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국민연금 수익 231조원, ‘실력’으로 증명한 신뢰

최은영 2026. 3. 1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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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학 전 국민연금공단 연금상임이사 기고
미래세대 부담 완화 위해선 적극적 수익률 상향책 절실
운용 독립성·전문성 보장···중장기적 성과평가 체계 필요
국민과의 소통도 더 힘써야

[김정학 전 국민연금공단 연금상임이사]국민연금이 2025년 한 해에만 231조 6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수익률은 무려 18.82%. 1988년 국민연금기금 설치 이후 역대 최고치다. 최근 3년간의 성적표를 복기해 보면 그 흐름은 더욱 고무적이다. 2023년 13.59%, 2024년 15.00%에 이어 2025년 18.82%까지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누적 연평균 수익률 역시 8.04%라는 탄탄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36년간 국민연금 현장을 지켜본 필자의 시선으로 볼 때 이 성과는 단순한 시장의 ‘운’이 아니다. 철저하게 설계된 ‘운용 구조’가 맺은 결실이다. 특히 공적 연기금이 수십 년간 이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 운용 체계가 이미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기금 적립금은 어느덧 1458조원에 달하며 1500조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GPIF 약 2400조원, 노르웨이 GPFG 약 1800조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서의 체급을 완성한 셈이다. 1988년 단 5000억원으로 시작했던 기금이 10년 주기로 ‘체급의 도약’을 일으키며 거대 공룡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대한민국 금융사의 자부심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이 압도적인 숫자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국민적 불신을 해소할 정책적 언어로 번역돼야 할 시점이다.

2025년의 경이로운 성과를 견인한 배경에는 세 가지 전략적 축이 존재한다. 우선 ‘자산 배분의 다변화’가 제대로 작동했다. 과거 국내 시장에 편중됐던 포트폴리오를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 중심으로 과감히 전환한 것이 주효했다. 수익원이 전 세계로 넓어지면서 특정 국가나 시장의 흔들림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길러졌다. 특히 자산군별 수익률을 보면 국내 주식이 82.44%로 폭발적인 성장을 주도했고 해외 주식 19.74%가 뒤를 받쳤다. 주식이 끌고 채권이 지지하는 이상적인 포트폴리오의 성공이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 역량의 고도화’가 힘을 보탰다.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 속에서도 유동성 관리와 손실 제한 장치가 체계적으로 작동했다. 위기 상황에서의 기민한 대응이 단순한 방어를 넘어 추가 수익 창출의 기회로 연결됐다. 리스크 관리가 단순히 ‘안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성과’의 핵심 요소임을 증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문성 중심의 인프라 개선’이 누적된 결과다. 성과보상 체계를 현실화하고 글로벌 네트워크와 리서치 역량을 축적하며 ‘운용의 질’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렸다. 정예 운용 인력 500여 명이 소신 있게 투자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면서 글로벌 투자사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근육이 붙었다.

우리는 231조원이라는 숫자가 갖는 현실적인 무게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수익금은 한 해 연금 지급액 약 49조 7000억원의 약 4.7배에 달한다. 물론 ‘운용 수익만으로 연금을 영원히 줄 수 있다’라는 식의 낙관론은 경계해야 하지만 운용 성과가 기금 고갈에 대한 심리적·재정적 압박을 완화하는 강력한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 1458조원 규모의 기금에서 수익률을 단 1%만 더 끌어 올려도 약 14조 6000억원의 재정 여력이 추가로 확보된다. 이는 보험료율 인상 폭을 조정하거나 재정 추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논의에서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수익률이 높을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은 완화될 여지가 생기고 반대로 성과가 부진하면 조정의 비용은 더 빨리 현실화한다. 기금 운용이 ‘투자’인 동시에 국가의 ‘재정 정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국민연금은 시장의 질서를 만드는 ‘표준’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후 주주권 행사와 의결권 정책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한 공시 관행을 유도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행보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수준을 결정짓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칙의 일관성이 곧 시장의 신뢰로 이어진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번 성과를 두고 “수익률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모두가 누리는 국민연금’이라는 선언이다. 이 약속을 지키고 숫자를 넘어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몇 가지 정책적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공고히 해야 한다. 장기 자산 배분의 원칙이 정치적 외풍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어 성과평가 체계를 ‘장기·위험조정’ 중심으로 정교화해야 한다. 1년 단위의 단기 순위 경쟁은 필연적으로 리스크를 왜곡한다. 10년, 20년 뒤의 성과를 내다보는 보상 시스템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국민연금이라는 거대 플랫폼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끝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투명하게 확대해야 한다. 신뢰는 ‘좋은 성적표’가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한 이해에서 생긴다. 자산별 성과와 위험 한도, 책임투자 원칙을 국민의 언어로 상시 공개해야 한다. 투명한 정보 공개만이 불필요한 오해와 괴담을 잠재우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투자기관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온기 어린 사회적 약속이자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위해 내건 가장 든든한 약속이다. 이번에 기록한 231조 6000억원의 성과는 그 약속이 흔들림 없이 지켜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다.

이제 우리는 이 경이로운 숫자를 한 해의 화려한 기록으로 남기기보다 미래 세대까지 안심할 수 있는 ‘신뢰의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다. 결국 국민이 원하는 신뢰는 성적표에 찍힌 높은 숫자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시장의 파고에 숫자가 잠시 흔들리더라도 국민의 삶을 끝까지 지탱하겠다는 국가의 진심 어린 책임감과 따뜻한 태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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