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은] BTS 공연 5000만명 보는데… 광화문 현판 “한글 걸자” vs “원형 지켜야”
국가유산청 “공감대 생기면 검토”
서울 광화문에 한자 현판과 함께 ‘한글’ 현판도 걸자는 주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1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외국인 관광객들은 광화문을 배경으로 연신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수문장과 해치 석상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光化門’이라고 적힌 현판도 사진에서 빠지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자 현판과 함께 한글 현판을 병기하는 방안에 대해 묻자 의견은 엇갈렸다. 캐나다인 윈 데이비슨(13)군은 “역사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한글도 함께 소중히 할 필요가 있다”며 한글 현판 도입에 찬성했다.
반면 프랑스에서 온 아이반 욜(51)씨는 “프랑스에도 과거 독일(나치 시절)이 남긴 건축물이 있지만 흔적을 없애지 않는다”며 “시대가 바뀌어도 보존해야 할 과거가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인 보는 BTS 공연 날 ‘한글 현판’ 주장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오는 21일 광화문을 무대로 정규 5집 앨범 ‘아리랑(ARIRANG)’ 컴백 콘서트를 여는 게 계기가 됐다.
BTS 컴백 공연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생중계되는 만큼 한글을 전면에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에 문화재의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번 공연은 세계 190개국 생중계 되며, 약 5000만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BTS 공연 당일 하루만이라도 한글 현판을 임시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 단체는 “전 세계인이 공연을 통해 광화문을 보게 될 텐데, 한자 현판만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국가유산청은 공연을 이유로 현판을 교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공연까지 남은 기간이 촉박한 만큼 한글 현판 설치는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다만 광화문 한글·한자 병기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기존 현판을 유지하면서 처마 아래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거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날 광화문을 찾은 이들은 한글 현판에 긍정적인 반영을 보였다. 직장인 손은택(29)씨는 “요즘 한글 간판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낀다”며 “한글 현판을 만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캐나다·중국 이중국적자인 테리 오(50)씨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지금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 더 우선일 수 있다”며 “한글을 사용하는 사회라면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글의 가치를 더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모(51)씨는 “광화문이라는 건축물에 더해 한국의 상징을 세계에 보이는 기회”라며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광화문이 자칫 중국 건축물로 보이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광화문은 역사”… 문화재 가치 훼손 우려
반면 현재의 한자 현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 박태호(28)씨는 “광화문이라는 이름에는 ‘빛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한자이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온 아오 유리(26)씨는 “한자도 한국 역사의 일부인 만큼 굳이 바꿀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건축물 자체의 역사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중국에서 온 루 슈오(48)씨는 “현대 가치와 역사적 건축물은 분리해야 한다”며 “한글 현판을 달면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린란드에서 온 스테판 파나이트(31)씨는 “한글로 바꾸자는 의견은 이해하지만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며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면 병기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친필 현판부터 금박 현판까지 논쟁 반복
광화문 현판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쳐 1968년 복원된 광화문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이 걸렸다.
그러나 광화문이 원래 위치를 벗어나 경복궁 중심축에서 틀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2006년 광화문의 ‘제 모습 찾기’ 사업이 다시 시작됐다. 한글 현판을 유지하자는 주장과 정확한 복원을 위해 한자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중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자 현판을 선택했다.
새 현판을 공개하고 3개월 만에 균열이 생기면서, 다시 복원 문제가 불붙었다. 여러 차례 연구용역 끝에 검은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한자 현판으로 결정됐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 이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과정에서도 서울의 대표 명소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광화문 현판 논쟁이 이어지면서 국가유산청도 한자 현판에 추가로 한글 현판을 거는 방식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두고 국민 정서와 전문가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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