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내가 만약 봄이라면 / 공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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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남자라면 봄비는 여자다', 이 아름다운 시적 비유는 동양 철학의 음양의 조화와도 닮았다.
하여,한 편의 좋은 서정시를 만난다는 것은 "봄비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과 같다.
'봄비'가 "내리고" 나서야, 꽃나무와 들풀이 "나근나근해"진다는 그 통찰은 이 시의 백미다.
봄비가 내려야 "가정에도 봄이 오고 가장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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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봄이라면/ 봄비를 아내로 맞이하겠다/ 미세먼지 샛바람은 아들로/ 연한 새싹 예쁜 꽃은 딸이면 좋겠다/ 핑계 대며 아무리 큰소리 쳐봐도/ 고운 손길 없으면 일이 꼬인다// 말썽 많은 미세먼지 샛바람도/ 봄비 내리고 나면 나근나근해지고/ 새순 꽃망울도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보란 듯이 환히 웃는다/ 아내 없는 사내는 가뭄처럼 메마르다// 가족이 순하고 웃음소리 나면/ 가정에도 봄이 오고 가장은 신난다/ 봄비 같은 여인/ 봄비에 흠뻑 젖은 여인이면 더 좋겠다
『내가 만약 봄이라면』(2025, 문학의 전당)
'봄이 남자라면 봄비는 여자다', 이 아름다운 시적 비유는 동양 철학의 음양의 조화와도 닮았다. 천지는 그 자체로 명시다. 하여,한 편의 좋은 서정시를 만난다는 것은 "봄비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과 같다. 시는 언어로 씻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장이자, 치유의 힘이 있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나의 슬픔을 지워준다. 편하게 읽히고 울림이 큰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성정이 시적이어야 가능하다. 이런 서정시는 독자를 행복과 즐거움으로 안내한다. 멋진 시는 읽는 순간 가슴이 먼저 안다. 자신이 직접 체감한 날 것의 언어야말로, 행간의 생생한 느낌을 전한다. 서정시는, '여기와 너머'를 관통한다. 사물의 말을 영감(靈感)과 계시로 응답한다. 하늘과 땅은 매순간 변화하는 시의 보고(寶庫)이다. 시공간 속에서 사물과 풍경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幻)이다.
공영구(1950~, 경북 영천 출생)의 「내가 만약 봄이라면」은, 시어가 빛과 색, 소리와 향기의 이미지로 무늬를 짠다. 전통적 대가족 풍경을 자연의 현상과 버무려낸 수작이다. "미세먼지 샛바람"을 "아들로" 두려고 한, 그 시적 발상이 재미있다. "연한 새싹 예쁜" "꽃" "딸"을 둔, 시인의 상상력은 또 얼마나 멋진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리듬과 감각의 선명성으로 끌어들인 시적 내공 또한 만만찮다. '봄비'가 "내리고" 나서야, 꽃나무와 들풀이 "나근나근해"진다는 그 통찰은 이 시의 백미다. 그렇다. 봄비가 내려야 "가정에도 봄이 오고 가장은 신난다". 하여, 봄비는 꽃들의 "엄마"다. 밤사이 몰래 내려와 마른 "사내"를 적시고, 잠든 생명을 깨운다. 봄비는 단순한 빗물이 아니라, 모성의 언어이자 "여자"의 은유다. 그래서 꽃은 비가 온 뒤에 더 고운 색을 발하나 보다.
공영구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봄비 같은 여인"을 아내로 두다니, 이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상상력이야말로 시법의 왕이다. 그것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현실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세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상상력의 자유로움은, '시적 허용'을 만나 시의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유가 된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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