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산속에서-나희덕
정훈탁 2026. 3. 18. 08:00

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산속에서, 나희덕]
대학원 시절 국어교육과 조교를 할 때, 당시 스타급 시인이었던 나희덕 시인이 교수님으로 오신다는 소식에 가슴이 뛰었었다. 내가 근무하던 과사무실 바로 옆에 문예창작과 교수연구실이 있었는데, 바로 거기로 오셨다. 가까이 있는 조교라고 알뜰하게 챙겨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과, 문예창작과가 한 식구들이나 다름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던 교수님의 연구실도 기억난다. 한밤중 민주로를 내려올 때, 밝혀진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다보면 종종 새벽녘까지 걷곤 했다.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과 계속 이어지는 먼 곳 불빛의 힘이었다. 살다보면 종종 물러설 때가 있다. 아침인데도 어두워질 때가 있다. 할 일이 많은데 지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먼 곳의 불빛을 보라.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아갈 수 있게 해준다.
정훈탁/광주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