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 美 유타주의 실험, 의사 대체하는 AI시대 열렸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2026. 3. 1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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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가 의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제 단순한 가설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미국 유타주에서 인간 의사의 개입 없이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만성질환 환자의 처방전을 갱신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치료에 쓰이는 190여 종의 약물에 대한 리필 처방을, 단돈 4달러의 비용만으로 인공지능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미국 내 최초의 주 승인 프로그램이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인간 의사의 진료 없이 인공지능이 법적으로 의학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한, 전례 없는 시도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회사가 바로 닥트로닉이다. 뉴욕 기반의 이 스타트업은 100개 이상의 대규모 언어모델 기반 에이전트가 협력하는 다중 에이전트 인공지능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이 인공지능은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병력을 청취하고, 임상적 추론을 거쳐 진료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문서화하는 모든 과정을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공지능이 홀로 처리하는 완전 자율형 진료 시스템이다. 닥트로닉의 웹 서비스는 24시간 인공지능 의사 상담을 제공하다가, 처방이나 진료가 필요하면 인간 의사의 원격진료로 연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닥트로닉은 2025년 7월 의학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자사 인공지능의 성능을 검증했다. 연구진은 긴급 치료 환경에서 실제 환자 500건의 진료를 후향적으로 분석하여 인공지능의 결과와 전문의의 판단을 비교했다. 결과는 놀랍다. 1순위 진단의 일치율은 81%, 상위 4개 진단 내 일치율은 95.4%에 달했다. 특히 치료 계획의 일치율은 99.2%였다. 유타주의 이번 결정을 다룬 언론들은 닥트로닉 인공지능의 치료 권고안이 의사와 99% 이상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이 독립적으로 진료하는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불일치 사례의 분석이다. 1순위 진단이 달랐던 97건을 전문의가 수작업으로 검토한 결과, 인공지능의 판단이 더 우수한 경우는 36.1%, 인간 의사가 더 우수한 경우는 단 9.3%에 불과했다. 나머지 54.6%는 동등하거나 판단이 모호했다. 불일치 사례의 90% 이상에서 인공지능이 전문의와 동등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보인 셈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모든 불일치 사례에서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오류나 환각 현상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은 아직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 공개본이므로 결과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이 연구에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전문의가 인공지능의 노트를 먼저 검토한 뒤 진료에 임했기 때문에 초기 인상에 이후 판단이 끌려가는 정박 효과의 가능성이 있다. 인간 의사는 원격 영상을 통해 인공지능이 접근할 수 없는 환자의 비언어적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 노트의 일관된 형식 때문에 맹검 처리(참여한 연구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일부러 숨겨 편향을 줄이려는 절차)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자율 주행의 단계에 빗대어 보면, 유타주가 허용한 리필 처방은 3단계(제한적 자율 진단)에 해당하고, 닥트로닉이 긴급 치료 환경에서 검증한 성과는 4단계(조건부 자율 진단)에 가깝다. 완전 자율 진단인 5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법적 책임 소재, 사회적 합의, 다양한 인구집단에 대한 안전성 검증 등 복합적인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례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의료 인공지능의 역할이 보조 도구에서 자율적 주체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유타주의 실험이 성과를 거둔다면, 의사 부족과 높은 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주들도 곧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의료 인공지능의 자율성 확대라는 거대한 변화의 첫 페이지가 지금 조용히 넘겨지고 있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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