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2027년 이승훈베드로성지 찾을까
한국인 최초 천주교 영세자의 얼 서린 곳
4대 걸쳐 8명 순교…세계사에도 드물어
평신도 신앙공동체, 한국 교회 토대 마련
명동성당 건립 113년 전 명례방모임 참여
양반특권·여성차별 낡은 사회풍습에 도전
향교 경배 거부 평택 현감 삭탈관직 당해
신앙·예술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 탄생
교구, 2027 서울 대회 때 교황방문 추진
시·구, 기부채납 이행조건 임시사용승인
교황 찾은 서산 해미 연 1백만명 관광명소
역사공원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고민할 때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남동정수사업소 인천 하늘수 물홍보관 담장 길을 따라 쭉 이어진 쉼터에 주춧돌로 떠받친 커다란 비(碑)가 서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수선리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노자(老子)의「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잠언(箴言)이 비에 새겨있다.

남동정수사업소 바로 옆 이승훈 역사공원 안 성지기념관(남동구 무네미로 143) 오른쪽 외벽에 '물(水)'을 담은 글귀가 박혀있다.
월락재천(月落在天)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수상지진(水上池盡)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하느니
이승훈이 신유박해 때인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 서울 서소문 밖 사거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殉敎)하기 전 남긴 신앙 고백이다.
"천주(天主)를 분명히 알게 된 이상 천주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형벌과 죽음까지도 감수하겠습니다."
1784년 음력 1월 중국 베이징(北京) 북천주당에서 영세를 주기 전 "만일 너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조선의 왕이 '신앙을 버려라'라고 강요할 경우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그라몽 신부의 물음에 대한 이승훈의 다짐이었다.
이승훈은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조선 천주교회의 주춧돌이 되라는 뜻에서였다.
이승훈은 배교(背敎)와 복교(復敎)를 거듭했지만, 마침내 마음속 깊이 새긴 신앙심을 순교로 드러냈다.
이승훈에게 천주교 신앙은 마침내 돌아가야 할 본향이자 선산과도 같았다.

인천은 왜 이승훈을 기억하는가
이승훈의 특별함은 '조선인 첫 영세자'라는데 있지 않다. 인천에 그의 묘역이 있어라 서는 더더욱 아니다.
선교사의 전교 없는 지역에서 스스로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직접 세례까지 받으러 이국땅을 밟은 인물이다. 세계사에서도 없는 일이다.
그는 평신도로 자발적 신앙공동체의 씨앗을 뿌렸고, 이 땅에 최초의 천주교회를 세우는데 밑거름이었다. 1785년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고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던 명례방(明禮坊·지금의 명동) 공동체였다. 113년이 지난 뒤 명례방 자리에 명동성당이 건립됐다.
이승훈 가문의 순교역사는 세계 천주교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베드로의 후손들은 100년이 넘는 박해 시기 4대에 걸쳐 8명이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다.
이승훈의 셋째 아들 신규 마티아는 1868년 4월 7일 선친이 순교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를 당했다.
1866년 시작된 병인박해로 몇 차례 체포와 옥살이의 고초를 겪었으나 뛰어난 학문과 의술로 참수를 모면했다. 마티아는 영종도와 제물포 등지에서 약국을 열고 의술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철종 때 순정왕후의 병환을 고친 공로로 능참봉에 오르기도 했다.

손자 재의·재겸 그리고 재겸의 부인 정씨, 증손자 연구·균구, 고손자 명현 등 8명이 순교했다.

