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어 직접 기획 → 실행 → 취업… 자립준비 청년들의 ‘인생 여행’[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김린아 기자 2026. 3. 18. 09:2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초록우산 경기2지역본부 ‘챌린지투어 프로그램’
보호시설 아동 등 42명 참가
여행 일정·예산까지 직접 짜
투어 마친뒤엔 전시회도 열어
자립역량 강화… 취업도 성공
지난해 여름 ‘초록우산 챌린지투어’에 참여한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접 계획해 해외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여행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 초록우산 제공

“저와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이 함께 가는 여행에 기획단으로 참여해 기획서를 쓰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관련 직업 분야를 찾아보다 브랜드 전략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마케터라는 일을 알게 됐고, 마케팅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 북부 지역의 자립준비청년 A(23) 씨는 지난해 여름 ‘초록우산 챌린지투어’를 통해 태국에 다녀온 뒤 자신의 진로를 찾았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팀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기획하는 일’의 재미를 느꼈고, 그 경험이 취업으로 이어졌다. A 씨는 “단순히 여행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보는 경험이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A 씨처럼 보호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성장한 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로 나가기 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 탐색할 기회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보호 종료 이후 곧바로 생계와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탐구할 시간이 또래에 비해 제한적인 것이다.

초록우산 경기2지역본부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보호대상아동·자립준비청년 자립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초록우산 챌린지투어’는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됐다.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자립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아동보호시설, 가정위탁지원센터, 그룹홈 등 6개 기관에서 총 8개 팀, 42명이 참여했다. 초록우산은 스스로 계획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참가자들은 6월 발대식 이후 팀별로 여행 목적지를 정하고 예산을 세우며 일정과 활동을 구상했다. 이후 7∼8월 동안 청년들은 부산을 비롯해 일본·베트남·태국·헝가리·호주 등 국내외 6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일부터 예산을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참가자들의 몫이었다. 갈등이 생겼을 때도 참가자들은 스스로 의견을 조율했다. 한 참가자는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기보다 팀원들과 이야기하며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초록우산 챌린지투어’ 발대식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초록우산 제공

일부 참가자는 ‘챌린지투어 기획단’ 활동에도 참여해 역량을 더욱 키웠다. 기획단은 발대식과 팀 미션, 전시회, 성과공유회 등 프로그램 전반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마포구 레드로드 예술실험센터에서 여행 경험을 기록한 사진과 에세이, 영상을 전시하는 ‘자립의 한 조각 展(전)’도 열었다. 참가자들은 전시를 통해 후원자와 재단 관계자들 앞에서 자신의 여행과 성장 과정을 직접 소개했다.

여행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스스로 하면서 참가자들의 자립 역량이 확연히 늘었다. 사회과학용 통계패키지(SPSS)를 활용한 대응표본 검정 결과, 참가자들의 자립기술 역량 점수는 평균 6.1점 상승했고 자기주도성 점수도 평균 9.4점 높아졌다.

청년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온 한 인솔자는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친구들인데 이번 챌린지투어를 통해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됐다”며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계획하도록 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청년들의 숨겨진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행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진 사례도 잇따랐다. 일본 투어에 참여했던 자립준비청년 B 씨는 현지 디저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후 디저트 카페를 창업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메뉴 개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며 “리치나 멜론처럼 한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재료 활용 방식이 인상 깊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그니처 디저트를 개발할 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 사이의 관계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했던 청년들이 여행 준비와 공동 활동을 통해 가까워지면서 자립과 관련된 정보를 나누는 동료가 됐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해 봤지만 여행만큼 짧은 시간 안에 청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경험은 드물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린아 기자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