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실험영화로 만나는 검열의 시대, 그리고 오늘
하얀천 통해 판옵티콘 구조 형성
실험영화 선구 한옥희 감독 작품
봉준호 감독 대학 초기시절 영화
亞 전쟁·이주·폭력 풀어낸 작품도
광주극장·영화마을 구현 '볼거리'

영화라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역사, 그리고 기억을 공간 전체로 확장해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펼쳐진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전당장 김상욱)이 19일부터 9월27일까지 복합전시2관에서 아시아 실험영화의 흐름을 집약한 대규모 전시 ‘ACC 필름앤비디오-아시아의 장치들’을 선보인다.

특히 입구 상부에 연출된 하얀 천은 이번 전시의 상징적 장치다. 이는 영화 스크린의 경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과거 실험영화들이 검열을 피해 몰래 상영되던 시절의 이동 영사 분위기를 복합적으로 재현한다. 관객들은 하얀 천을 따라가며 거대한 감시 탑을 연상시키는 ‘판옵티콘’ 구조의 전시장 내부로 발을 들이게 된다.

1층은 아시아 여성 서사로 출발한다. 그동안 역사에서 소외되거나 지워졌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실험영화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한옥희 감독의 작품이 핵심이다.
한 감독은 1970년대 보수적 유신체제 속에서도 여성 영화인의 창작과 실험영화 제작, 상영 활동을 선도한 개척자다. 특히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실험영화집단인 ‘카이두 클럽’의 리더로서 여성 영화인의 창작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시각예술 실험을 주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ACC가 감독의 자택에서 직접 발굴·복원한 1975년작 ‘세 개의 거울’을 포함해 총 6편이 공개된다. ‘카이두 클럽’의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돼 당시의 활동과 맥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관람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대목은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노란문’이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 시절 활동했던 영화 동아리 이름을 딴 공간으로, 그 안으로 들어가면 봉 감독의 첫 작품인 ‘백색인’을 감상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공간은 광주극장 재현 구역이다. 실제 광주극장에서 사용하던 의자, 35㎜ 필름, 영사기, 손간판 등을 그대로 옮겨와 지역 영화사의 기억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매일매일 관객 수를 손으로 기록했던 꼼꼼한 관리 대장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함께해온 극장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2층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 아시아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다룬다. 다양한 국가의 작가들이 전쟁, 검열, 이주, 폭력 등의 주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이어진다. VR을 활용한 교도소 독방 체험 작품, 애니메이션, 다채널 영상 설치 등 매체적 실험도 두드러진다.

전시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3층 공간은 파노라마 풍경처럼 보이게끔 제작된 와이드 스크린이 압권이다. 이곳에서는 도시 속 타워 크레인의 모습과 5·18 민주화운동의 기록 영상을 담은 ‘둥글고 둥글게’가 교차 상영된다. 특히 이 작품은 영화 ‘기생충’의 음악 감독 정재일이 참여해 깊이감 있는 음향과 함께 한국 근대화 과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상욱 ACC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자리”라며 “특히 한국 최초 여성 실험영화 감독인 한옥희의 작품을 발굴하고 복원해 소개하는 점도 중요한 성과”라고 말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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