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흥하게 만든 암탉의 울음이 바다까지 이르러
넷플릭스 방영 〈폭싹 속았수다〉는 지난 세월 동안 제주도 마을 안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재현했다면, 올해 1월에 방영된 제주MBC 다큐멘터리 2부작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는 현재 제주도 172개 마을 중 단 3명뿐인 여성 이장들을 통해 지금 제주도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번 호에서는 현재 제주도 마을에서 부는 바람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고자 2명의 인터뷰를 싣는다. 처음은 다큐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를 만든 김지은 PD이고, 다음은 ‘모태 해녀’로 알려져있는 고명효 씨로 이호마을 성평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해녀이다. -편집자 주-
-〈암탉이 울면...〉 김지은 PD, “전국의 애순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올해 1월 19일, 26일에 2부작으로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가 방영되었다. 제주 성평등 마을만들기 사업과 현재 제주에 3명뿐인 여성 이장들의 활약상을 다룬 작품으로, 제주MBC에서 제작되어 지난해 11월에 제주에서 전파를 탔다. 반향이 커 올해 전국 방송으로 방영되었고, 이후에도 서울MBC ‘탐나는 TV’ 등 각종 미디어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지은 PD는 〈해녀밥상〉, 〈제주여성선각인물 민족여성의 혼불 김시숙〉, 16개사 공동 제작 〈농업이 미래다〉 16부작, 〈그리운 이름 고향, 살암시난〉 등 제주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이 인터뷰는 지난해 11월, 올해 2월에 걸쳐 전화로 진행되었다.
|
▲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를 제작한 김지은 PD가 MBC 옴부즈맨 토크쇼 ‘리얼 비평! 탐나는 TV’에 출연해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년 2월 7일 방송 캡쳐) |
호미: 다큐 잘 봤습니다. “암탉이 울면”을 검색하니 자동완성기능으로 “마을이 흥한다”가 뜨더라고요. 조용한 혁명을 느낍니다. 다큐가 방영되고 반응은 어떤가요?
김지은 PD: 제일 많은 들은 이야기가, “진짜 여자 이장이 3명밖에 안 된다고요?”예요. 우리 도민들도요. 정말 몰랐던 거죠. 그나마 두 분 이장님은 2025년에 이장이 된 거예요. 이장은 으레 “누가 하나 보다”하고, 성별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지방선거가 있으니까 타이밍이 괜찮았다는 얘기들도 좀 들었어요. 제주도에 여성 선출직들이 너무 없어요. 저희 프로그램에서 보여드렸듯이 2023년 기준, 여성 도의원은 20%, 공공기관 여성 관리자는 18.9%, 여성 공무원은 27.2%, 5급 이상은 33.8%예요. 제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65.3%(2024년 기준)을 볼 때 너무 차이가 나죠. 여자들이 정치한다는 거에 대한 편견이 있고, 제주도 특유의 ‘형님 문화’가 있어요. 이게 남성들이 가지는 고등학교 선후배 간에 끈끈함 같은 게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죠. 이 문화가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여성 선출직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인 것 같아요. 여성 정치인하고 여성 공무원들이 나오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질 수가 있는 거거든요.
호미: 모두가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문제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 다큐를 만들게 된 동기가 있다면요?
김지은: 2025년 1월, “제주도에 여성 이장 달랑 한 명, 이게 말이 되나요?”라는 기사를 보고서예요. 저도 놀랐죠.
호미: 그 기사는 제주여민회 김연순 고문이 성평등 마을사업에 대해 쓴 글이죠?
김지은: 맞아요. 이후에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를 보면서, 마음을 먹었죠. 애순이가 국민학교에서 반장을 억울하게 못하고, 어촌계장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들잖아요. 어촌계원 대부분이 해녀들인데, 어촌계장은 다 남자들이죠. 제가 해녀 다큐멘터리를 좀 오래 작업해오면서 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이었어요.
호미: 애순이가 어촌계장으로서 활약하는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 같은’ 이야기죠. 2024년 기준 전국 어촌계장 2,079명 중 여성은 단 67명으로 전체의 3.2%에 불과하더라고요. 성평등 마을사업을 알리는 기사와 ‘애순이’가 이 다큐의 시작이로군요.
