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스페인, 재판소원이 바꾼 사법 정의…“법원 형식주의, 누굴 위해 존재하나”

박지영 기자 2026. 3. 18.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판사가 재판을 시작할 때 소송당사자를 호명하는 건 단순히 재판 진행을 위한 절차가 아니다. 소송당사자에게 본인 주장을 말하고 권리를 행사할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시작 신호다."

197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뮌헨 법원이 법정 밖 복도에서 재판 시작 알림 소리를 못 듣는 바람에 입정하지 못한 피고인에게 그대로 불출석 처리하고 패소 판결한 사건에 대해 "피고인의 기본권을 명백하게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판사가 재판을 시작할 때 소송당사자를 호명하는 건 단순히 재판 진행을 위한 절차가 아니다. 소송당사자에게 본인 주장을 말하고 권리를 행사할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시작 신호다.”

1976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뮌헨 법원이 법정 밖 복도에서 재판 시작 알림 소리를 못 듣는 바람에 입정하지 못한 피고인에게 그대로 불출석 처리하고 패소 판결한 사건에 대해 “피고인의 기본권을 명백하게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피고인이 자신의 주장과 사실관계, 법적 논거를 충분히 진술하고 상대방 주장에 방어할 절차적 권리를 보장한 ‘법적 청문권’이 재판소원을 통해 확립된 대표적인 판례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출석했다면) 직원이 법정 밖에 찾아가서 부르고 구내 스피커라도 활용해야 한다”며 “법원의 이런 형식주의적인 판단은 스스로 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를 잊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50년 전 독일에서 형성된 이 판례는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도입된 재판소원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스페인에선 검찰의 구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한 법원 판결을 두고 헌재의 심판 대상에 오른 재판소원 사건이 의미 있는 판례로 꼽힌다. 2009년 검찰은 절도 경범죄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게 하루 6유로를 기준으로 45일에 해당하는 금액의 벌금형을 구형했지만, 1심은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12일의 자택구금형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도 구금형이 유지되자, 피고인은 ‘공소제기 기반의 원칙’ 위반과 형벌 범위에 대한 판결 이유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효과적인 사법 보호를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며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법원이 공소장에 제기된 사실적, 법적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범죄 사실이나 중대한 법적 평가를 근거로 판결할 수 없다는 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판사가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제대로 안 썼다고 판단해 원심판결을 무효로 결정했다.

제도 도입 초기 재판소원 사건의 사전심사 요건인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을 유연하게 해석했던 스페인 헌재는 이 결정을 통해 절차적·실체적 기준을 구체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재판부는 당시 이 사건이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본 이유에 대해 “형벌의 선고와 관련해 ‘기소 내용과 판결 간의 정합성 요청’(공소장에 기재하지 않은 새로운 범죄사실을 판사가 임의로 판결할 수 없음)에 관한 헌법적 법리를 명확히 하고 정교화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