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 대통령 지키려 ‘계양을’ 떠나…전략공천도 유권자 뜻이 중요”[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도 그를 꺾지 못했다. 이른바 ‘돈봉투 사건’의 긴 터널을 지나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 근 3년. 수사와 재판,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329일 동안의 억울한 옥중생활은 고통인 동시에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벼리는 담금질의 시간이었다.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학생·노동 운동가와 노동·인권 변호사를 거쳐 5선 의원, 광역시장, 당대표를 지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3)가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맸다.
복귀의 첫 시험대는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다. 인천 계양을 공천을 두고 ‘대통령의 복심’ 김남준 전 청와대 대변인과 벌이는 양보 없는 경쟁은 현재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외교 전문가이기도 한 그의 시선은 국내 정치 문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에 대해 냉철한 국익의 관점을 제시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국가의 명운을 고민하는 경륜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6·3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계양을 공천을 둘러싼 정면 돌파 의지는 물론, 검찰·사법 개혁에 대한 소신과 정치철학, 그리고 정치를 통해 꿈꾸는 궁극적 미래에 대해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인터뷰는 지난 1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했고, 17일 추가 전화 통화로 내용을 보완했다.
돈봉투 사건 무죄, 그리고 검찰개혁
- ‘돈봉투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폰 녹음파일이 위법적으로 수집됐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어요. 해당 녹음파일에는 “(돈을) 나눠줬다고 영길이 형한테 말했어”라며 송 전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정말 결백합니까.
“3만개나 되는 녹음파일 중 송영길이 시켰다는 말이 없어요. 오히려 내가 이정근에게 ‘돈 드는 선거 하면 절대 안 된다, 내 이름 팔아서 돈을 요구한다는 정보가 있으니 네가 체크해보라’고 주의를 주는 녹음파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고의로 이걸 증거목록에서 뺐죠. 제 변호인이 강력히 항의하고 재판장이 추궁하자 그제서야 검사는 ‘해당 파일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검찰도 녹음파일로는 유죄가 안 나올 것 같으니까 별건수사로 넘어간 거예요.”
- 검찰은 ‘별건의 별건’ 수사로 송 전 대표의 싱크탱크 ‘먹사연’(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의 후원자들까지 압수수색했어요. 그 과정에서 1억원을 후원한 고교 후배 기업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있었죠.
“검찰의 강압 수사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검찰은 늘 별건 수사로 협박합니다. 저는 그분의 사망 소식을 장례가 다 끝난 뒤에야 들었어요. 그분이 잠든 창원시립공원묘지에 다녀온 직후인 2023년 11월9일, 조계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향해 ‘물병을 던져버리고 싶다!’고 격분한 배경이에요.”
- 정치인은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데, 스스로 얼마나 깨끗하다고 자부하나요.
“저를 표적으로 삼은 검찰이 돈봉투와 먹사연 사건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저와의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했어요. 검찰이 뒤지고 뒤져서 먹사연 후원금 중 4000만원이 여수 국가산단 내 폐기물 시설 인허가와 관련된 돈이라며 저를 3자 뇌물죄로 기소했죠. 하지만 1심부터 무죄가 선고됐어요. 저는 부당한 정치자금은 일절 받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계양을 카드 없었다면 검찰·당 지도부가 사지로 몰았을 것
6·3 보궐선거 계양을 공천 여부, 당 뜻에 따르겠지만 내 발로는 안 떠나
법왜곡죄 반드시 필요…최순실 태블릿PC 조작 주장 충분히 일리 있어
한국, 미국의 이란 전쟁에 동참해선 안 돼…여기에 여야 한목소리 내야
- 수사와 재판, 투옥을 겪으며 우리 형사사법체계에서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작심한 게 있습니까.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죠. 일반 형사사건은 경찰이 수사해 검찰로 송치하면 검사가 제3자 입장에서 수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검찰 특수부는 자신들이 인지한 사건을 자신들이 기소해요. 그러니 목표를 정해놓은 ‘토끼몰이식 수사’가 반복되는 겁니다. 고소·고발도 없었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왜 특수부가 수사합니까? 저 같은 정치인은 싸울 힘이라도 있지만, 평범한 공무원이나 기업인, 서민들은 한 번 걸리면 집안이 송두리째 망가져요.”
- 17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설치 법안의 최종안을 발표하고 19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여전히 남은 불씨는 보완수사권 문제예요. 정부와 여당 강성 의원·강성 당원들 간 의견 대립이 첨예한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경파에 경고성 언급을 하기도 했어요.
“대통령께서는 수사인력 부족으로 사건이 지체돼 고통받는 서민들의 형사부 사건을 염두에 두고 보완책을 고민하신 듯해요. 하지만 저는 보완수사요구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하면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이 무너지고, 경찰이 이를 핑계로 사건을 검찰에 떠넘겨 사건 적체가 더 심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 재판소원제, 대법관 증원)이 민주당 주도로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어요. 입법과 행정을 장악한 정부·여당이 사법부까지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이야기도 여당에서 계속 나오고 있고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평소 신념과 배치되는 것 아닌가요.