습속의 낡은 지적 원기에 도전하다
이승훈의 가문은 인천의 명문가였다. 아버지 이동욱은 1766년 문과에 급제해 참판과 의주 부윤을 지냈다. 승훈 자신도 24살 때 진사시에 급제해 1790년 음서로 의금부도사(都事)가 됐다. 그 이듬해 6월에 평택 현감으로 부임했다.
권세가의 자손이었던 이승훈은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에 한계를 느꼈다. 조정은 세도정치와 쇄국, 근대화와 개화, 제국 열강의 각축 등 혼란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천주교는 성리학이 받드는 양반 신분의 특권을 부인했다. 사회 풍습과 다르게 여성의 역할도 강조했다. 이승훈의 아내는 나주정씨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충남 서산 해미에 유배됐던 실학자 정약용의 이복 누이였다.
성리학에 찌든 양반에게 이승훈은 이데올로기의 배반자, 시대를 같이할 수 없는 패륜아였다.
천주교는 심지어 조상에 대한 제사마저 일종의 미신으로 간주했다.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태워 버린다. 신해박해로 번진 진산사건(珍山事件)이었다.
이 사건으로 체포된 이승훈은 '제사 불가'라는 천주교의 교리와 효(孝)라는 전통적 세계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배교를 선택했다.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복합 문화공간
이승훈 역사공원이 2024년 9월 10일 4만5928㎡ 크기로 문을 열었다. 최초 공원으로 결정(2018년 5월 28일)된 지 6년여 만이다.
인천시는 국·공유지 2만4000여㎡를 내놓았다. 천주교 측은 이승훈 묘역 인근 터(17427㎡)를 댔고, 70억 원을 들여 역사문화체험관인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지하 2층~지상 1층, 연면적 1630㎡)을 지었다. 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20년간 무상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승훈 묘역을 잇는 데크 로드 '십자가의 길'이 조성됐다. 4대에 걸친 순교 역사를 상징하는 피에타 연못과 이승훈 베드로 잔디 광장 등이 마련됐다.
중앙 광장과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은 달(月)과 연못(池 )을 형상화했다. 기념관 2층 상설 전시실과 영상전시실은 이승훈의 사료와 함께 삶의 궤적을 담았다.

1층 전시실은 기획 전시공간이다. 2월 4일부터 3월 19일까지 '빛의 기도'를 주제로 화가 송경(글라라 1936~2022)의 유작이 전시 중이다. 시각적 과시를 절제한 그의 작품은 오래 바라볼수록 내면의 울림과 영적 리듬을 일깨운다. 이승훈 역사공원은 교육·전시·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이다.
교황 방문 추진 VS 기부채납
전 세계 가톨릭 청년이 모이는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2027년 8월 3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본 대회가 열린다. 2027 서울 대회에는 170여 개국이 참여하고 최대 100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청년대회는 교황이 직접 참석하는 글로벌 청년 축제다.
2014년 8월 17일 선종한 프렌치스코 교황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 집전을 위해 충남 서산 해미읍성과 성지를 방문했다.
국가 사적 제116호인 서산 해미읍성(면적 19만4000㎡)과 그 주변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로 1000명에 가까운 무명의 신자들이 희생당한 성지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기념해 조선 시대 내포 지역 순교자들이 해미읍성까지 압송된 경로를 복원해 도보 순례길(해미읍성~한티고개 간 10㎞)을 조성했다.
해미순교성지는 2020년 11월 29일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성지로 선포됐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하다.
지난해 22회째 축제를 이어오고 있는 서산 해미읍성과 그 주변은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서산시는 2027 서울 대회를 앞두고 해미국제성지를 국제 순례 거점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오는 8월 개관을 목표로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연면적 1343㎡)의 순례방문자센터를 짓는 중이다.

인천교구도 2027 서울 대회를 즈음해 레오 14세 교황의 이승훈 역사공원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번듯한 성지로 세우려면 주차장(현재 면적 1452㎡)도 넓혀야 하고, 그린벨트로 남아 있는 주변도 정리해야 한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은 아직 준공승인 떨어지지 않았다. 오는 6월 30일까지 임시사용 승인(2025년 12월 24일)만 떨어진 상태다. 이 기간 안에 준공하고 기부채납을 한다는 토를 붙었다. 임시사용 기간이 끝나면 연장 불가하다는 조건도 달았다. 기부채납을 하느니 마느니를 놓고 옥신각신할 게 아니다. 이승훈 역사공원을 어떻게 살린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박정환 대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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