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는 호르무즈 해법, 중동 ‘페트로 파워’가 흔들린다[페트로-일렉트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이제 시장의 초점은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이 언제 복귀될 것인가에 맞춰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란의 결사 항전,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파병 요구 등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이제 쉽게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되어버린 듯 한데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 즉 갑작스러운 미사일 공격이나 기뢰 폭파 가능성에 노심초사해야 한다면 이어질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중동 산유국의 입지 약화라는, 세계 에너지는 물론 경제사에서 큰 전환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1970~1980년대 중동발(發) 1~2차 오일쇼크는 세계 각국에서 여러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에너지 석학인 대니얼 예긴은 책 ‘황금의 샘’에서 오일쇼크의 여러 파생 현상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요. 일례로 일본에서는 승강기 운행을 단축하고, 한여름 에어컨 사용을 줄이기 위해 회사에서 반소매 양복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도 이 때라고 하네요. 또 오일쇼크 영향으로 유가 예측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유가란 크게 변동이 없는 가격이었는데 중동에서 원유 공급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가격이 3~4배씩 뛰고, 그에 따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유가를 전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유가 변동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경제학 개념이 도입된 것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생긴 것도 오일쇼크 이후입니다.
1990년대 걸프전까지 3차례 이어진 오일쇼크는 중동산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즉 중동 산유국의 파워를 확인시켜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예긴은 “오일쇼크로 석유 소비국들은 공급선을 중동에서 환태평양 지역으로 다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오일쇼크가 역으로 중동의 ‘페트로 파워’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기 전, 중동 국가들이 주축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글로벌 원유 공급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점유율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미-이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재, OPEC의 원유 생산 점유율은 30%를 밑도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전쟁도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중동산 에너지 공급이 큰 위기를 겪으면서 중동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에너지 거대 소비 시장인 중국과 인도가 대체 공급원으로서 러시아산 비중을 계속 늘려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국제유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에 대한 제재를 내달 11일까지 일시 해제하기도 했죠. 일단 단기 조치에 그쳤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제재 해제 시점이 더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유업계가 중동 지역을 대신해 미국과 중앙아시아, 남미 등으로 다급히 수입처를 변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원유는 북·중·남미와 아프리카, 가스는 동남아·호주·북미 등으로 탈(脫) 중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로부터 이탈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인가 하는 질문 역시 던져볼 수 있겠는데요. 지난 연재 기사<호르무즈發 에너지 충격, 왜 한국을 유독 세게 때렸나>에서 에너지 자급률이 낮은 국가일수록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파장이 더 컸다는 점 전해드렸죠. 둘이 서로 인과 관계를 갖는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최소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석연료가 갑자기 발견되지 않는 이상 에너지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산유국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대체 에너지 개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살펴봐도 중동 오일쇼크 이후 세계 각국에서 대체 에너지원 확보에 속도가 붙었는데요. 원자력 개발을 가속화하고, 발전소와 제조업 연료를 석유 이외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그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를 포함해 각국 대응 방향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달 16일 당정은 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에 원자력발전소 가동률을 80%까지 끌어 올리고,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투자를 추경(추가경정예산)으로 확대하기로 했죠.

물론 또 3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었음에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는 여전히 중동산 에너지에 의존해왔죠. 또 화석연료는 여전히 세계 1차 에너지 소비에서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구조 변화란 말 그대로 매우 쉽지 않은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4차 오일쇼크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현재 상황은 앞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중동, 나아가 화석연료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전환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석유(Petro)에서 전기(Electro)까지. 에너지는 경제와 산업, 국제 정세와 기후변화 대응을 파악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기사 하단에 있는 [조양준의 페트로-일렉트로] 연재 구독을 누르시면 에너지로 이해하는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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