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수비대 생존만을 위한 싸움… 전쟁 최종 패배자는 이란 국민”

이란 태생인 아누시 간지푸르(48)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주임 연구원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최종 목표는 거대한 이란을 민족·종교적 다양성에 따라 해체하는 것”이라며 “이란 정권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이 파국이 초래한 대가는 전 세계가 치를 만큼 막대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레바논 베이루트 성요셉대학에서 방문 교수 자격으로 이슬람 지성사를 강의하던 도중 이란 전쟁 발발 소식을 들었고, 이스라엘 공습이 격렬해지자 지난주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르몽드 칼럼에서 전쟁의 참혹한 풍경을 묘사하며 “이란 국민은 중동 전쟁의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자”라고 했다.
―미·이스라엘 공습으로 하메네이 등 수뇌부가 사망했다.
“논리적으로는 모든 이란인이 완전히 기뻐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역설이다. 우리는 그 범죄 우두머리가 재판에 회부돼 단죄받기를 원했다. 많은 이란인이 이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란 민중이 정권을 단죄할 기회가 없어졌다.”
―하메네이 정권은 왜 그동안 무너지지 않았나.
“이란은 근대 국가의 힘을 총동원해 사람들을 감시했다. 이스라엘 모사드가 하메네이를 추적했던 수단이 바로 이란 당국이 여성의 히잡 착용 등을 감시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였다.”
―지금 오히려 이란 체제의 결속력이 더 강해진 것 아닌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이란 민중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전과 정반대의 결과다. 이란은 이제 모든 시위를 국가에 대한 전쟁, 반역으로 다스리고 있다. 앞으로 시위나 정치적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그 억압의 규모가 어떻겠는가.”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한다.
“이미 이란의 민간 산업 인프라까지 파괴되고 있다. 국가 체제를 극도로 약화시킨 뒤 국민은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의 공격 이후 이란 체제는 극도로 허약해졌고, 그 결과가 지난 1월의 대학살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차단하고 계속 싸울 것이라고 보나.
“혁명수비대는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 가능한 한 끝까지 갈 준비가 돼 있다. 이것 역시 역설이다. 주변 걸프국을 공격하며 국제 안보·경제에 타격을 입히는 행동으로 국가를 생존시킬 수 있을까. 나는 현 이란 정권의 그 어떤 미래도 상상할 수 없다.”
―평범한 이란 국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테헤란에조차 방공망도, 대피소도 없다. 미사일이 날아와도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기득권 부패 때문에 사람들은 가게와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1~2주를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전쟁으로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인구 9000만명 이란에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면 충격이 엄청날 텐데.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다. 시리아 난민 사태가 이란 국민의 미래라면, 그 비용은 전 세계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란 국민들에게 대안이 없나.
“(팔레비 왕정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유능한 반체제 지도자들을 정권이 모조리 감옥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팔레비가 부상했을 뿐이다. 그는 아마추어이자 무자격자이고, 파리 같은 곳에서 왕세자의 삶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란 민중들이 가진 힘을 믿고 싶다.”
간지푸르는 지난 10일 르몽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는 지금, 나는 믿기 힘든 경험을 하고 있다. 한쪽 눈으로 이란에서 전해지는 참혹한 영상들을 보면서도, 다른 한쪽 눈으로는 내가 사는 창 밖으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피어오르는 연기, 혼란에 빠진 피난민, 그리고 구급차들의 행렬을 목격한다.”
―베이루트 공습을 지켜본 심경은.
“내 나라 이란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동시에 베이루트의 전쟁에 휘말리는 경험은 매우 기이했다. 과거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의 일부 구역만 공격했지만 이제는 모든 구역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한다. 여기저기서 폭발음이 들리고, 심지어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장면에 익숙해지게 된다.”
―레바논에서 700명 이상이 죽고 70만명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17일 현재 사망자 1000명, 난민 100만명 이상)
“우리는 지금 ‘새로운 중동’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다. 이란이든 레바논이든 시리아든 리비아든, 정부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끊임없는 내전에 허덕이는, 완전히 파괴된 땅으로서의 새로운 중동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 민중이 정권을 단죄할 기회가 사라진 것인가?
