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여행이 길이 됐다… ‘심도기행’에서 ‘강화나들길’까지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6)]
120년전 강화도 유람에 나선 ‘華南 고재형’
발길 닿는 지역 소재로 지은 한시만 256수
충절 지킨 의인·지사 주인공인 시 상당수
광성보·손돌목 등 역사적 사건 관련 유적
심도기행 토대로 만든 강화나들길 20코스
계절마다 다른 풍경·광활한 생태계 ‘만끽’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6년 봄, 강화도 두두미마을(현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1846~1916)은 동네 친구 구씨의 집에서 술 한잔하고 서쪽으로 발걸음을 뗀다. 그러면서 이런 시를 한 수 짓는다.
‘봄바람 맞으며 두두미를 걷노라니(斗頭我步帶春風) / 온 마을의 산과 내가 한눈에 들어오네(一府山川兩眼中) / 밝은 달 푸른 버들 여러 구(具)씨 탁상에서(明月綠楊諸具) / 잔 가득한 술맛이 힘을 내게 하는구나(滿杯麯味使人雄)’

봄기운을 품고 서쪽으로 걸어간 고재형은 그 길로 자신이 나고 자란 강화도 유람에 나섰다. 그는 발길이 닿는 마을마다 그 마을의 풍경과 생활상, 역사·유적과 인물을 소재로 칠언절구의 한시를 지었다. 고재형이 강화도를 여행하며 창작한 256수의 한시를 엮고, 각각의 시마다 해설을 붙인 문집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심도기행’(沁都紀行·1906)이다. 강화도 기행문이자 지리지·민속지이다.
책 제목의 심도(沁都)는 고려 대몽항쟁기 개경(개성)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39년(1232~1270년) 동안 강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수도로서 강화도는 강도(江都) 또는 심도라고 높여 불렸다.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강화 직물산업의 대표적 기업 ‘심도직물’도 옛 이름 심도에서 이름을 따오는 등 지금까지도 강화에서는 심도란 이름이 빈번히 쓰이고 있다.
고재형의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을 터다. 1905년 을사늑약 이듬해 떠난 여행이었다.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은 시문 곳곳에서 은연중 드러난다. 그만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심도기행’은 2개의 필사본만 전해지는 희귀한 책이다. 다행히도 김형우 강화역사문화연구소장과 강신엽 문학박사가 번역해 2008년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에서 펴낸 ‘역주 심도기행’을 통해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인천학연구원 홈페이지 내 ‘인천학 자료총서’에서 내려받아 읽을 수 있다.
120년 전 고재형은 강화도에서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썼을까. 지난 11일 ‘심도기행’을 손에 들고 기행의 출발점이었던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마을을 찾았다. 여전히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에 난 길은 고재형의 호를 딴 ‘화남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화남의 후손이 아직 마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서 고재형처럼 봄바람을 맞으며 강화도 기행을 시작했다.
■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을 생각하다

고재형은 기행 전반에 걸쳐 대몽항쟁기(강도 시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강화 땅에 서린 전쟁의 역사를 생각하고 기록했다. 전쟁과 관련한 유적이나 전쟁 상황에서 충절을 지킨 의인과 지사가 주인공인 시도 상당수다. 특히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스스로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한 김상용(1561~1637)을 비롯해 전쟁에서 순절한 인물들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경우, 제향된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별도의 시를 지을 정도로 고재형의 관심이 컸다.
강화도는 유사시 왕과 조정이 피란하는 보장처(保藏處)이면서 섬 전체가 돈대 등 관방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요새였다.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주요 전쟁은 강화를 비켜가지 않았다.
두두미마을에서 5㎞ 떨어진 광성보로 향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을 빌미로 1871년 미국이 조선의 개항을 시도하려 강화도를 침략한 신미양요 당시 가장 치열한 광성보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돈대 등으로 이뤄진 부대였다. 어재연(1823~1871)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1826~1871), 부대원 59명은 미군과 육탄전 끝에 이곳에서 순절했다.

