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투자, 규제 아닌 기업·국가 경쟁력”
정태호 의원, 산업안전 입법흐름 강연
투자 부족에 사고 반복 악순환의 고리
형사처벌 한계…경제제재 중심 전환을

“이제는 한국이 인권과 환경, 산업재해 문제에서 해외에 나가 모범이 되지 않으면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산업안전에 대한 투자가 곧 기업 경쟁력입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헤럴드경제·법무법인 대륙아주 공동주최 ‘중대재해예방 노동·안전법제포럼’에서 이같이 말하며 산업안전 문제를 단순한 규제가 아닌 ‘기업·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처벌 강화보다 투자 확대와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관을 시작으로 노무현·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정책통’으로 평가받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청와대 일자리수석을 맡아 노사상생형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를 성사시키며 주목받았다. 서울 관악구을에서 재선에 성공한 그는 현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하며 민생경제 정책 조율에 힘을 쏟고 있다. 동시에 대미투자특별법 특별위원회 간사도 맡고 있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현실에 대해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 선진국인데 산재 사망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수준이라는 점이 부끄러운 성적표”라며 “문재인 정부 때도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근로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비율은 0.3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0.29명을 훨씬 웃돌고 있다.
그는 특히 최근에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사망사고가 늘고, 대기업은 전체 건수는 줄더라도 대형 사고가 반복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산재 유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 의원은 “특수고용 노동자, 택배 노동자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서 산재가 발생하고 있고, 폭염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산업재해도 커지고 있다”며 “과로와 기후 위기, 감정노동 같은 새로운 위험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를 언급하며 “국가가 노동시간을 일정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국민 건강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지금 산업안전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결국 돈의 문제”라며 “투자를 하지 않으니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가 나면 모두의 책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투자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기업 모두 산업안전에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다 보니, 결국 입법 방향은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한국 산업이 가진 딜레마”라고 규정했다. 정 의원은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이고 여전히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구조”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들여 안전에 투자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와 정부는 산재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규제와 제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두 흐름이 충돌하면서 산업안전 정책이 처벌 중심으로 흘러가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정 의원은 “산재 신청 처리 기간이 지금은 200일 수준인데 이를 90일 이내로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 방향”이라며 현 정부의 주요 산업안전 정책 과제로 안전보건 공시제 도입,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확대,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산 의무 확대, 재해조사 의견서 공개, 작업중지권 요건 완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위촉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 강화와 산재 처리 기간 단축도 포함된다.
특히, 정 의원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언급하며 기업들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그는 “중대재해 빈발 사업장에는 영업정지까지 가능하게 하고, 다수·반복 재해 발생 사업장에는 영업이익의 5% 이내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형사처벌뿐 아니라 경제적 제재도 강화되는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정 의원은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당시에는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묻으면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산재가 줄지 않았고, 권한 없는 사람을 책임자로 앉혀 실질적인 책임자가 회피하는 왜곡된 현상도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 정책의 방향이 형사처벌에서 경제적 제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정 의원은 “현 정부의 큰 흐름은 형사처벌보다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쪽”이라며 “배임죄 완화 논의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재 문제에서도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경제적 제재를 늘렸을 때 실제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다”며 “처벌 방식이 무엇이든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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