“12·3 내란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는 헌법 수호 의지가 없음을 자인했어요. 즉시 위헌 선언을 하기는커녕 심야에 회의를 소집해 계엄사령부와의 협력을 논의했다는 의혹까지 있지 않습니까?”
- 입증된 사실은 아닙니다만.
“의혹 수준이라 해도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는 사실상 계엄 사태에 영합했어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이재명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기 위해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 역시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린 행위입니다. 따라서 조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하거나 탄핵당해야 마땅하죠. 사법권력이야말로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입니다. 국회의원은 4년마다 심판받지만 판사는 65세 정년이 보장됩니다. 판검사를 통제할 유일한 수단은 국회의 탄핵소추권인데, 1948년 헌정 이래 판검사 탄핵은 이번 국회에서야 처음 이뤄졌어요. 그러니 그들은 항상 법 위에 군림했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 법왜곡죄가 아니어도 수사기관에 대한 처벌은 현행 법률, 즉 직권남용죄로도 가능합니다. 고소·고발 남발에 대한 우려도 있고요.
“저는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용될 거라 보지도 않고요. 처음엔 고소·고발이 몰리겠지만 다 걸러집니다. 그리고 법왜곡죄도 어차피 검사가 기소하고 판사가 판결하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가 있을 경우에만 기소되고 유죄 판결이 나겠죠.”
-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인데, 공론화나 숙의 과정 없이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지적에는 어떤 입장입니까.
“이 정도면 숙의 과정을 거친 것 아닌가요? 사법개혁은 절실합니다. 판검사들은 정권과 무관하게 권력의 우산 속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견제받지 않고 살아왔으니까요.”
‘계양을’ 향해 뛰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

송 전 대표는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5선을 지낸 인천 계양을에 도전장을 내고자 한다. 이곳은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송 전 대표가 대선에서 석패한 이재명 상임고문의 원내 진입을 위해 기꺼이 지역구를 비워줬던 곳이다. 현재 김남준 전 청와대 대변인도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사무실을 마련함에 따라, 계양을은 공천권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격전지로 부상했다.
- 2022년 왜 계양을을 양보하고 낙선이 확실한 서울시장에 출마했나요. ‘밀약설’이 나올 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였습니다.
“이재명 후보를 원내로 진입시키지 않았다면 윤석열 정치검찰의 보복 수사에 대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실상 구속돼 정치생명이 끊어졌겠죠. 그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1600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당대표로서 정치적 소명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를 지켜야 했어요. 또한 계양을 카드가 없었다면 당 지도부는 그를 안철수 후보가 나오는 분당갑에 전략공천해 사지로 몰았을 거예요. 제가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이 후보까지 그렇게 되면 이낙연 쪽 사람들이 당권을 장악했을 겁니다. 그건 저의 정치생명이 부정되는 것이기에 존재론적 위기마저 느꼈습니다.”
- 어째서 그런가요.
“저는 친문(친문재인) 세력과 치열하게 싸워 당대표가 됐어요. 제가 아니었다면 이재명 대선 후보 탄생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친문 세력은 이낙연을 밀기 위해 대장동 사건을 터뜨렸어요. 이에 맞서 저는 공정한 경선으로 이재명 후보를 확정했고 이후에도 끊임없는 공격을 막아냈어요. 대선 당시 친문 의원들이 선거운동을 전혀 안 한다, 유세차조차 돌리지 않는다는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의 측근(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윤석열 후보를 공개 지지했고요. 그럼에도 그들은 대선 패배 책임을 저와 이재명 후보에게 뒤집어씌웠어요. 그런 그들이 당권을 잡게 할 순 없었습니다.”
- 김남준 전 대변인의 출마를 허용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습니까.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시겠죠.”
- 만약 당 지도부가 계양을이 아닌 다른 지역구(인천 연수갑·광주 광산갑 등)로 전략공천한다면 수용할 건가요.
“당의 결정에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내 발로는 계양을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전략공천 또한 당원의 뜻을 수용해서 하는 것이지 정청래 대표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보궐선거를 왜 전략공천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정치는 국민이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씀이 옳습니다. 당원이 주인 된 정당을 강조하며 1인1표제를 통과시킨 정청래 대표가 본인의 말을 지킬 거라 봅니다. 계양 주민과 인천시민의 여론에 따른 판단을 기대합니다.”
- 국회 복귀에 성공한다면 8월 당대표 선거에도 도전할 건가요.