“불행하게도 그 질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의 목표물은 알리 하메네이의 목숨이 아니라 이란의 안정 그 자체였다. 그들은 이란의 혼란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전쟁은 이란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두바이·아부다비 등 걸프국의 화려한 도시의 특급 호텔과 고층 빌딩이 불타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란은 걸프국의 미군 시설을 겨냥했다고 말한다. 미국은 이 지역에 미군 방어벽을 구축했고, 걸프국들은 미국에 복종함으로써 사치스러운 삶을 보장받았다. 이들 나라엔 사실 ‘국민’이라는 존재가 없다. 노동자 계급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다. 공격이 시작되니 이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없다. 피상적 자본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지상전에 쿠르드족을 동원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우익 이론가들은 중동의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거대한 영토, 인적·물적 자원을 가진 이란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란엔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종교가 있었고, 이들이 ‘거대한 모자이크’를 이룬 나라다. 현 이슬람 공화국 체제는 소수 민족을 끝없이 박해해왔다. 네타냐후와 트럼프는 이같은 핍박의 역사를 ‘이란 해체’의 알리바이로 변질시키고 있다.”
―알리 하메네이 폭사 이후 일각에선 ‘자유로운 미국이 폭군을 축출시켰다’며 미국의 군사력에 경탄하기도 한다.
“그 주장은 미국·이스라엘 선전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라크·시리아·리비아 전쟁 당시에도 그런 주장이 나왔지만, 그곳 사람들은 더 비극적인 재앙에 빠지고 말았다. 한편으로 세속적 ‘민주 국가’가 종교 권력, 신정 체제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네타냐후가 트럼프를 페르시아의 키루스(Cyrus) 2세에 빗대거나,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가 구약성서를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중동 영유권을 주장한 적이 있다.
“네타냐후 같은 이 전쟁의 주도자들은 성서에 나오는 ‘메시아주의’를 언급하고, 심지어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 의원은 이번 전쟁을 서방이 이슬람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가장 큰 ‘종교 전쟁’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종교를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에 이른바 ‘이슬람 신정 국가’는 전근대적이거나 후진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이란은 근대 국가다. 전쟁을 하거나 다른 국가와 외교를 하는 모든 행위가 근대 국가의 틀 안에 있다. 그러나 이란에 민주주의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완전히 폐쇄적·폭압적·억압적·권위주의적 국가라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 건국 과정이 시온주의라는 종교 프로젝트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늘날 이스라엘은 중동 전역을 장악하겠다는 ‘메시아적 야망’을 품고 신정 국가로 더욱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하다.
미국 역시 결코 비종교적이거나 완전한 세속 국가가 아니라는 점 역시 트럼프 집권기에 명확해지고 있다. 인도 역시 종교 국가 그 자체다. 민주주의 성취도의 차이를 넘어 우리는 다양한 종교 권력에 직면해있고, 그 차이를 동등한 선상에 놓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개전 며칠 만에 막대한 전비를 쏟아부었다. 한국의 핵심 방어 자산인 사드 미사일까지 반출됐다.
“현재 전쟁은 미국의 패권, 미국의 이익에 모두 반한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승리를 거두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미국이 조기 해제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이 국가들은 말로는 이란을 지지한다며 미국을 견제하면서 이득을 취했지만 이번 전쟁을 관망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러시아, 중국, 이란 같은 ‘글로벌 사우스’ 세력이 미국과 실제 대항하는 실체라는 주장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유가가 치솟아 한국의 농어민까지 고통받고 있다. 트럼프가 현 상황을 예측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미 언론 보도가 잇따른다.
“‘미국 우선주의’ 구호로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서방 세계 전체가 이 전쟁의 경제적 결과를 미국과 함께 뚜렷하게 느끼고 있다. 트럼프 이후의 미국 정치 역시 크게 바뀌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앞으로 몇 년 간 우리 앞에 놓인 세계는 그리 유망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누시 간지푸르
프랑스·이란 이중 국적 철학자로, 이슬람 정치사상과 서양 비교철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이슬람 혁명이 한창이던 1978년 테헤란에서 태어났다. 2006년 프랑스로 망명, 2012년 파리 제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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