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자승자박?…동맹국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았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3. 1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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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의 호르무즈 해협 군사작전 참여를 압박하며 추진한 이른바 ‘호르무즈 연합’ 구상이 사흘 만에 사실상 좌초됐다. 지난 1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 등을 콕 집어 군함 파견을 요구하고 “누가 돕는지 기억하겠다”며 위협성 발언을 내놓았지만 동맹국들은 일제히 선을 그었다. 결국 트럼프는 17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매우 실망했다”며 동맹국들의 거절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번 사태가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미국 우선주의’가 불러온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 전쟁 아니다“…일제히 퇴짜 놓은 동맹국들

미국의 파병 요구에 동맹국들은 이례적일 만큼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이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 현 상황에서 호르무즈 작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건 나토의 전쟁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전쟁 이전에 우리와 협의하지 않았고 이란에 관한 공동 결정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독일이 군사적으로 어떻게 기여할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미국과 가장 가까운 영국마저 키어 스타머 총리가 직접 나서 “영국은 더 확대된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며, 이는 나토 임무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구 70만의 소국 룩셈부르크의 그자비에 베텔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미국의 요구를 “협박”으로 규정하며 “누군가 혼란을 일으켜놓고 남들에게 도우라는 건 특이하다. 팝콘 먹으며 부자가 되는 건 (푸틴이고) 백악관에 있는 그 사람 덕분”이라며 비판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역시 “(파병은) 개입을 한 단계 더 확대하는 것”이라며 보류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는 아니타 아난드 외교장관이 “군사작전 시작 전 상의를 받은 적도 없고 참여할 의사도 없다”며 거절했다. 파병 후보국으로 거론되던 호주 역시 “요청받은 적도, 기여하고 있지도 않다”며 일축했다. 중국은 “각국은 군사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냈고, 한국과 일본은 헌법과 법적 절차 등을 이유로 신중론을 펴왔다.

◇사전 협의도 생략…누적된 ‘미국 우선주의’ 역풍

일각에서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군사적 요청을 외면한 기저에는 지난 1년간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들을 상대로 가해 온 일방적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작년 취임 이후 줄곧 “유럽은 망해가고 있다”며 나토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했고, 동맹국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 점령을 시사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반복하며 대서양 동맹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CNN은 “덴마크는 우수한 해군 능력과 미사일 및 드론 대응 경험을 갖추고 있지만 그린란드를 둘러싸고 트럼프와 갈등을 빚었다”며 “이러한 상황은 자신들이 시작에 관여하지도 않은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라고 요청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평소 트럼프가 이웃 국가인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거나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를 “미국의 51번째 주지사”라고 조롱하며, 중국 접근을 빌미로 100% 관세를 위협하는 등 경제·외교적 압박을 가해온 것 역시 캐나다의 즉각적인 ‘거리두기’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미국의 ‘관세 무기화’ 역시 긴장 관계의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달 미 연방대법원의 관세 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유럽연합(EU)과 중국, 일본, 한국 등에 대해 무역법 301조 조사를 통보했다. “상대국이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다”며 사실상 답이 정해진 조사 절차를 거쳐 관세를 대법원 판결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려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군함 파견을 요구받은 국가들 대부분이 미국의 301조 관세 조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이스라엘과만 공조하며 동맹국과 사전 협의 없이 이란 전쟁을 시작한 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황이 교착 상태에 이르자 전쟁 비용과 위험을 사후에 같이 나누자는 접근법이 동맹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영국의 경우, 트럼프는 앞서 스타머 총리가 “항공모함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우리는 이미 이겼다. 승전 후에 보내는 항공모함은 필요 없다”고 호언장담하다가, 상황이 장기화하자 뒤늦게 “영국이 기뢰 제거함조차 안 보낸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그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힘을 무기 삼아 동맹을 제 뜻대로 움직이게 강압해왔다”며 “이를 지나치게 남용한 탓에 세계가 가능한 한 미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라미 영국 부총리의 전 특별보좌관 벤 주다는 워싱턴포스트(WP)에 “유럽이 전체 안보 구조를 구축해온 그 초강대국이 이제 심각하게 변덕스럽고 감정적이며 예측 불가능해졌다”며 “전후 서방 동맹 체제 전체에서 미국의 의심할 여지 없는 리더십은 해체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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