“당대표를 안 해도 국회의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특별감찰관 임명이 지연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즉시 임명해야죠. 그래야 측근 비리가 통제될 것 아닙니까? 취임 1년이 다 되도록 국회와 청와대가 서로의 탓으로 미루는 것은 국민이 보시기에 변명일 뿐입니다.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행해야 합니다.”
- 지난 총선 시기 소나무당을 창당하면서 변희재·최대집씨와 연대한 것을 두고 얼마 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비판 섞인 언급을 했어요. 당시 왜 그들과 손을 잡았나요.
“저희 지지자들이 변희재씨의 유튜브 채널을 많이 보기에 이유를 알아보니, 그가 윤석열 정부와 가장 선명하게 싸우고 있었어요. 이후 손혜원 (전) 의원 소개로 만났고,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태블릿PC 조작 의혹에 관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어봤죠.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사기 탄핵을 주장하며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신뢰가 무너졌죠. 그래서 탈당시켰어요. 최대집과 손혜원 (전) 의원도 함께 탈당했고요.”
- 법원은 JTBC와 손석희 전 JTBC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변희재씨에 대해 징역 2년을 확정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조작설을 믿나요.
“밝혀야 할 의혹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태블릿PC 실사용자가 김한수 전 행정관임을 가리키는 증거들이 있음에도 항소심에서 증인 신문조차 이뤄지지 않았어요. 부실한 판결이죠. 언론인의 권력 비판을 명예훼손으로 몰아 실형 2년을 선고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요.”
- 그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잘못됐다고 보나요.
“탄핵은 100% 동의합니다. 여러 가지 국정농단 사안들이 워낙 심각했으니까요.”
외교관 꿈꾸던 고흥 소년, 공산주의 허상 목격 후 자주적 삶 결심

그는 1963년 전남 고흥에서 4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면서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전학 갔다. 광주 대동고 3학년 때 겪은 광주민주화항쟁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1년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후 학생운동에 매진했다. 1984년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이 됐다. 졸업 후에는 인천으로 내려가 고 노회찬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했고, 이후 독립해 택시·버스·화물 등 운수노동자운동을 했다. 1994년 서른 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했다. 중앙 정치무대에 본격 입문한 건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계양을)에 당선되면서다.
- 어릴 적 꿈은 뭐였습니까.
“강대국을 상대로 담판을 벌인 고려 문신 서희 같은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 대동고 2학년 때 ‘교련 반대’ ‘특별수업 반대’ 시위를 주동한 걸 보면 반골 기질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고교 시절 다산 연구 대가인 박석무 선생님의 지도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며 의식화된 영향이 컸어요. 특별수업 반대 시위를 주동한 날은 1979년 10월26일이었어요. 대통령비서실 김용범 정책실장과 이번에 강동구청장 후보로 나서는 강경량 경기남부자치경찰위원장도 당시 저와 같이 주동했죠. 그날 밤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새벽에 나가라는 거예요. 나와 보니 박정희가 사망했어요.”
- 5·18민주화운동의 참상도 현장에서 목격했겠군요.
“본격적인 항쟁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시작을 목격했어요. 5월17일 토요일이었죠.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최루탄 연기를 뚫고 도망치는 대학생들을 공수부대원들이 끝까지 쫓아가 곤봉으로 머리를 가격했어요. 순식간에 아스팔트에 피가 흥건해지고 피비린내가 진동했어요. 쓰러진 이들은 짐짝처럼 트럭에 실렸고요. 공포감에 ‘악’ 소리도 안 나왔습니다. 그때 버스 뒷좌석에 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창문을 열고 공수부대를 향해 ‘야, 이놈들아!’ 하고 소리쳤어요. 그러자 군인 한 명이 버스에 올라 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그날 저는 학우들을 모아 가두시위를 주동한 뒤 해산했는데, 선생님들이 체포될지 모르니 빨리 피신하라더군요. 19일 여수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돌아오려 했지만, 광주가 봉쇄돼 버렸어요.”
-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하다가 안기부 남산 지하실에 두 차례나 끌려갔다죠.
“두 번째 잡혀갔을 때, 요원들이 ‘야, 송영길. 여기가 사랑방이야? 너 세 번째 들어와서는 살아서 못 나간다’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팬티까지 벗기고선 나체 사진을 앞면, 후면, 양 측면 이렇게 4장을 찍더라고요. ‘너 여기서 죽으면 한강에 던져야 하는데 시체가 떠오르면 식별해야 하니 찍는다’는 거예요. 극한의 공포와 함께 자살 충동까지 느꼈습니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소련 등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의 연쇄 붕괴는 당시 학생운동권과 사회주의·진보 세력에게 큰 충격을 줬다. 송 전 대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1년 모스크바를 비롯해 동유럽 여러 도시를 한 달간 배낭여행 하며 그곳의 현실을 목도한 그는 이후 사법시험에 도전했고, 2년 만에 합격했다.
