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관리’ 쪽으로 기운 中… 韓·中 공조 ‘전략적 신뢰’가 관건 [심층기획-신국제질서, 한반도의 선택]

조채원 2026. 3. 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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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접근법 ‘中 역할론’
美·中회담 연기 변수… 北·美대화 난망
北 ‘적대적 두 국가’ 명문화 가능성
핵보유국 지위 인정 전제로 배수진
中 백서 ‘한반도 비핵화’ 표현 빠져
트럼프 2기 전략 문서에서도 누락
비핵화 압박보다 현상 유지에 무게
韓 ‘END 구상’·中 ‘쌍궤병행’ 접점
“양국 신뢰 회복·전략 대화 활성화
주고받는 실리적 로드맵 구축 필요”
미·중 정상회담 연기로 북·미 대화 재개의 동력이 약화되면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 역할론’의 한계와 한·중 공조의 조건이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협상 전제로 내세우며 북·미 간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접근은 이미 비핵화 압박보다 핵 관리 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접근법에서 한·중 간 일정 부분 접점이 형성되며 공조의 여지가 있지만, 양국 간 전략적 신뢰가 충분히 복원되지 않았다는 점은 제약 요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 대통령 공식환영식 후 정상회담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 중재 역할을 요청했고, 시 주석은 ‘건설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연합뉴스
◆핵보유국 vs 비핵화… 여전한 북·미 간극

최근 북한은 조선노동당 제9차 당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더욱 분명히 했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국가 관계로 규정하는 내용이 헌법에 명문화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대남 정책 기조로 고착화하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건 없는 대화’ 의지를 내비쳤지만, 북한은 ‘비핵화 전제 대화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미국을 협상 상대로 한정한 채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전제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국가(nuclear power)’로 언급하며 손을 내민다 해도, 실제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5일 오전 출근길에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조치를 묻자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 전환 그리고 자신들의 헌법에 명문화한 핵보유국 지위를 지금 조건으로 걸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그런 바탕에서 고심하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북한과 미국이 어떻게 협상을 이어갈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북핵 문제가 양측에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접경국인 중국 역시 핵 확산이 자국의 전략적 이해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미 협상 환경 조성에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다. 최근 한·중 관계 복원 물꼬를 튼 정부가 한반도 정세 관리와 북·미 대화 재개 여건 조성을 위한 대중 외교 접점을 모색하고 있는 이유다. 정 장관은 같은 날 북·미 대화 추동을 위해 ‘한반도 평화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과 관련해 “계속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비핵화에서 핵 관리… 달라진 중국

중국의 북핵 정책은 기본 원칙의 유지와 현실적 조정이 병행돼 왔다. 중국은 원칙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유지·강화 원칙을 일관되게 표명해왔지만 대북 제재 이행이나 압박 수위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안정 유지를 우선시하며 일정한 완충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중국의 북핵 접근은 비핵화 압박보다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현상 유지와 정치적 타협에 무게를 두는 흐름을 보인다.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중국은 이른바 ‘한반도 3원칙’을 고수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이 그것이다. 2006년 10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을 당시 중국은 이를 ‘제멋대로(悍然·한연)’ 한 핵실험이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채택에 동참하는 등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한연’은 중국이 과거 적대국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표현으로 외교적 수사 가운데 강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중국의 압박에도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는 이어졌다. 특히 제5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미·중 간 입장을 절충한 형태의 ‘쌍중단’과 ‘쌍궤병행’ 구상을 제시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멈추자는 방안이며,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구축 논의를 병행 추진하자는 접근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배경에는 체제 안전 우려와 북·미 간 적대 관계가 존재한다는 중국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 11월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에는 한반도 문제 해결 방식으로 ‘정치적 해결’이 더욱 강조됐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제한적 선제타격 구상인 ‘코피 작전(Bloody Nose)’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현실 인식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이 발생할 경우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중국 동북 지역으로 대규모 난민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이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2025년 말 발표된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군축 및 비확산 백서’(군비백서)에는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번 군비백서는 1995년과 2005년에 이어 20년 만에 나온 세 번째 보고서로, 앞선 두 보고서가 10년 간격으로 발간된 것과 달리 발표 시점 자체가 전략적으로 고려됐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백서에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빠졌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으로선 핵 비확산 규범의 훼손이 자국의 전략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축이 북·미 관계라는 점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북 인식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공식 대북 정책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과 올해 1월 국방전략(NDS) 등 주요 전략 문서에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하지 않았다.
지난 10일 북한 구축함 최현호에서 실시된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조선중앙TV·연합뉴스
◆“한·중 전략 대화 복원해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중국이 공조하는 건 어려운 문제지만 실마리가 없는 건 아니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은 긴장 완화를 통한 협상 환경 조성과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의 병행을 강조해 온 중국의 북핵 접근법이 이재명정부의 ‘END 구상’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END는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단계적 로드맵을 통해 남북의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을 말한다.

이 원장은 지난 3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포럼에서 “END 구상은 ‘한반도 비핵화’ 대신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라는 유연한 전략을 사용하면서 한·중 간 대북 공조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다”며 “중국은 공개적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할 생각은 없다는 점에서 추가 7차 북핵 실험을 막고 북핵 실험 동결, 감축과 같은 단계에서 비공개적 방식으로 한국의 요구에 호응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 역할론’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한·중 간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정부에서 양국 간 신뢰관계는 상당히 약화했고 서로 소통 기제도 없었다. 현재 구체적 협력이나 실질적 소통의 수준이 대단히 낮아 북핵 문제를 논할 만한 공간은 상당히 좁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가 현 정부 들어 복원의 물꼬를 트긴 했지만 북핵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본격적으로 다룰 만큼 신뢰가 쌓였는지는 미지수란 얘기다. 김 소장은 “중장기적 전략을 공유하는 심층적 대화, ‘전략 대화’를 활성화하고 한국과 중국이 주고받을 수 있는 이익을 명확히 한 로드맵을 구축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중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계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 핵 보유는 일본 군비 증강의 명분이자 동북아에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할 수 있는데, 한·중은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다. 강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를 한국은 북한 비핵화로 보지만, 중국은 미국의 한반도 내 전략자산 전개 반대로까지 보는 인식 차는 그대로인 상황”이라며 “한·중이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감안해 최소한의 공통적 인식의 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조채원 기자 chae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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