누가 트로피를 차지하는지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 위에 모인 스타들이 보여주는 팽팽한 신경전이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 인터넷 공간에서 밈(meme)으로 소비할 만한 단편적인 화젯거리나 신선한 수상 소감에 반응한다.

이전 아카데미 시상식 황금기 시절에는 당일 뚜껑을 열 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과 확인을 넘어서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연초부터 시작하는 골든글로브와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BAFTA)를 거치며 굳어진 수상 흐름을 최종 확인하는 의례적인 자리라고 평가했다.

미국 사회에 퍼진 첨예한 이념 갈등과 정치적인 피로감도 대중을 할리우드에서 멀어지게 만든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할리우드 스타들이 소수인종 문제나 환경, 정치적 신념을 거침없이 대변하는 주요 창구 역할을 충실하게 맡았다. 이들이 무대에서 던지는 강경한 정치적 발언이나 돌발 행동은 뉴스 일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일시적으로 시청률을 높였다.

하지만 시상식을 거북한 정치 선전장으로 바라보는 보수 성향 시청자들은 이런 성향이 짙어지자 줄줄이 이탈했다. 대중들도 올해 행사처럼 시상식이 평화롭게 치러지면 심심하다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반대로 논란 수위가 선을 넘으면 큰 반감을 품고 시상식과 관련 기업을 아예 보이콧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인근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 행사장 밖을 경찰 K-9부대가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청 플랫폼 다변화 또한 아카데미가 가진 전통적인 권위를 해체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비롯한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면서 사람들은 과거처럼 텔레비전 앞에 정해진 시간에 모여 긴 시상식을 지켜보는 번거로운 수고를 감수하지 않는다. 이들은 좋아하는 배우 하이라이트 영상이나 소셜미디어에 짧고 강렬하게 올라온 수상 장면만 골라 시청한다.

루크 하워드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권위 있는 거대 기관이 일방적인 잣대로 가치를 매기는 방식을 강하게 거부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이런 시대적 변화가 시상식 전반에 걸친 시청률 하락을 이끌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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