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소송·판결 데이터 공개가 바꾸는 일본 법률시장

최현윤 변호사(법무법인 가온 일본팀)·변리사 2026. 3. 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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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법 시스템은 오랫동안 '종이와 팩스' 중심의 업무 방식에 의존해 왔다. 한국이 2010년대 초반 전자소송 시스템을 도입하며 빠르게 디지털화를 추진한 것과 달리, 일본 민사소송 실무에서는 최근까지도 종이 서면 제출과 우편 송달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도 사법 절차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제도가 민사재판 서류 전자제출 시스템인 'mints(民事裁判書類電子提出システム)'이다.

2026년 5월 21일부터 개정 민사소송법이 전면 시행되면서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제출하는 소장, 준비서면, 증거자료 등은 원칙적으로 mints를 통해 전자 제출해야 한다. 종이 서면 제출은 방식 위반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일본 민사소송 실무에서는 사실상 전자소송이 표준이 되는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개정은 단순히 서면 제출 방식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2022년 개정된 민사소송법은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2026년 5월부터는 이른바 '3단계'에 들어가면서 민사재판 절차 전반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전자 신청이 사실상 의무화되고, 재판 절차에서도 영상·음성 송수신을 통한 온라인 변론이 가능해지는 등 재판 운영 방식 자체가 디지털 환경에 맞게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 변호사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2026년 초 리걸테크 기업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변호사의 65.5%가 mints를 실제 재판에서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36%에 해당하는 약 1만7000명의 변호사가 계정 등록조차 완료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98% 이상의 변호사가 여전히 팩스를 업무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사건 기록 역시 종이 파일 중심으로 관리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이처럼 일본 법률시장은 아직 전통적인 업무 방식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환경은 리걸테크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사건 관리, 일정 관리, 문서 관리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법률사무 관리시스템(Legal Practice Management System)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서비스가 법률사무소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서비스인 클리오(Clio)는 현재 130개 이상의 국가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사건 관리, 일정 관리, 문서 관리, 청구 관리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는 리걸테크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26년 3월 일본 리걸테크 기업 AILEX합동회사는 법률사무소용 AI 리걸 OS인 'AILEX'의 iOS 애플리케이션 베타 버전 개발을 완료하고 선행 이용 변호사를 모집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서비스는 사건 관리, AI 문서 생성, 일정 관리, 전자송달 알림 기능 등을 통합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플랫폼으로, 특히 mints 의무화 이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자송달 관리와 사건 일정 관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모바일 기반 업무 도구로 소개되고 있다.

한편 일본 사법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은 전자소송 시스템 도입에만 그치지 않는다. 판결 데이터 자체의 디지털화 역시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2025년 5월 일본 국회에서는 민사 판결문을 전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일본에서 매년 발생하는 약 20만 건의 민사 및 행정 판결이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될 예정이다. 데이터베이스에는 민사소송과 행정소송 판결뿐 아니라 중요한 결정문도 포함된다.

데이터 운영 방식도 특징적이다. 데이터베이스는 법무부 장관이 지정한 비영리 기관이 운영하며 최고재판소로부터 판결 데이터를 전자 형태로 제공받는다. 이후 AI와 인력을 활용해 이름 등 개인정보를 가명처리(仮名処理)한 뒤 판례 데이터베이스 기업이나 리걸테크 기업 등에 유료로 제공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법률에 따르면 해당 제도는 공포 후 2년 이내 시행될 예정으로, 실제 판결 데이터베이스 운영은 2027년경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 법률시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판결문 공개 범위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판례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가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러나 판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면 법원의 판단 경향 분석, 분쟁 예방 서비스, AI 기반 법률 분석 등 다양한 데이터 기반 법률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은 이미 전자소송 시스템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판례 데이터베이스, 법률문서 자동화, 사건 관리 SaaS 등 다양한 리걸테크 서비스가 등장해 일정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이제 막 사법 절차의 디지털화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mints 의무화와 판결문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일본 법률시장에 데이터 기반 법률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일본 리걸테크 시장에서는 사건 관리 시스템, 판례 분석 서비스, AI 문서 작성 도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사법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은 이제 막 시작된 단계이며, 그 과정에서 이미 전자소송 환경을 경험한 한국 리걸테크 기업에게 예상보다 큰 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본 시장에서는 기술력만으로 사업이 확장되기는 어렵다. 일본의 시장 구조와 사업자의 니즈, 그리고 현지 비즈니스 관행을 깊이 이해하고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기업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실질적인 기회를 선점하게 될 것이다.

최현윤 변호사(법무법인 가온 일본팀)·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