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2022년 5월 12일 후 보유자는 배상 못 받는다"
"사기 알고도 버텼다면 투기
매각한 투자자 손배액은 상향"

사기를 인지할 수 있는 시점 이후에도 코인을 보유해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배상받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른바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3월 6일 싱가포르 항소법원(주심 스티븐 총 판사)은 투자자들이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씨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스스로 초래한 불행의 원인 제공자(author of his/her own misfortune)'에게는 손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것은 폭락 사태가 본격화된 2022년 5월 12일 이후에도 코인을 처분하지 않고 보유한 행위를 사기 피해가 아닌 '투기'로 간주해,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단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아울러 사기를 인지하고 매각한 투자자의 경우 사기를 인지한 시점과 실제 투매로 인해 가격이 하락한 시점과의 시차를 인정해 원심보다 피해배상액을 상향조정했다. 사기인 줄 알고 코인을 매각하려고 해도 집단투매로 순식간에 가격이 내려간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항소법원, 손해배상액 상향 조정
재판부는 투자자들이 사기를 인지하고 남은 UST(테라 USD)를 일괄 매각한 것으로 간주되는 '기준 가격(Cut-off price)'을 토큰당 0.8011달러에서 0.60485달러로 낮췄다.
이는 2022년 5월 12일 당일의 시가와 종가 평균치다. 1심에서는 당일 시가인 0.8011달러를 기준가로 적용했다. 2022년 5월 12일 UST는 최고 0.829달러에서 최저 0.3626달러 사이를 오가며 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배상액은 투자자가 코인을 '실제 구매한 가격'과 매각으로 간주되는 '기준 가격'의 차이를 바탕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기준 가격이 내려가면 피해배상액이 올라간다.
손실액 계산의 기준 단가가 낮아짐에 따라, 전체 투자자 366명을 대신해 소송에 나선 10명의 '대표 청구인' 의 총 손해배상액은 약 45만 1000달러에서 약 68만 1600달러로 상향됐다.
"대표 청구인 10명에게만 구속력"
항소심 재판부는 사기를 인지했어야 하는 기준일(Cut-Off Time)을 협정세계시(UTC) 기준 5월 12일 오전 12시 1분으로 확정했다. 이 시점 이후에도 계속 UST를 보유한 것은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한 '투기'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기로 인한 손해는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권 씨는 2022년 5월 11일 트위터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본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누구나 UST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권 씨의 트윗은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누구에게나 '달러 페깅(가치 연동)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기에 충분한 14시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기준일을 확정했다고 썼다.
재판부는 "이때 처분하지 않은 것은 투자자가 '합리적인 수준의 신중함과 상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며, 법적으로 '스스로 초래한 불행의 원인 제공자(author of his/her own misfortune)'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4시간의 유예 기간 동안 손실을 줄이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하는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UST의 추가 가치 하락으로부터 자신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 매수를 중단하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UST를 모두 처분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확정된 기준일이 대표 청구인 10명에게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 개별 심리를 받지 않은 나머지 일반 청구인 356명에 대해서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각자의 개별적인 상황에 대한 증거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5월 12일 이후의 기준일을 적용받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싱가포르 로펌 포커스로아시아(Focus Law Asia LLC)의 안미미 파트너 변호사는 "이번 항소심 판결은 기준일을 설정해 투자자들이 언제까지 UST를 보유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했고, 기준 가격도 조정해 별도로 손해액을 상향 판단하기도 했다. 권 씨의 재산이 어느 국가에 있는지에 따라서 한국 법원에 승인을 거친 뒤 집행판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권 씨가 공동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2019년 발행한 가상자산 '테라'와 이를 보조하는 '루나'의 가격이 2022년 5월부터 급락하며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사건이다. 권 씨는 테라가 미국 달러화와 안정적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홍보했으나, 실제로는 그러한 구조가 유지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앞서 2025년 12월 미 법원에서 사기 등 혐의가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