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소송 남발 어떻게 막나…독일 ‘중대한 기본권 침해’인지 사전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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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확정판결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재판소원이 지난 12일 시행된 뒤 16일까지 모두 68건이 접수된 것으로 17일 파악됐다. ‘기본권 구제’ 수단으로 도입된 만큼 제도 취지에 부합하는 사건도 눈에 띄지만, 성범죄자와 협박범 등이 형량에 불복하는 일종의 민원성 청구까지 쏟아지면서 헌법적 가치를 다투어야 할 중요 사건들이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도 제기된다. 위헌법률심판이란 헌재 본연의 기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헌재로서는 소송 남발에 따른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양질의 사건을 걸러낼 사전심사 제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헌재가 어떤 사건을 전원재판부로 넘겨 ‘1호 사건’으로 선정하는지는 향후 재판소원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사전심사의 기준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재판소원이 정치인이나 범죄자의 도피처가 될지,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지 성격이 규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전심사 과정에서 재판소원의 본질과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제도 운용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앞서 재판소원법을 시행한 독일과 스페인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살펴봤다.
“연방헌재, 최종 상고법원 아냐”
1951년 연방헌법재판소원법을 시행한 독일은 1956년 법을 개정해 사전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독일은 6차례 법 개정을 통해 재판부의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오늘날 사전심사 제도를 정립했다. 독일 사전심사 제도에서 본안 심판으로 회부되는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헌법소원에 원칙적인 헌법적 중요성이 있는 경우와 본안 재판의 거절로 인해 청구인에게 특별히 중대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다. 즉,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해서 모두 본안 심판 대상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중대한 헌법적 의미를 갖는 쟁점, 기본권 해석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본안 심판에 회부토록 한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12일 발간한 ‘2025년 연례보고서’에서 “헌법소원은 오직 기본권 또는 기본권에 준하는 권리의 침해만을 다툴 수 있다”며 “이는 연방헌법재판소의 심사기준이 좁다는 뜻이며, 특히 일반 법원의 재판을 심사할 때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방헌법재판소는 초기 판례에서부터 일반 법원을 위한 ‘최종 상고법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며 “일반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일반법을 올바르게 적용했는지를 심사하는 것은 연방헌법재판소의 역할이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지난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심사된 전체 헌법소원 4916건 중 일반 법원의 판결 등을 대상으로 한 재판소원은 4151건이었다. 이 가운데 인용된 사건은 49건으로, 인용률은 1.18%에 그친다.

개별적인 판례들을 통해 대상 사건 기준을 확립해 나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사례는 재판소원 청구 사유가 모호해 남소(소송 남발) 우려가 제기되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판소원 시행 첫날부터 대법원에서 불법 대출 등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소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고,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수천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도 법원이 사생활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재판소원 청구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해 징역 47년4개월을 확정받은 조주빈 역시 ‘옥중 블로그’에 재판소원을 찬성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 제도를 연구한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는 “헌재가 단지 ‘이기기 위해’ 재판소원을 제기하는 당사자들의 사건을 일일이 심사한다면 그것 자체로 커다란 사건 누적과 재판 지연을 초래할 것”이라며 “재판소원은 헌재가 가끔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할 수 있는 금덩어리를 발견하는, 일종의 ‘사금 처리 작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소원 핑퐁에 13년 걸린 사건도
우선 헌재의 사건 적체와 느린 처리 속도가 문제화됐다. 1998년 스페인 정부가 헌재에 ‘바스크 연맹이 국내외에서 배타적 대표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바스크 스포츠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한 사건의 선고는 13년이 지난 2012년에야 나오기도 했다. 이에 스페인은 2007년 헌법재판소조직법을 고쳐 재판소원 청구인이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이 존재한다’는 요건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전심사를 맡은 지정재판부가 곧바로 각하 결정을 선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스페인 헌재는 2024년 9344건의 재판소원 사건을 접수했는데 인용률은 1.4%다.
특정 재판소원 사건을 기폭제로 벌어진 헌재와 대법원의 대립은 또 다른 뇌관이었다. 대표적인 판례가 바로 ‘헌법재판관 손해배상 사건’이다. 2004년 1월 스페인 대법원은 헌재 재판관 개인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관이 사전심사를 태만하게 하면서 헌법소원의 불수리 결정에 충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했다. 이 판결에 대해 재판소원이 청구됐고, 2013년 헌재는 대법원 판결을 무효로 선고해버렸다. 이로 인해 두 기관의 갈등이 격화하자, 2007년 개정된 헌법재판소조직법에서 ‘어떤 사법기관도 헌재의 결정에 대해 재판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김하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소원을 먼저 도입한 독일과 스페인 모두 제도 시행 이후에도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법 개정 등 후속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며 “재판소원법 도입을 두고 충분한 검토 없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있었던 만큼 헌재와 법원뿐만 아니라 국회 역시 보완 입법을 통해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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