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로스 산악지대 3000만명… 중동 전쟁 때마다 존재감[Who, What, Why]

정지연 기자 2026. 3. 18. 09: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Who - 세계 최대 ‘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족
이란~튀르키예 유목민들 통칭
아랍제국 팽창 속 정체성 형성
자원 집중 요충지에 주로 거주
내부 세력간 정치 환경도 달라
주변국 경계로 국가 수립 무산
중동 분쟁 주요 지상전력 기능
이란戰 국면 들어 가치 재조명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이란에 투입할 지상군으로 언급하면서 쿠르드족 문제가 다시 국제 정치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3000만 명 규모의 세계 최대 ‘국가 없는 민족’으로 중동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아온 쿠르드족은 분쟁 국면마다 전략적 존재감이 부각돼 왔지만, 독립 국가 수립은 높은 제약에 가로막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국 붕괴 속 분단된 민족… ‘국가 없는 최대 집단’= ‘쿠르드’라는 명칭은 본래 이란 서부에서 이라크 북부까지 이어진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 거주하던 산악 유목민 집단을 통칭하는 표현에서 출발했다. 쿠르드족은 언어적으로 인도·유럽어족 계통에 속하며 스스로의 기원을 고대 메디아 왕국에서 찾는다. 이후 아랍제국의 팽창 과정에서 외부 지배 세력과의 충돌을 겪으며 점차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해 온 것으로 분석된다.

쿠르드족 거주 지역은 오랜 기간 페르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등 강대 제국의 경계 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치권을 인정받는 토후국 형태의 정치 구조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독립 국가 수립 요구는 크게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은 쿠르드족 자치와 향후 독립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튀르키예 민족주의 세력의 반발과 국제 정세 변화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어 1923년 로잔 조약이 체결되면서 중동 국경선이 확정됐고, 쿠르드족 거주 지역은 튀르키예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여러 국가로 분할됐다. 이로 인해 쿠르드족은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법적 지위 아래 놓이게 됐다.

이후 각국 정부는 분리주의 확산을 우려해 동화 정책과 군사적 통제를 병행했다. 특히 튀르키예에서는 쿠르드 언어 사용과 문화 활동을 장기간 제한하는 강경 정책이 추진되면서 갈등이 구조화됐다. 이라크에서도 사담 후세인 정권 시기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대한 대규모 군사 작전과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하는 등 심각한 인권 문제가 제기됐다. 이러한 경험은 쿠르드 민족주의 의식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며, 이후 독립 요구의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돼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전·대테러전 속 영향력 확대… ‘자치’ 실험 나선 쿠르드족= 쿠르드족의 정치적 위상은 21세기 들어 중동 분쟁 양상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쿠르드 무장세력이 극단주의 조직과의 전투에서 주요 지상 전력으로 기능하며 국제 사회의 협력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이라크 북부에서는 쿠르드자치정부(KRG)가 독자적인 의회와 치안 조직, 준군사 조직을 갖춘 준국가적 체제를 구축했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도 쿠르드 세력이 중심이 된 자치 행정 구조가 형성되며 사실상 자치권 확대 흐름이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비교적 안정된 치안 상황을 유지하면서 내전과 분쟁으로 발생한 난민을 수용하는 거점 역할도 수행했다. 일부 국제기구와 외국 기업은 쿠르드 자치지역을 중동 내 새로운 투자 거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자치 체제의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평가가 많다. 원유 개발과 수출 권한을 둘러싼 중앙정부와의 갈등, 재정 지원 문제, 외국 자본 유치 제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경제적 자립 기반이 충분히 구축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립 시도 반복… 지정학·내부 분열이 구조적 제약= 이처럼 분쟁 국면 속에서 쿠르드 세력의 정치적 위상은 일정 부분 높아졌지만, 독립 국가 수립이라는 장기적 목표는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독립 국가 건설을 시도했지만 실질적인 국가 수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920∼1940년대 쿠르디스탄 왕국과 아라라트 공화국, 마하바드 공화국 등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모두 주변국의 군사적 압박 속에 단기간에 붕괴됐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2017년 이라크 쿠르드 자치지역에서 실시된 독립 주민투표가 꼽힌다. 당시 압도적인 찬성 결과가 나왔지만 중앙정부의 군사 대응과 국제 사회의 거리두기 속에 독립 추진은 사실상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쿠르드족 독립이 어려운 이유로 분산된 거주 구조와 역내 국가들의 강한 반대, 국제 정치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지목한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약 1500만 명)와 이란(약 800만 명), 이라크(약 550만 명), 시리아(약 150만 명)에 흩어져 살고 있어 한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특히 이들 쿠르드족 거주 지역 상당수가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집중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주변국의 경계가 높다. 또한 쿠르드족 정치 세력 간 노선 차이와 권력 경쟁 역시 독립 추진의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별 정치 환경이 다른 만큼 쿠르드 정당과 무장 조직의 전략과 정치적 지향 역시 상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중동 정세는 다시 급격한 변동 국면에 들어섰다. 분쟁 확산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쿠르드족 세력의 전략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다만 역내 긴장이 고조될수록 쿠르드 독립 문제 역시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전쟁 전개 양상과 강대국 개입 수준에 따라 쿠르드족 자치 확대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독립 국가 수립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지연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