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에서 쓰고 있는 당신, 파수꾼 또는 탐사꾼

한겨레 2026. 3. 1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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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AI 그리고 당신] 어디까지 ‘쓰기’라고 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AI 시대, 당신의 쓰기는 안녕하신지 물었던 첫 번째 글에 33분이 답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잠깐이나마 드라마 ‘시그널’을 떠올릴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래서 구글폼에 기록된 AI 사용기를 ‘편지’인 양 읽었습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고등학생에서부터 이학 박사, 작가와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생성형 AI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써주셨습니다. AI 사용기를 읽으며 생성형 AI 사용 수준을 물었던 제 질문이 우문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33분의 소감을 읽으며 ‘생성형 AI 사용 수준’이 사용자의 위치와 활동 분야, 글쓰기 장르와 생성형 AI 접근성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각자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많은 분이 문장 검토, 번역, 피드백과 같은 영역에서 AI를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한 독자분은 ‘검토해 달라고 하면 도움이 될 때가 꽤 많다’고 했고, 또 다른 분은 ‘내가 쓰는 글은 삐죽거리며 늘어지는데 AI 글은 찰지고 형태가 예쁘다’고 하면서 피드백과 문장 수정에 AI 도움을 언급했습니다. 또 학위논문을 준비하며 번역 용도로 많이 사용했다고 하신 분도 있었고, 업무상 기획안을 짤 때 기획과 구성은 본인이 설정한 후 AI를 사용하는데 ‘글 쓰는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언급도 있었습니다. 그간 전문적인 영문 번역, 적절한 피드백, 구체적인 첨삭 등 학력 자본이나 높은 비용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그 문턱이 낮아지면서 쓰기에 대한 부담이 덜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내 것’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서는 주저함도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판단과 관점, 감각과 목소리, 경험의 해석과 같은 자리에서는 AI 개입의 적절성을 묻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한 분은 ‘애초에 AI가 주는 문장이 만족스러웠던 적도 없고 제 글에 섞으면 톤과 초점이 맞지 않아서요’라고 하며 본인의 ‘톤’을 지키고자 하는 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다른 독자분은 ‘글쓰기의 개성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고, 어떤 분은 AI 사용을 두고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에 비슷한 색깔로 덧칠만 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을 학생이라고 밝힌 한 독자분은 ‘AI가 생성하는 정보에 대해 의심하고 최대한 다양한 자료를 통해 교차 검증한다’고 하면서, 생성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은 끝내 ‘내 생각’에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50이 넘은 나이에도 ‘생각의 실종, 경험의 실종’을 우려하며 글쓰기 배움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신 분의 말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AI 사용기를 읽으며 공교롭게도 ‘AI’가 아니라 오히려 ‘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3명의 답글 속에는 각자 쓰기가 무엇인지 저마다의 ‘선’을 만들어 가고 있는 흔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 선을 지키는 일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 선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다시 그어지는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단순히 쓰기와 생성의 경계가 아니라 무엇을 쓰기라고 부를 것인지 다시 묻는 자리일 것입니다. ‘쓰기의 가장자리’는 어떨까요. 이때 ‘가장자리’는 단순한 바깥이나 주변부가 아니라 랑시에르가 말했듯 기존의 몫의 분할이 흔들리고, 보이지 않던 이들이 말할 자리를 새롭게 얻는 재배치의 자리와 가깝습니다. 만약 그 가장자리에서 그간 언어를 둘러싼 학력과 자본, 권력의 진입 장벽을 낮춰서 그 누구라도 언어의 품격을 둘러싼 시비 앞에서 위축되지 않는다면, 또 언어 기술의 부담 때문에 구경꾼의 언어에 머물렀던 이들이 공론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또 장애와 국적 등의 여러 이유로 언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던 이들이 기존의 경계를 넘어 좀 더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만약 그렇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쓰기의 힘을 지켜내는 파수꾼처럼, 또 때로는 쓰기와 생성 사이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탐사꾼처럼, 매 순간 그 가장자리에서 쓰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도 좋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상상이 안일한 낙관일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현재 AI는 그간의 언어 기술의 문턱을 낮추는 대가로, 문장에 실리는 감각과 윤리, 책임의 경계를 흔들며 넘나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매일매일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이들의 노동과 그 삶에 깃든 수많은 생명을 우선한다는 약속입니다. AI 피드백은 동료들 간의 사회적 관계와 공존해야 하고, AI 문장 첨삭은 구체적 맥락을 체화한 말과 글이 지닌 리듬과 온도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강렬하게 쓰기에 대해 묻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다음의 질문을 통해 ‘쓰기’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반짝이는 언어로 나의 감각을 발견해 본 적이 있을까요.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않고 그 문제의식을 정리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본 적이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윤리적으로 고양된 마음으로 그 생각을 전달해 본 적이 있을까요. 밥상에 깃든 손과 발의 노동에 감사하며 지구 안에 살아가는 생명의 마음을 말과 글로 써 본 적이 있을까요. 나를 나답게 해방시키는 글쓰기, 자본과 권력의 몫을 재배치해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글쓰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누군가에게 온기와 용기를 건네는 쓰기. 혹시 해보셨을까요.

이곳에서 필요한 것은 나를 회복시키고, 타인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권력과 자본의 몫을 다시 배치할 수 있는 쓰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쓰기는 삐뚤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너를 숨 쉬게 하는 ‘쓰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새벽 5시, 우리는 ‘쓰기의 가장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쓰기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며 쓰기를 재발견해 보면 어떨까요. 혹시 당신이 최근 발견한 ‘쓰기의 힘’이 빛나는 문장이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문장을 여기에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AI 시대에도 대체할 수 없는 ‘쓰기의 힘’이 무엇인지 함께 기록해보고 싶습니다.

☞RE: 당신이 최근 발견한 ‘쓰기의 힘’이 빛나는 문장은?

박숙자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새벽 5시 AI 그리고 당신’은?

서강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박숙자 교수가 AI 도입 이후 나타난 교육적·사회적 갈등과 가능성을 살피고, 이와 관련된 질문과 고민들에 응답합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 사건 등에 대한 정리와 기록을 중심으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고민’을 드러내고 함께 궁리합니다. ‘편지 쓰기’ 형식으로 말을 건네며 AI 시대 교육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기록하려 합니다. 격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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