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0기에 둘러싸인 마을”···울진 주민들 “집단 이주 대책 마련하라”

김현수 기자 2026. 3. 1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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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북면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현장 인근 도로에서 지난 13일 사토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도로 주변에는 ‘사토 공사 즉각 중단’ ‘이주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깃발이 걸려 있다. 김현수 기자

“안 짓는다 카디 또 짓는다 안 카니껴. 불안해가 살겠니껴.”

지난 13일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2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60대)가 마을 앞 공사현장을 가리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마을 앞 공사현장에는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현장에서 나온 흙더미(사토)가 작은 산처럼 쌓였다. 그 위로 굴착기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좁은 마을 도로를 따라 덤프트럭이 잇따라 오가자 흙먼지가 뿌옇게 흩날렸다.

고목2리는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1~2㎞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변에는 이미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8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신한울 3·4호기까지 완공되면 울진군에는 모두 10기의 원전이 들어서게 된다. 한 지역에 원전 10기가 밀집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김씨는 “원전 짓는다고 쌓아둔 사토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숨도 못 쉴 지경”이라며 “최근엔 쌓아둔 사토 때문에 마을 주민 1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조용하던 마을이 풍비박산 났다”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중단됐던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이 재추진되면서 경북 울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주민들은 정부 정책 변화로 피해를 떠안게 됐다며 공사 중단과 집단 이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울진군 북면 고목2리 주민들로 구성된 이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는 주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주민 120여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주민들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과 함께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계획 철회 등을 요구했다.

울진군 북면 고목2리 주민들과 이주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청와대 앞에서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중단과 집단 이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남효순 이주대책위원장은 “국가 에너지 사업에 희생된 결과 수많은 핵발전소에 둘러싸여 살게 됐고 고향은 피폐해졌다”며 “추가 원전 건설에 노후 원전까지 사용기한을 10년 연장한다는 소식에 주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울 1·2호기는 각각 2027~2028년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두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안전성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갈등의 배경에는 정부의 원전 정책 변화가 있다. 신한울 3·4호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됐다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건설이 중단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원전 정책이 전환되면서 사업이 다시 추진됐다. 주민들은 이 과정에서 원전 인근 마을이 반복적으로 피해를 떠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주 대상 기준 시점을 둘러싼 갈등도 깊다. 기준 시점에 따라 이주 대상 가구 수와 보상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원전 건설이 다시 결정된 2023년 6월 실시계획 승인일을 기준으로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수원은 사업이 중단되기 전인 2014년 12월을 기준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민 김호철씨는 “2014년 이전부터 살던 주민 가운데 요양원 이용 등을 위해 자녀 집으로 잠시 주소를 옮긴 경우도 있다”며 “전기료나 수도요금 등 실제 거주 흔적을 제시해도 한수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 대책위원장도 “탈원전 정책으로 사업이 중단될 당시에는 주민들에게 별다른 고지도 없었다”며 “정부 정책 변경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마을 주민 약 130가구는 이주 문제와 관련해 한수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경북 울진군 북면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 현장 인근에서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비산먼지가 마을 방향으로 퍼지고 있다. 이주대책위원회 제공

다만, 원전 건설 계획 이후 이주 보상을 기대하고 마을로 전입한 사례도 실제 발생했던만큼 최종 결론은 법정에서 내려질 전망이다.

한수원 측은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과 관련한 이주 대책은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이주 대상자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며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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