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작지만, 이리도 아름다운... 사진, 그리고 그림 [카메라 워크 K]

“그것은 애호가를 사진 현상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외부의 시선과 검열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허락했다. 그것은 애호가를 편집광에서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폴라로이드의 목표는 완전함이었고 컬러였으며 다른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고 시장을 넓히기 위해 조작 방식을 최대한 단순하게 하는 SX-70이었다.” (에르베 기베르, <유령 이미지>, 알마)
빅픽처, 크게 뽑아 거는 사진이 대세인 요즘, 송영숙 작가의 작은 작품들을 건 전람회의 첫인상은 당혹스러웠다. 신용카드만큼 작은 작품의 크기도 그렇지만,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사진 위에 유화물감으로 채색을 했다는데, 이렇게 작은 프레임 안에서 붓질이 가능할지도 의아했다. 사진에 채색을 한 건, 그이가 처음은 아니지만 도대체 이렇게 작은 사이즈의 사진을 밑그림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바라보니 작품의 원본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보였다. 아니 폴라로이드는 망했으니까 이제 후지필름에서 생산하는 인스탁스 미니로 찍은 즉석 사진이겠지. 86mm x 54mm의 작은 사진.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즉석 사진이 아니라 디지털 사진이란다. 이것을 즉석 인화기인 스마트폰 프린터로 인화했다.
원조 즉석 사진기인 폴라로이드의 탄생은 사진을 찍고 바로 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 편광필름 기술 개발자였던 에드윈 랜드가 1943년 크리스마스에 딸의 사진을 찍었다. 4살짜리 딸이 물었다. “잘 나왔어요? 왜 지금 사진을 볼 수 없어요?” 4년 후, 아빠는 사진을 바로 볼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어 냈다. 다양한 폴라로이드 카메라 중 최고는 1972년부터 85년까지 생산된 SX-70. 접히는 폴라로이드는 에르베 기베르의 말처럼 소비자들을 열광시켰을 뿐만 아니라 앙드레 케르테스 같은 프로 작가들도 애용했다.
송영숙 작가도 SX-70 애호가였다. 하지만 2007년 폴라로이드는 SX-70 전용 필름 생산을 중단했다. 찍으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은 구식 사진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 30여 년 전 폴라로이드 작품을 발표했던 송영숙 작가에게 SX-70 필름의 단종은 어떤 의미였을까? 구식이 푸대접 받는 서러움? 그러나 모든 게 그렇듯이 자본은 구식 마저 클래식한 상품으로 포장해 다시 부활시킨다. 후지필름의 즉석 카메라 인스탁스는 폴라로이드의 외양으로 생산되고, 스마트폰 즉석 인화기는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디지털 사진을 인화한다.
원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다루었던 송 작가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의 물적 질감을 잘 아는 그이에게, 스마트폰 즉석 인화기 사진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찍는 순간 개 혓바닥처럼 스르륵 인화지를 내미는 폴라로이드 사진은 정착액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손을 대면 사진이 변한다. 결과물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야단치는 이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사진이란 무언가와 직접 살을 맞댄 화석 같은 흔적이지 않겠는가? 폴라로이드 카메라 시절에는 인화되고 있는 이미지를 스크래치를 내 스케치 효과를 냈다면, 이번에 건 작품들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즉석 사진 위에 스케치했던 것 아니었을까? 인화지를 스크래치 하던 예리한 송곳 대신 유화물감에 적신 세밀한 붓으로.
작은 사이즈의 원작품들을 확대해 프린트한 작품들을 보자면, 사진비평가 최봉림이 설명한 것처럼 옛 인상주의 화가들의 붓질을 떠올리게 한다. 물감의 질감이 만져질 정도로 거칠었던 고흐의 붓질과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몽환적으로 뭉개진 색깔의 뒤섞임. 그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곤혹스러워하며 그것을 포착하려 했던 화가들의 표현이었을 텐데, 송 작가는 한가지 분위기를 주장하지 않고 길 위에서 받았던 인상대로 붓을 움직인 것이리라.
길 위에서 송영숙 작가가 만난 것들은 뭘까? 표현된 형상은 유럽의 골목, 고궁의 처마, 길 위의 나무들, 시골의 꽃들, 무덤가의 십자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모두 다 마주치는 것들이지 그리 특별한 피사체들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의 외관이 아닌 느낌일 터. 끌로드 모네는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루앙 대성당의 이미지를 50여 장이나 그렸다고 전해진다. 모네가 그린 건 대성당이 아니라 ‘그 때 그 곳’의 인상일 것이다.
동일한 피사체를 색깔을 달리하거나 트리밍을 다르게 한 이미지들을 두 개, 세 개, 네 개 이어 놓은 이미지, 그러니까 딥틱(diptych), 트립틱(triptych), 쿼드럽틱(quadriptych)으로 작품들을 연결해 펼친 건 인상 혹은 기억의 불확실성 때문일까? 그 때 그 곳의 인상을 한 프레임 안에 표현할 수 없어서 선택한 방법. 왜냐하면 그 때 그곳의 인상은 시간에 따라 늘 변하니까.
시간은 늘 우리를 배신한다. 기억은 그래서 의심 받는다. 하지만 사진은 변화에 저항한다는 믿음이 있는 매체다. 원본 필름이 존재하는 한, 사진은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복제시켜 시간을 되돌리고 기억의 오류를 수정한다. 그러나 오로지 한 장밖에 건질 수 없는 폴라로이드 사진은 때론 의혹의 대상이 된다. 오직 한 장밖에 없기에 더 소중할 수도 있지만, 사진의 온전한 속성인 복제가 불가능하기에.
폴라로이드의 나약함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한 컷으로 부족하니 다음 장면에 기댄다. 시퀸스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인화지의 하얀 여백에 글을 적는다.
”이미지는 아마도 액자에 끼워져서, 젊은 시절의 사진보다 더욱더 완벽하고 거짓된 이미지로, 내 앞에, 거기에 있을 것이다.“ (에르베 기베르, <유령 이미지>, 알마)
액자에 담긴 옛날 사진이 거짓 이미지이며 결국엔 유령 이미지인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진에 찍힌 것이 변하고, 사진에 찍혔을 때 그것을 보았던 내가 변하고, 사진을 찍은 이는 사라지기도 한다. 시간에 맞서는 듯 보였던 사진에 대한 인상이 변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송영숙 작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길 위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며, 그것 위에 자신의 색을 입히며 생각에 젖어 든다. 즉, 명상에 잠긴다. 송영숙의 개인전 <Meditation on th Road 길 위에서>는 오는 31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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