김지은: 예, 이런 다큐멘터리 하나 만들려면 펀딩을 받아야 가능하거든요. 지역 방송이 되게 열악하거든요. 그래서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지역 방송을 지원하는 콘텐츠 제작 지원 공모에 응모해서 선정이 됐죠.
|
▲ 제주MBC에서 제작한 2부작 다큐멘터리 〈암탉이 울면 마을이 흥한다〉 중에서, 김인영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상을 만든 김지은 PD는 성평등이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 캡쳐) |
촬영 중 마을의 저항 받아…“그런 식 인터뷰면 안하겠다”
‘이장 선거에 또 출마하겠냐?’ 세 여성 이장의 답변은
호미: 성평등의 시대정신이 이 다큐를 가능하게 했네요. 다큐를 찍는 과정에서 저항도 있었을 것 같아요.
김지은: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지만, 취재하면서 느끼는 것들은 있었죠.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가, “여자 이장이 적고 많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였어요.
2부에서 우리 (여성)이장님이 어떠냐? 라고 마을 분들한테 물어봤을 때 대부분 다 고령자 분들만 인터뷰를 해주셨잖아요. 이걸 보고 주변에서 “젊은 남성들로부터는 왜 ‘우리 이장님 최고다’라는 하는 얘기가 없냐”고 하시는데, (인터뷰를) 안 해주셨어요. 한 마을의 청년회장은 여성 이장에 대한 소감을 묻는데, “그런 식의 인터뷰면 난 하지 않겠다” 거부하셨죠. 좀 안타깝더라고요.
호미: 제작 과정이 성차별을 목격하는 현장이기도 했네요. 그럼에도 마을을 누비며 촬영을 하셨는데요. 촬영하시면서 애초 기획과는 다른 점들이 있었을까요?
김지은: 저조차도 이장님들의 역할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제주MBC 입사 23년 차인데, 그동안 제주도 마을을 취재하러 다니면서 본 이장님들과는 많이 달랐어요. 이 여성 이장님들을 밀착 촬영하면서 보니까,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세요. 정말 일이 많아요. 어디서 민원 들어오면 연장 하나씩 들고 가서 다 고쳐주시고, 특히 독거노인 분들 잘 계신가, 일부러 돌아보시고, 정말 열심히 일하셨어요. 세 분 모두 진심으로요.
호미: 저도 이장이 행정과 마을을 잇는 가교 역할 정도로 생각했고, 주민들 도장 가지고 서류 작업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가 좀 놀랐어요. 그래서 “이장은 아무나 하나” 소제목이 울림이 있더라고요.
김지은: 그게 2025년에 이장이 되신 두 분이 이장으로 선출된 초기에 하신 말씀이예요. 주변에서 해봐라 해서 하긴 했는데 이것저것 다 챙기시려 하니까 일도 많고 너무 버거우니까, 괜히 한다고 했다고 한숨 쉬시면서 “이장 아무나 하나” 하셨거든요.
촬영 시작하고 한 6개월 정도 지나서 이 세 분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한 번도 서로 만나본 적이 없는 분들이고, 이제 좀 안면도 트면서 서로 힘든 것들 얘기하고 그야말로 연대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요. 그때 제가 “이장 선거에 다시 또 출마하겠냐?” 물어봤을 때, 세 분이 모두 “출마하겠다” 그러시는 거에요. 그 대답이 되게 놀라웠어요. 그 몇 개월 주민들 속에서 일하시면서, ‘내가 마을에서 이런 일을 좀 더 해보고 싶다’로 바뀌신 거죠. 그러면서 또 “이장은 아무나 하나” 하시는 거죠. 그래서 그걸 제목으로 뽑았죠.
