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제2참모차장과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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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4월 15일 경남 진해의 옛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됐다.
1년이 넘는 오랜 준비 끝에 1987년 11월 해병대사령부가 다시 출범했을 때 성 장군은 전역한 뒤였고, 당시 해군 제2참모차장이던 박구일 중장이 14년 만에 부활한 해병대사령관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비록 현실에선 해군참모차장을 역임했지만 오늘날 해병 역사엔 '제16대 해병대사령관'으로 기록된 성 장군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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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는 6·25 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49년 4월 15일 경남 진해의 옛 덕산 비행장에서 창설됐다. 당시 국방부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을 감안할 때 상륙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출범 당시 해병대는 해군에서 넘어 온 장교 26명과 부사관 54명, 병 300명 등 380명으로 구성된 대대급 소부대였다. 초대 사령관(신현준)의 계급도 중령에 불과했다. 3만명 가까운 병력을 거느리고 3성 장군(중장)의 지휘를 받는 오늘날의 해병대사령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해병대에 육·해·공군 못지않은 독립성을 부여해 ‘준(準) 4군 체제’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유신 직후인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적으로 군을 관리·운영해야 한다”며 해병대 해체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해병대사령부는 사라지고 해군본부가 직접 해병대를 지휘하게 됐다. 대신 해군참모총장 밑에 두 명의 참모차장(중장)을 둬 1참모차장이 해군, 2참모차장은 해병대를 각각 관할하게끔 했다. 예전의 해병대사령관이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사실상 격하된 셈이다. 이를 두고 육군 출신인 박 대통령이 육군과 성격이 비슷한 해병대의 성장을 견제한 조치로 여기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5공화국 시절인 1987년까지 14년간 총 8명의 해병 중장이 해군 제2참모차장 직위를 거쳐 갔다. 정확한 보직명은 해군참모차장이었으나 현재 이들은 모두 전직 해병대사령관으로서의 예우를 받는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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