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발목 잡힌 트럼프, 시진핑에 "한 달만 만남 미루자"
“전쟁 중 내가 여기 있는 게 중요”
호르무즈 경색 못 풀며 계산 꼬여
中엔 안보 의제 준비 기회 가능성

대(對)이란 전쟁에 발목을 잡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주쯤 뒤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한 달 정도만 미뤄 달라고 중국에 요구했다. 자신이 더 바라던 초대형 이벤트였지만, 종전 시기가 예상보다 더 늦춰질 가능성이 커지는 바람에 계산이 꼬였다. 중국이 수용할 경우 미중 관계의 불안정 국면도 연장될 수밖에 없게 됐다.
압박 의도 부인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행정명령 서명식이 열린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달 말로 예고된 중국 방문이 그대로 진행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 중국과 논의하고 있다. 나는 (중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전쟁 때문에 여기(미국에) 있기를 원하고 여기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한 달가량 연기해 줄 것을 (중국에) 요청했다”고 대답했다.
중국에 호르무즈해협 통항 선박 호위 작전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지 보름 남짓 뒤 열릴 미중 정상회담 전에 알고 싶다고 독촉한 지 하루 만에 그는 압박 취지를 부인했다. “그들(중국)과 함께할 날을 나는 고대하고 있다. 우리 관계는 아주 좋다”며 “간단하다. 전쟁이 진행 중이다. 내가 여기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약간 미뤄질 수 있겠지만 많이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초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회담할 예정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연기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14일 중국을 상대로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을 위한 자국 노력에 협조하라고 촉구한 뒤였다. 중국은 지난달 말 개전 뒤 줄곧, 미국과 이스라엘에 공격당한 우방국 이란의 주권을 옹호해 온 나라다. 방중 계획을 지렛대로 중국을 움직인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 의도로 해석됐다.
불안 국면 연장
방중까지 미뤄야 할 정도로 전쟁이 질질 끌리는 상황은 애초 트럼프 대통령 계산에 없었다. 대이란 군사 작전을 시작하며 그는 4, 5주 시간표를 제시했다. 실제 37년간 이란 최고지도자로 군림한 철권통치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공격 첫날 제거했고, 이란의 군과 미사일 역량도 일찌감치 무너뜨렸다. 예측이 빗나간 변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여파였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가는 이 해협이 막히자 국제 유가가 치솟고 미국 휘발유 가격도 급등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경색을 쉽게 풀지 못했다. 중국과 동맹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행방이 묘연한 고농축 우라늄의 반출도 난제로 꼽힌다. 단기간에 핵무기로 바뀔 수 있는 이 물질을 확보하려면 고난도 지상 작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중국에 가도 될 만큼 전황이 정리되기까지 2주는 부족하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연기 압박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다. 17일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미 양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문제와 관련해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미중정상회담 연기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반복됐지만 “추가로 제공할 정보는 없다”고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피했다. 호르무즈해협 호위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안정? 다시 긴장?
새 회담 일정은 일러야 내달 말쯤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 미중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 투하로 촉발된 ‘무역 전쟁’을 휴전 중인 상태다. 미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 안정화를 이끌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회담 성사 때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연기가 양국 관계를 다시 긴장 국면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직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한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중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과잉 생산 문제로 미 무역법 301조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을 불쾌해하고 있다. 관계 안정화 열망이 희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01조 조사는 관세 부과 사전 절차다.
회담 연기가 중국에는 안보 의제 준비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 전언을 인용해 미국 측 연기 요청에 앞서 중국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 방중을 4월 말로 미루는 방안을 제안했고, 중국이 대만 등 외교·안보 관련 회담 의제를 다듬는 데 추가로 주어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잠정 합의 조율
미중 정상 둘 다 국내 정치를 위해 회담이 필요하다. 임기 후반기 의회 세력 구도를 좌우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두(콩) 등 농산물을 많이 팔아야 집권 공화당 텃밭의 관리가 가능하다. 중국이 시장을 장악 중인 희토류도 공급망 독립 전까지 탈없이 수입해야 한다. 중국과의 무역 균형 회복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었다. 시 주석에게는 중국의 핵심 수출 시장인 미국의 관세를 낮출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15,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미중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틀째 회담을 마친 뒤 각자 언론과 접촉해 자국 성과 위주로 협상 결과를 소개했다. 회담에 참여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기존 희토류 합의 관련 문제들을 다뤘다”고 밝혔다. 리청강 중국 국제무역협상대표 겸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양측이 관세 수준 안정성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양국 무역·투자 촉진 메커니즘 구축도 회담에서 논의됐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세훈, 삼고초려에 응했지만... "장동혁 지도부 무능 넘어 무책임" 직격-정치ㅣ한국일보
- 119 신고했지만… '골든타임' 놓친 30대 공무원 비극, 뒤늦게 지침 바꾼 대구소방-지역ㅣ한국일보
- 명상 배운 후 연 매출 30억… 그가 사업 포기하고 스님 된 이유-문화ㅣ한국일보
- 엄마 몰래 환각 파티… 청소년 'OD' 유행 뒤엔, 캐묻지 않는 '창고형 약국'-사회ㅣ한국일보
- SK하이닉스 직원 평균 연봉 1억8500만원… 삼성전자보다 2700만원 높다-경제ㅣ한국일보
- "농협이 이러면 되나" 대통령 한마디에… 기름값 올린 농협주유소 즉각 가격 인하-경제ㅣ한국일
- "한국인들 기밀 유출?"… 美 오스카 시상식, '신라면 뽀글이' 등장한 이유-문화ㅣ한국일보
- 빌라에 '엑스터시 공장' 차린 일당… 챗GPT로 제조법 검색했다-사회ㅣ한국일보
- 'K팝의 왕' BTS가 돌아온다... 스위프트 넘어서는 수십 조원 경제 효과-문화ㅣ한국일보
- "성폭행 털어놔야 구원받아" 세 자매에 가짜 기억 심은 교회 장로... 형사 처벌 없었다-사회ㅣ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