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아닌 삶의 공간으로…약국과 약사의 역할”

윤선희 약사 2026. 3. 18. 12: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6년 일본 재택약료 탐방 현장을 다녀와서③
윤선희 경기도약사회 돌봄통합위원회 부회장
경기도약사회는 지난 2월 일본의 재택약료 현장을 직접 살펴보기 위한 탐방을 진행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대응해 재택의료와 방문약료 체계를 비교적 일찍 구축한 국가로, 지역 의료기관과 약국, 돌봄 인력이 협력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윤선희 경기도약사회 돌봄통합위원회 부회장은 당시 일본 현장 방문에서 보고 느낀 점을 방문기를 통해 전한다. -편집자 주-
윤선희 경기도약사회 돌봄통합위원회 부회장.

도쿄의 오토도케 약국에서는 재택약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고, 24시간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PTP 바코드를 스캔해 오류를 줄이고, 자동 1포화 기기로 약을 포장하고, 라벨을 붙이며 다시 한번 모니터링한다. 실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촘촘한 장치들이 약국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암 말기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재택 지원약국 나라 약국도 방문했는데 조금 다른 공기를 느꼈다. 방문 환자의 상당수가 몇 주 안에 생을 마감한다고 했다. 약사는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의 집으로 들어가, 통증을 조절하고, 약을 조정하고, 가족과 대화하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한다. 또 24시간 대응 체제를 갖추고 의사의 긴급한 처방에 대응하여 암 환자 케어를 하고 있었다.

약사는 이렇게 말했다.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지만, 가정은 삶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그 삶의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이 말이 오래 남았다. 그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철학처럼 들렸다.

탐방의 마지막 일정은 가나가와현 약제사회와의 학술교류회였다. 양국의 약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국의 재택 약료 상황을 발표하고 일본의 방문 진료 의사, 가나가와현 의료 정책 행정 담당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지역포괄케어를 설명했다.

논의된 핵심 내용은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다학제 협력은 제도적 기반과 현장 신뢰가 동시에 필요하고 약사의 의견서는 수용 가능한 범위 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의 DUR과 같은 전국 통합 시스템은 아직 미도입 상태이지만 대신 약수첩과 마이데이터로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서로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고민의 방향은 닮아 있었다. 또 행정은 연 3회 이상 공식 협의체를 운영하여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양국은 고령화, 다제약물, 재택의료 확대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으며, 직역 간 협력과 제도적 지원이 핵심이라는 점에 의견이 모아졌다. 직역은 달라도 결론은 비슷했다. 단순한 탐방이 아니라 양국의 재택 약료에 대한 학술 행사까지 열려서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에 오래 남은 생각이 있다. 약사는 결국 혼자 일하는 직능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발표와 토론을 들으며, 그리고 현장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약사가 다른 보건의료 전문가들과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솔직하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지역 돌봄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을.

한 약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22년 전만 해도 "의사와 간호사가 다 하고 있는데 왜 약사가 가정을 방문하느냐"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방문약료는 낯설었고,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왜 오느냐'가 아니라 '함께 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우정을 바탕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필요하면 기꺼이 수용한다고 한다.

그 변화는 제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쌓인 신뢰, 반복된 협력, 그리고 서로를 전문직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쿄 오토도케 약국을 둘러보는 경기도약사회 임원들.

세미나를 통해 분명히 느낀 점은 하나였다.

지역 돌봄은 어느 한 직종의 열정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 약사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의사와 간호사, 행정과 복지 인력이 함께 발을 맞추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을 때 돌봄은 훨씬 단단해진다.

제도는 길을 열어주지만, 그 길을 함께 걷게 만드는 것은 신뢰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간은 단순한 학술 교류가 아니라,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배우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물레방아'와 '수원'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처방전을 받아 돌고 있는가, 아니면 치료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작점이 되고 있는가.

이번 일본 탐방은 화려한 시설이나 기계보다, 약사의 태도와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제도가 약사를 확장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역할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에서 도쿄, 요코하마까지 이어진 3박 4일의 일정은 숨 가쁠 만큼 촘촘했지만, 일본 약사들의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 덕분에 그 피로조차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환대와 진지한 교류의 시간들이 긴 여정의 피곤함을 자연스럽게 잊게 해주었다.

돌봄은 사람을 중심에 둔다고 한다. 그 사람 곁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직능이 약사라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까.

'물레방아에서 수원으로'  그 문장은 아직 나에게 질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