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걸린 ‘전두환 회고록’ 승소, “5·18 왜곡·폄훼 콘텐츠 아직 많다”

광주·차형석 기자 2026. 3. 18. 07: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월12일, ‘전두환 회고록’ 재판이 끝났다. 대법원은 전두환 측에 7000만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당사자였던 조영대 신부를 만났다. 그는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다.

‘전두환 회고록’ 재판이 끝났다. 2월12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허위 사실이 담긴 회고록으로 5·18 유공자 등 관련자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힌 전두환(1931~2021) 측에게 7000만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7년 6월, 5·18 단체 네 곳(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과 조영대 신부가 민사소송을 제기한 지 정확히 8년8개월 만이다.

조영대 신부는 광주대교구 하남동성당 주임 신부를 맡고 있다. ⓒ김흥구

조영대 신부(63)는 몬시뇰 조비오 신부(1938~2016)의 조카다. ‘5월의 사제’라 불리는 고 조비오 신부는 5·18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앞장섰다. 그해 5월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몰려 4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조 신부는 5·18 당시 자신이 목격한 헬기 기총 사격을 증언한 바 있다. 2008년 1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되었다. 은퇴한 원로 사제 시절에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2016년 세상을 떠날 때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은퇴 사제에게 주는 생활비 등을 모두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에 썼다.

조비오 신부는 조카를 무척이나 아꼈다. 조영대 신부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조비오 신부가 조카들 뒷바라지를 했다. 5·18 이후 투옥되었을 때도 당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조카 조영대’의 안위를 걱정했다. 8년8개월 ‘전두환 회고록’ 재판은 조영대 신부에게 운명 같은 것이었다. 2월24일 광주 하남동성당에서 조영대 신부를 만났다.

민사소송을 낸 게 2017년 6월이었는데.

전두환 회고록이 나오고 나서 5·18재단,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측이 성당으로 찾아왔다. 사자(고 조비오 신부) 명예를 훼손한 부분을 복사해 왔다. 저도 인간인지라 그 내용을 보고 화가 많이 나더라. 성당에 오신 분들이 고소를 해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설명해주었다. 당시에는 5·18을 폄훼·왜곡하는 것에 대해 처벌할 법이 없었다. 전두환이 광주 시민들에게 끼쳤던 만행을 축소하고 5·18을 왜곡·폄훼하는데도 법적으로 달리 소송할 근거가 마땅찮았는데, 구체적으로 ‘조비오 몬시뇰’을 적시해 사자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법정에 그를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5·18 당시 헬기 기총 사격을 증언한 것을 두고서 ‘거짓말’ ‘파렴치’ 같은 표현을 썼다. 생전에 ‘삼촌 신부’님은 5·18을 왜곡·폄훼하는 내용을 접하면 깊은 한숨을 짓고, 손을 꽉 움켜쥐곤 했다. 나이가 70대 넘어서는 기도로 응답했다. ‘하느님, 도대체 언제까지 광주는 이토록 왜곡·폄훼당하고 불명예를 업고 살아가야 합니까?’ 눈물을 글썽여가며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전두환 회고록’은 명예를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헬기 사격을 부인한 것이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제로서 소송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재단·민변 분들을 만나고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법정 다툼에 대한 부정적 트라우마 같은 것도 있었다. 제 ‘동창 신부’님이 원자력발전소 반대 투쟁으로 고소를 당해 법정 다툼을 오래 해야 했다. 법정 다툼이 갖는 어려움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부담감이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 신부’님이 ‘사자명예훼손’을 겪는 게 조카로서 분노가 치밀었지만, 단순히 돌아가신 분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개인적 차원이었다면 고소하지 않았을 거다. 이 소송이 5·18 진상규명을 위해 무척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저는 교회의 사람이고, 이런 공적 활동을 하려면 광주대교구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더니, ‘힘들겠지만 진상규명을 위해 조 신부가 수고해달라’고 허락해주셨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은 2018년 9월에 나왔다(4개 단체에 각 1500만원,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원 등 총 7000만원 배상. 69개 부분을 허위로 판단해 왜곡된 내용을 수정하지 않으면 출판·판매 금지). 그러고서 전두환의 ‘사자명예훼손’ 형사재판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의 활동 결과를 기다리면서 항소심 재판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또 재판이 진행되던 2021년 11월, 전두환이 사망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소송 수계’라고, 피고가 사망하면 그 권리와 의무를 이어받을 사람을 정해야 하는데,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면서 부인 이순자씨가 소송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리더라. 또 ‘전두환 회고록’에 담긴 내용 중 70여 곳에 달하는 표현이 소송 대상이었기 때문에, 쟁점과 법리 다툼이 치열했다.

2019년 11월17일 광주시 동구 전일빌딩 외벽의 ‘5·18 당시 총탄 흔적’이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연합뉴스

9년 만의 승소 확정, 어떤 마음이 들었나?

대법원 판결할 때 5·18재단과 다른 고소인들이 갔다. 저는 신부로서 해야 할 일이 있어 가지 않았고, 판결을 전해 들었다. 대법원이 1·2심의 판결이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결론 내릴 것이라 짐작했다. 최종 판결을 전해 듣고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했다. 재판이 늦어진 데 이유가 있다지만, 최종 판결이 나오는 데 이렇게도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나,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내는 게 이렇게도 더딘가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정의로운 판결이 너무 지연되고 있구나, 우리 사회의 사법적 부실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남은 일은?

9년 만에 전두환 회고록 관련 소송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의 명예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보복이 아니라 기억의 보존이다. 왜곡과 침묵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음 세대가 진실을 정확히 배우고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나? 5·18을 왜곡·폄훼하는 콘텐츠가 아직도 많다. 처벌은 약하고, 그런 콘텐츠를 올리면 벌금보다 더 많이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라.

5·18 50주년이 몇 년 남지 않았다. 평화와 대동이라는 5·18 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이어줄 수 있을까.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싣는 것이 이 점에서 중요하다. 재판은 끝났지만 ‘기억할 책임’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넘어왔다. 진상규명의 동력이 떨어진 느낌인데, 이 재판 결과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국가 폭력의 문제로 기억되도록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이번 재판은 제가 주도하기보다는 동행했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적 소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함께 가려고 한다.

혹시 대법원 판결 이후 전두환 측에서 연락 오지 않았나?

전혀 없다.

광주·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