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공시론] 어쩌겠니, 약이 없으면

약사공론 2026. 3. 1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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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약사 (전 한미약품 고문, 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회장)

어쩌겠니, 약이 없으면--- 너에게 1

어쩌겠니,

너는 아픈데 약이 없으면

어쩌겠니 너는,

아픈데 약이 없으면

밥으로 살다 몸이 아픈데

뜻으로 살다 마음이 아픈데

어쩌겠니,

아픈데,

약이 없으면

너는,

지금!
임종철 약사. 약사공론 DB

봄이 오고 있네요. 원추리 새싹들이 너도나도 고개를 내밀고, 화단울타리 회양목들이 작디작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부지런한 개나리가 노란꽃을 화사하게 펼치기 시작하고 있지요. 남녘에는 벌써 매화, 산수유 꽃들이 봄맞이 손님들을 반기고 있다지요.

봄은 입맛으로도 느끼지요. 냉이된장국, 봄동김치가 밥상에 오르기 시작하면 봄이 오는 걸 실감하지요. 옷차림으로도 봄이 오는 걸 알아차리게 되지요. 옷이 얇아지고, 색깔도 밝아지면서

걸음걸이들이 가뿐해지곤 하지요.

하지만, 아픈 사람들,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약사의 마음은 계절의 흐름을 그저 즐길 겨를이 없기도 하지요. 더구나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 해동기에는 어르신들 부음이 잦아지니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지요.

아, 이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같지 않도다!")

요즈음 며칠간 뉴스를 보면 그 옛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네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은 시작이 벼락같았던데 비하여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네요. 이미 "이란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폭격을 받았다", "사망자 부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우울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전투군인들은 물론이지만 노약자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필연이고, 그 누구보다도 바빠지고 수고해야 하는 사람은 보건의료인들이지요. 긴급 재난구호활동에 맨처음 나서서 부상과 질병 치료를 감당하는 직업의 필연적인 사명이기도 하지요.

재난과 가난에 처한 노약자 중에서도 어린이기아, 어린이질병, 어린이노동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린이무덤'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는 짐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의 글귀를 세계 각국의 정치군사 책임자들이 귀담아 듣고 "사람을 위한 정치, 전쟁을 않고 평화로 해결하는 외교"에 나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기아와 질병을 긴급구호나 사후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왜 사전에 기아와 질병을 막고 건강한 삶을 지켜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국가 내부의 빈부격차, 국가간 전쟁으로 초래되는 "구조적 폭력"에 의한 기아와 질병의 뒷치닥거리(?)를 하는 것이 왜 보건의료인의 숙명이 되고 있는가? 저는 북한어린이들, 동남아어린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지원활동을 해오면서 이런 큰 의문을 갖게 되는 개운치 않은 경험을 해오고 있네요.

따라서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사전예방 평소건강을 보전하는 '건강'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이며,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고 정의한 것에 더하여 "차별없이 건강한 생활이 보장되는 평화, 거대한 기아와 질병을 발생시키는 전쟁과 재난이 없는 상태"라는 좀더 적극적인 의견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같은 생각에 이르게 되면, 저는 상식이지만 절실한 슬로건을 표현하게 됩니다.

"전쟁비용을 평화비용으로! 군사비용을 복지비용으로! 파괴비용을 건강비용으로!"

하지만, 국가적 세계적 상황을 보면 이같은 희망(希望)은 무망(無望)한 것이라고나 할 막막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저의 평생 슬로건은 "사람 죽이는 돈 사람 살리는 데 쓰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약을 만들고 약을 나누는 직업인 '약사'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가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아픈 사람, 슬픈 사람들을 헤아리며 "아픔을 줄이고 슬픔을 공유하는 약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숭고하고 고마운 일인가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가슴에 되새기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약의 접근성이 의료의 접근성보다 상대적으로 간편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약사들에게는 물론이고, 환자들에게도 실감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존재가 의식을 지배한다. 의식이 존재를 해석한다." 최근 저 스스로 정의해보는 개념입니다. 약사로서 스스로의 '존재와 의식'을 가끔은 돌아보는 의미있고 재미있고 가치있는 생활 --- 선후배 약사님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