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선 운임 합의...‘담합·적법행위’ 논란
해운법 근거 국내외 정기선사 운임 공동행위에 공정위 제동
“해운업 특성 감안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 ‘합리적 사업모델’”

| 서울=한스경제 임준혁 기자 | 한국 해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해운법에 따른 컨테이너(정기) 선사 간 해상운임 합의 등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의 잣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17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바다와미래 연구포럼 오찬포럼에 참석,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해운산업이 다른 일반 산업과 다른 3가지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해운업은 일반적인 타 산업에 비해 △막대한 매몰비용 △생산단위의 불가분성 △수요의 극심한 변동성 등 특유의 산업 구조를 보인다"며 "해운산업에서의 완전 자유경쟁은 오히려 파괴적 덤핑과 선사들의 줄도산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의 발제에 따르면 해운법 제29조는 외항 화물운송사업자(정기 선사) 간의 운임·선박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 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정기 선사들간 운임 공동행위를 인정하는 근거로 해운산업의 막대한 고정비용과 운임 변동성에 방어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 정기선사 120차례 운임 합의...공정위 962억 과징금
국내외 정기 선사들은 해운법 29조를 근거로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541차례의 회합 등을 통해 한국-동남아 수출입 항로에서 120차례의 운임을 합의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정기 선사의 공동행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공정거래법 제58조에 따르면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만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과거 국내외 정기 선사들이 공동행위 결과를 해양수산부 장관에 신고하지 않고 화주와의 협의도 생략한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며 '절차를 누락한 공동행위는 불법 담합이며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란 입장을 내놨다.
공정위는 지난 2022년 HMM,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SM상선, 장금상선, 팬오션, 흥아해운 등 12개 국적 선사와 에버그린, COSCO 등 외국적 선사 11곳 등 총 23개 선사에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정기 선사들은 항로별로 선사끼리 연합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에 불복, 같은 해 8~10월 연쇄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24년 2월 서울고등법원 일부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통해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해운법 29조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인정하며 공정위는 이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며 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 선사들 공정위 불복, 행정소송 제기...공정위 상고
서울고법의 이같은 1심 판결에 공정위는 즉시 상고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해운법상 허용되는 운임 공동행위라 하더라도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공정위가 제재할 권한이 있다"며 "피고(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기각한다"고 파기환송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강 변호사는 "정기선사의 공동행위는 독점화를 위한 담합이 아니라 산업 안정성을 위한 협력 모델"이라며 "공정거래법 적용을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보다 해운법 29조 취지를 살리고 산업 특성을 반영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공핵이론(Empty Core)'을 제시했다. 공핵이론은 수요 대비 거대한 설비(선박)와 매몰비용이 존재할 때 상호 이탈 유인으로 아무리 자유경쟁을 해도 효율적인 가격 혹은 공급 균형이 형성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하며 중간에 핵이 생기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강 변호사는 "공핵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해운업인 만큼 일정 수준의 운임 공동행위는 가격 담합이 아니다"며 "단순한 독점 담합이 아닌 산업의 붕괴를 막고 시장을 통제하기 위한 생존 시스템의 개념으로 '안정화 카르텔'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 업계 "해운 강국 공동행위 제도적 허용...유연성 촉구"
안정화 카르텔을 통해 화주는 예측 가능한 운임과 안정적 선복을, 선사는 적정 수익과 투자비 회수 가능성을 확보해 소비자·생산자 잉여의 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는 논리다.
미국·유럽연합(EU)에서도 해운업을 비롯한 대규모 장치산업에 대해 '기계적 당연위법'이 아닌 산업 특성을 반영한 '합리의 원칙(Rule of Reason)'에 따라 공동행위의 실질 효과를 평가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고 강 변호사는 소개했다.
이런 맥락에서 선사의 운임 공동행위는 단순 카르텔이 아니라 시장의 실패를 치유함과 동시에 공정거래법의 적용 제외가 타당한 '합리적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기계적인 과징금보다 산업 특수성을 반영한 정교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 변호사는 "정책적으로 공정위와 해수부 간 역할을 조정하고 해운법 29조 취지와 공핵이론 등 경제분석을 반영한 신중한 법 집행으로 글로벌 물류 공급망 안정과 국적 선사 경쟁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시사점을 제기했다.
이어 "공정위에 단순한 법리적 잣대를 넘어 경제적 효율성과 산업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박정석 한국해운협회장은 "유럽 글로벌 선사를 중심으로 해외 정기선 시장 과점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중국과 일본은 선사 통합과 정책 지원을 통해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해운 강국들은 해운업을 전략·기간산업으로 인식해 선사들 간 공동행위를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한울 해수부 항만물류기획과장은 "지난 2022년 공정위와 해운법 29조에 따른 선사 간 공동행위를 협의할 당시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해운 공동행위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화주들에게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면서도 "해수부와 공정위 사이에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이견은 아직 남아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핵심 쟁점은 해운법 29조에 따른 선사 간 공동행위의 예외와 공정거래법 58조의 '정당한 행위' 요건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지에 대한 부처 간 관할과 법리상 충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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