그 옛날 고재형이 서 있었을 손돌목돈대 위에서 고요하면서도 빠르게 흐르는 손돌목 바다를 바라봤다. 돈대 앞에는 점령당한 손돌목돈대에 널린 조선군 사체 사진이 설명과 함께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고재형은 시를 지었다.
‘손돌의 황량한 무덤이 절벽 위에 있는데(孫石荒墳倚斷阿) / 뱃사람 그곳 가리키며 술 따르고 지나가네(舟人指点酹而) / 해마다 시월 되면 찬바람이 불어오니(年年十月寒風至) / 원혼이 격렬하게 물결쳐서 그러는 것이려니(知是冤魂激激波)’
손돌목에는 억울한 죽임을 당한 손돌이 일으키는 바다 위 회오리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뱃사람들이 지나며 술을 따랐다는 전설이 있다. 고재형은 그 손돌목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과 부대원들의 원혼이 격렬하게 물결치는 모습을 본 걸까. 광성보 아래 마을(현 불은면 넙성리 광성마을)로 내려온 고재형은 동쪽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동쪽에 있는 광성돈대를 바라본다.
‘허물어진 치첩(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과 높은 초루는 비에 젖어 밤을 맞네(殘堞危譙海雨昏) / 당당했던 어재연 절제사를 생각하노니(窃想堂堂魚節制) / 형제가 같은 날에 충성 영혼이 되셨네(弟兄同日作忠魂)’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그때 허물어진 채로 방치된 돈대를 바라보는 고재형은 끝까지 당당하게 침략에 맞섰던 어재연 장군을 생각했다. 미군에게 빼앗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최고 지휘관이 사용한 군기)는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다 2007년 10월 장기 대여 형식으로 강화전쟁박물관으로 반환됐다. 그러나 어재연 수자기는 2024년 3월 대여 기간 만료로 다시 미국으로 떠나 2028년까지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특별전에서 전시되고 있다.
■ ‘심도기행’의 길 이어 만든 강화나들길

‘심도기행’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길을 만들었다. 2007년 강화도의 자연과 역사·문화 자원을 잇는 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심도기행’을 토대로 답사를 시작해 2009년 ‘강화나들길’을 만들었다. 이후 사단법인 강화나들길과 강화군을 중심으로 20개 코스(총 310.5㎞)를 완성했다.
마침 이날 사단법인 강화나들길의 정기 모임(수요 스터디)이 있었다. 강화나들길 회원, 나들길지기(나들길 안내 봉사자) 실습생 등 21명과 함께 강화나들길 ‘제8코스(철새 보러 가는 길·초지진~분오리돈대)’를 3시간 동안 걸었다.

황산도 선착장에서 출발해 강화갯벌과 제방길을 따라 동검도 입구, 선두리 어판장, 후애돈대, 분오리돈대까지 닿는 여정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이 장관이다. 칠면초 같은 갯벌 생태계를 아주 가까이서 살필 수 있는 길이었다. 초창기부터 강화나들길의 길을 텄던 강복희 이사가 중간중간 만나는 무궁화, 갯잔디, 억새 등 식생을 회원들에게 설명했다.
겨울에는 동검도 주변에서 재두루미 등 철새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갯벌은 그야말로 새들의 세상이다. 꽃샘추위가 물러가지 않았지만, 광활한 풍경에 심취하며 걸으니 오히려 바람이 시원했다. 길목마다 강화나들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강화나들길 20개 코스는 ‘심도역사 문화길’(제1코스), ‘호국돈대길’(제2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제6코스), ‘낙조 보러 가는 길’(제7코스), ‘주문도길’(제12코스), ‘볼음도길’(제13코스), ‘고인돌 탐방길’(제17코스)처럼 각각 주제가 있다. 코스를 완주하면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도보 여권’도 있다. ‘수요 스터디’ 등 정기 모임과 나들길지기 교육 등 여러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강화도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함민복 시인은 2011년 1월 강화나들길의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출범을 축하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자연이 외곽인 문명에서 / 자연이 중심이 되는 길 /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가며 / 눈꺼풀처럼 감겨 울던 길 / 이제 꽃처럼 다시 피어날 길들 / 여기 모였다’ (함민복 시 ‘강화나들길’ 중에서)
이날 동행한 허수진 강화나들길 이사장의 이야기는 ‘심도기행’과도 연결됐다.
“계룡돈대 쪽으로 가면 망월평야(망월돈대~계룡돈대)라는 너른 들판이 있어요. 4~5월 사이 일주일 정도 논에 물을 가득 댔을 때 보름달이 뜨는 날 망월평야에 걸어가면 논 가운데에 선명한 보름달이 뜨는 장관이 연출됩니다. 날이 맞아야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죠.”
고재형도 망월평야에 관한 시를 남겼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인 듯하다.
‘망월동은 넓은 들판 가운데에 펼쳐있고(望月洞開大野中) / 까마귀다리 봄물은 까치다리로 통하네(烏橋春水鵲橋通) / 비 오면 모내고 가물면 씨 뿌려 날씨를 따르지만(水秧旱播隨天氣) / 해마다 농사일은 풍년이 든다네(穡事年年實有豊)’

‘심도기행’을 번역한 김형우 강화역사문화연구소장은 “‘심도기행’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성찰, 후손들에게 지역을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목적,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잘 지키려는 노력의 산물로 지리지, 민속지, 역사책 기능을 두루 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며 “화남 고재형은 ‘심도기행’을 통해 오늘날에도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같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가까이 온 올 봄은 ‘심도기행’과 강화나들길 도보 여권을 들고 강화도 곳곳을 둘러보고 걸어보면 어떨까.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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