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설·홍수 한번에...‘사계절 재난’ 동시에 온다
기후위기 속 ‘동시다발 극단기상’ 증가
“복합 기후재난 대응책 마련해야”

기후위기로 극단적 기상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며 기상 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폭설과 폭염, 폭우, 산불 위험이 한번에 나타나는 동시다발 이상기후가 관측됐다. 롤러코스터처럼 바뀐 날씨 속에서 기존의 단일재난 중심에서 벗어나 복합 기후재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롤러코스터처럼 바뀐 날씨...기후위기의 새 얼굴
미국 AP통신은 17일 미국 전역에서 서로 다른 극단적 기상이 동시에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오대호 지역에는 폭설이 쏟아지면서 수십 센티미터 이상 눈이 쌓였고, 동부에서는 강풍과 함께 토네이도를 동반한 폭풍이 이어졌다.
반면 애리조나와 네바다 등 남서부에서는 3월에 이례적으로 약 38℃에 가까운 폭염이 예보됐고, 하와이에서는 60cm 이상 폭우로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서부 지역에서는 가뭄 속 산불 위험이 높아졌다.
기상학자들은 미국에서 거의 모든 유형의 극단적 기상 현상이 나타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기후변화로 대기 흐름이 바뀐 것을 든다. 특히 비정상적으로 크게 굽이친 제트기류가 롤러코스터처럼 크게 흔들리면서 한쪽에는 북극 한기가, 다른 쪽에는 뜨거운 공기가 동시에 유입된다.
전 세계에 나타난 동시다발 극단기상 현상
이 같은 현상은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에서도 최근 45℃ 폭염과 대형 산불 이후 한 달 만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는 기후 롤러코스터 현상이 보고됐다.
ABC 뉴스는 17일 지난 몇 달 동안 호주 여러 지역에서 극심한 더위가 홍수로 바뀌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주 남동부에서는 폭염과 산불 경보 불과 며칠 만에 홍수가 발생하고 다시 폭염이 이어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빅토리아 오트웨이 등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 현상이 관찰됐다.
심지어 더 시원하고 습한 라니냐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하는 등 기후 시스템의 기존 패턴이 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극단적 기상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급격한 기상 변동을 기후채찍질(Climate Whiplash), 즉 폭염 직후 강력한 홍수가 이어지고 다시 극심한 가뭄이 오는 등 날씨가 극단적으로 휙휙 바뀌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호주의 독립 기후위원회(Climate Council)는 최신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엘니뇨나 라니냐 같은 자연 요인을 넘어 날씨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며 "한 재난에서 다른 재난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기후채찍질(Climate Whiplash)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기후위기로 여러 재난이 한 번에
과학자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북극 온난화를 지목한다. 북극이 빠르게 따뜻해지면서 북극과 중위도 사이의 온도 차가 줄어들고 그 결과 제트기류가 약해지며 크게 굽이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가 서로 다른 지역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가열화로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폭우와 홍수의 강도도 커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NASA 역시 기후위기가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기상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서 특정 지역이 아니라 대륙 규모에서 여러 종류의 재난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도 기후위기 속에서 폭염·폭우·가뭄 등이 동시에 또는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복합 기상 재해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번 극단적 기상으로 2억 명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위험한 날씨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기후과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더 일반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평균 기온 상승 자체보다도 기상 시스템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기후재난 대응 전략 필요
기후위기로 극단적 기상의 강도와 빈도가 증가하고 앞으로 기후채찍질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존의 단일재난 중심에서 벗어나 조기경보 시스템, 기후 적응형 인프라, 통합 재난관리 체계 등 복합재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치현 환경공학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유럽은 위성·드론·지상 센서를 결합한 통합 예측 시스템과 대규모 재정 투자를 바탕으로 복합재난을 사전에 탐지하고 있다. 동시에 인프라 운영을 연계하는 선제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과 주 단위 데이터를 통합한 조기경보와 위험지도 기반 대응으로 지역별 복합재난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다중 재난 경험을 토대로 실시간 통합 관제와 지역 방재계획을 결합해 재난 간 연쇄 영향을 반영한 대응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박치현 박사는 "한국은 높은 ICT 수준에도 불구하고 부처별 데이터 분절과 표준화·연계 부족으로 통합 예측과 신속 대응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데이터 통합 플랫폼과 거버넌스 개편, AI 기반 예측 체계 구축이 과제로 제시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최동진 소장은 "복합기후재난에 대응하려면 각 전문 분야와 부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데 그만큼 거버넌스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칸막이 행정으로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며 "기술이나 재원만으로는 복합재난에 대응할 수 없기에 주민 참여를 포함한 거버넌스를 잘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