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뜨거운 감자

이오성 기자 2026. 3. 1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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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강제매각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이재명 정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2라운드다. 농지 문제는 다주택자 중과세와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농업계에 커다란 거짓말이 하나 있다. 직접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다. 헌법 제121조 1항에 있다. 경자유전 원칙이 처음 헌법에 명시된 건 1987년이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하는 세상은 없었다.

‘오래된 거짓말’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2월2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강조하며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와 강제매각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이재명 정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2라운드’였다. ‘농지 투기와의 전쟁’은 1라운드의 다주택자 부동산 양도세 중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전체 농지 중 절반가량이 비농민 소유, 즉 ‘부재지주의 땅’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들 부재지주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 투기 사건 이후 지엽적으로 관련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경기도 여주시 한 마을의 경우 부재지주가 땅을 소유한 비율이 91%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2021년 3월 LH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향나무 묘목이 심겨 있다. ⓒ시사IN 조남진

서울 동작구에 사는 70대 김정선씨(가명)는 20여 년 전 경기도 안성시 땅 2000평을 샀다. 농사 외에는 개발이 제한되는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였지만 “갖고 있으면 무조건 땅값이 오른다”라는 부동산업자의 권유에 넘어갔다. 김씨는 비농업인이지만 농사를 짓겠다는 농업경영계획을 관청에 제출함으로써 농지 소유가 가능했고, 이후 20년 넘게 지역의 임차농에게 ‘불법 소작’을 주고 있다.

김씨는 당시 평당 5만원 정도에 농지를 구입했는데, 현재는 호가가 50만원이 넘는다. 10배 넘게 올랐지만 ‘이익 실현’은 하지 못했다. ‘땅값이 계속 오를 줄 알고’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농지전용(농지를 건축물 설치 등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이루어져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전수조사 움직임이 알려졌다. 계속 가지고 있다가는 ‘애물단지’가 될 것 같아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팔겠다는 사람만 많고 사려는 사람은 없다”라는 소리만 들었다. 농지은행에 위탁해 ‘농지연금’을 수령하는 제도가 있지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김씨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

최근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은 ‘강제매각 방안 검토’라는 대통령의 말 때문이다. 이를 엄포라고만 볼 수 없다. 강제매각은 실제로 법에 명시된 내용이다. 농지법 제11조는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농지에 대해 ‘처분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 이런 조치가 실제로 이루어진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유튜브의 농업 관련 채널에서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농지 강제매각이 현실화하리라는 콘텐츠가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은 명확하다. ‘비거주 부동산’과 함께 ‘비자경 농지’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책의 목표는 ‘비싼 토지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있어 보인다. 2024년 기준 농지은행을 통한 평균 농지 거래금액은 평당 약 18만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의 평균 농지 가격은 평당 약 3만원 수준이다.

농지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의미

비싼 농지는 결국 신규 농민의 농촌 진입을 막고, 영농형 태양광 등 현 정부의 주요 농업정책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 위원회(농특위)의 한 위원은 “이재명 대통령은 비싼 농지 문제를 해결해야 지역균형발전과 농촌 재생에너지 확대 문제가 풀린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월24일 국무회의에서 “산골짜기에 버려지다시피 한 밭도 20만~30만원씩 하니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라며 비싼 농지가 문제를 직격했다.

농지값이 오른 건 결국 투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김씨와 같은 장삼이사는 물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불법으로 농지를 사들였다. 반도체 산업단지, 신도시 등 개발 호재가 터질 때마다 불법 투기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특히 2021년 국민주거안정 정책을 집행하는 LH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 토지를 투기성으로 매입한 사건은 커다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025년 7월16일 제22대 국회의원 농지 소유 현황과 문제점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이후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 취득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더욱 세세한 영농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지자체 심의위원회의 검증도 거쳐야 한다. 여기에 귀농 인구의 감소 등이 맞물려 농지 거래는 뜸해졌고 가격 또한 하락 추세다.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지 문제는 다주택자 중과세 문제와는 다르다. 외지의 투기세력은 물론 상당수 농민도 자기 땅값의 하락을 원치 않는다. 농업소득으로는 미래가 없는 현실에서 유일한 버팀목이 땅값이기 때문이다. 자칫 섣부른 정책 집행은 농민과 비농민 모두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지의 전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등 투기심리를 억제하는 한편 그 반대급부로 농민기본소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농지 규제라는 채찍과 농민기본소득이라는 당근이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 시절 농특위에서 농지제도개선 분과장으로 활동했던 조병옥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경자유전 원칙이라는 문구 자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현장에서는 경자유전 원칙이 ‘사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지는 빠르게 ‘합법적으로’ 비농업인의 소유로 옮겨가고 있다. 고령 농민의 사망 후 도시에 사는 비농민 자식이 땅을 상속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상속’은 경자유전 원칙에서 예외여서 자식의 소유권을 제한할 수 없다.

8년 이상 자경한 농민이 농사에서 은퇴한 경우에도 농지 소유권은 그대로다. 그 밖에 비농업인이 소규모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경우 등에도 소유권이 인정된다. 2040년에는 고령농의 은퇴 등으로 전체 농지의 84%가 비농업인의 소유가 되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강제매각 등 ‘처벌’ 위주 정책을 펼치는 건 불필요한 논쟁만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조병옥 전 사무총장의 생각이다.

농지 이용 실태 전수조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시점은 지방선거 직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에는 직불금 부정 수령 실태 등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적잖은 혼란이 불가피하다. 조병옥 전 사무총장은 “전수조사는 도구일 뿐, 앞으로 농지 문제에 대해 어떤 계획을 수립하느냐가 중요한 숙제다”라고 말했다. 농지개혁이라는 ‘아주 뜨거운 감자’가 우리 밥상 위에 올라왔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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