- 노동운동을 하던 중 돌연 사법시험에 도전한 이유가 뭔가요.
“공산주의의 허상을 목격한 후 자주적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딸이 생기고 나니 경제적 자립 없이는 정치적 자주성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막내아들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간절한 당부가 있었습니다. 당시 택시노조 조합장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거쳐 허락을 받았는데,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할 때 동지들이 매달 치킨을 사 들고 격려하러 왔습니다(웃음).”
- 부인인 남영신 여사도 운동권 투사로 유명하던걸요.
“아내는 이화여대 경제학과에 다니며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어요. 교회 대학생부에서 처음 만나 제가 쫓아다녔죠. 2학년 때 신촌 로터리에서 이대와 연합 가두행진을 벌일 때 경찰에 밀려 대열이 무너지면서 아내가 밑에 깔렸습니다. 아내를 주시하고 있던 저는 총알처럼 달려가 삼손의 힘으로 아내를 끌어냈어요. 이후 사귀게 됐죠(웃음). 아내는 4학년 2학기 때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가리봉동 오거리에 있는 신명전기라는 회사에 들어가 납땜 노동자로 일했어요.”
- 5선 의원에 당대표까지 했지만 재산이 거의 없더군요. 평생 기부를 해온 걸로 아는데, 어떤 신념이 있는 건가요.
“저나 아내나 물욕이 없습니다. 돈이 생기면 나누고 기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었어요.”

- 송영길의 정치와 정책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어떻게 답하겠습니까.
“안 보려고 하니 안 보이는 겁니다. 저는 늘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라는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정신으로 정치를 해왔어요. 그런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실사구시 정치와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정치와 맞닿아 있죠. 노무현 정부 때 진보 진영이 거세게 반대한 한·미 FTA를 제가 강력히 찬성한 것이나, 탈원전 속도조절론을 주장한 것이 그 예입니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 제가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비율을 25%까지 크게 확대하자고 주장했는데, 그때 제 말대로 해서 블루칩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당시 주가지수가 680이었는데 6000을 넘기도 했습니다.”
- 대표 정책으로는 뭘 꼽을 건가요.
“누구나집 프로젝트죠(집값의 10%만 있으면 입주해 주변 시세의 80~90%의 월세를 주고 살다가 10년 뒤에 10년 전 최초 분양가로 집을 살 수 있는 주거 모델). 이미 인천 미단시티에서 550가구 시범사업을 해서 성공했어요. 만약 12억원짜리 아파트를 집주인이 8억원의 전세를 안고 4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샀다고 칩시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1년 만에 이 집이 20억원이 됐는데, 8억원을 낸 세입자에게는 10원의 이익도 안 돌아가고, 집주인만 집값 상승분을 전부 가져가는 건 너무도 불공정하죠. 상승분을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일정 비율로 분배하자는 게 이 프로젝트의 취지입니다.”

이란 전쟁 등 외교 현안에 대한 쓴소리
그는 문재인 정부 첫 개각 때 외교부 장관 자리를 희망해 법무부 장관 자리를 마다했을 만큼 외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러시아어·중국어·독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봅니까.
“한·미 동맹이 중심축이지만,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외교는 자멸 행위예요. 과거 미·소 냉전 시대의 미국과 소련 관계가 권투 시합이라면 지금의 미·중 관계는 축구 시합이란 말이 있습니다. 축구 시합처럼 타협의 공간이 있다는 거죠. 그 틈새에서 실리를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창하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언급한 ‘남북 두 국가론’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할 능력도, 의사도 없으니 서로 간섭하지 말고 따로 살자는 것 아니겠어요? 한반도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측면이 있겠지만, 남북 간 평화는 두 국가론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북·미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군사적 긴장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또 훗날 북한에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중국군의 개입을 막고 통일을 주도하려면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헌법 3조는 유지돼야 해요.”
- 이란과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중·일을 비롯한 7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요구했어요.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동참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한 헌법에도 어긋나고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는 일이죠. 필요하다면 우리 상선 보호를 위해 자체적으로 뭘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이란과 적대적 행위로는 안전 보장이 안 되기에 오히려 이란과 타협해야 한다고 저는 보는 거죠.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논란 때 그랬듯, 대통령이 대미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야가 강력히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또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사드 같은 방공무기를 중동으로 반출한 만큼 이를 방위비 분담금을 깎는 강력한 협상 무기로 활용하고 전시작전권 회수 명분으로 축적해야 합니다. 이런 시국에도 여야가 내부 싸움만 하며 침묵합니다. 제가 빨리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에게 왜 정치를 하는지, 정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게 뭔지 물었다. “조국의 통일”이란 답이 돌아왔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현실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그는 “남북의 청년들이 훗날 압록강, 두만강 초소에서 함께 경계 근무를 설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박주연 선임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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