6,7개월 사이에 이분들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다잡으시고 마을에서 내가 해야될 일들을 보기 시작하신 거잖아요. 다시 출마할 결심도 하시고. 이분들이 몇 개월 사이에 강해졌구나, 지치지 않고 뚜벅뚜벅 잘 걸어가시겠구나, 라는 생각에서 개인적으로 좀 기뻤어요. 주변에서 강연 요청도 와서 강연도 하시고요. 촬영 종료 시기에 한 마을 총회에 성평등 마을규약이 안건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호미: 성평등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받은 씨앗을 정말 크게 키우셨고, 그게 이렇게 널리 퍼지고 있네요. 더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김지은: 저는 이 프로그램이 그냥 제주도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전체, 구석구석의 이야기라고 봐요. 저희 이 방송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으면 합니다. 전국의 모든 애순이들의 이야기지 않습니까? 전국 곳곳, 다양한 채널에서 방송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녀 고명효, “해녀야말로 태초의 에코페미니스트”
제주도에서 새롭게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작한 곳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제주여민회를 통해 추천받았는데, 그렇게 만나게 된 이가 이호어촌계 ‘모태 해녀’ 고명효(이하 명효) 씨다.
|
▲ 이호일동 고명효 해녀가 마을 해녀 탈의실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명효 씨는 제주 바다를 기록하기 위해 태왁에 카메라를 꼭 넣고 다니는 ‘모태 해녀’다. (사진: 호미) |
명효 씨를 만나러 간 날이 마침 ‘검은덕’ 마을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명효 씨는 마음이 바쁠 텐데도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검은덕’은 현무암 해변의 바위로, 물이 빠지면 바위가 드러나 분지가 생겨 바깥에서는 알아챌 수 없어 제주 4.3사건 때 마을 여성들과 아기들이 숨었던 곳이다. 마을 해변이 매립될 때, 주민들이 반대하여 지켜내어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돌보고 있다.
호미: 이호마을 공동체가 활발한가 보네요?
명효: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25년 동안 마을회관에 불이 꺼져있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이 아예 모이지 않았어요. 모일 공간도 별로 없고, 해안을 매립하면서 해녀 창고도 뺏기고, 재산도 없는 마을이에요.
제가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자고 해서 마을회관을 해녀 삼촌(제주에서 성별, 촌수와 관계없이 나이가 많은 이웃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들, 마을 분들이랑 5, 6시간 청소해서 겨우 시작했죠. “호이 호이 해녀가 숨비는 말등대 백개 마을”이 우리 마을 테마예요. 제가 낸 아이디어가 당첨됐죠.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회관에 환하게 불이 켜졌죠.
호미: 어머님이 해녀로 활동하고 하시니까 어촌계나 마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겠어요?
명효: 전혀 아니에요. 원래는 어촌계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려고 했어요. 엄마는 자기 딸 때문에 어촌계나 마을에 뭔가 분란이 일어나는 건 싫다고, 안 된다고만 하세요. 해녀 삼촌들도 육지 사람들 데려오고 어지럽게 하지 말라고 하셔요. 어리다고, 출가외인이라고 하고.
해녀회도, 어촌계도 반대를 하니까, 마을회의로 가져가야겠다 해서 마을회장이 누군가 봤더니, 제가 가까이서 보면서 살았던 삼촌, 20살 위에 삼촌인 거예요. 그래서 찾아갔죠.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고 싶은데 어떠냐 했더니 그 삼촌은 되게 기특해 하셨어요.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었는데 몰라서 못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2023년, 우리 마을 보물 찾기 사업(제주시에서 진행하는 마을에서 가꿔 나가야 할 유·무형의 지역 자원을 주민 스스로 발굴하고 보존하는 사업)이에요.
마을 분들하고 진행하면서 마을에 활력이 돌고 하니까 신임을 얻었죠. 성평등 마을 만들기 사업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저는 직접 말 안 해요. 마을회장님이 얘기하시도록 하죠. 그러니까 엄마나 해녀분들도 싫어도 해야 해요. 마을회 안에 어촌계 안에 해녀회가 있거든요. 나름 마을의 불평등적인 구조를 역이용해서 다시 돌려놓는 작전이에요.(웃음)
호미: 성평등 마을 사업은 어떻게 아셨어요?
명효: 제가 활동하는 곳이 ‘파란’이라고 해양시민과학센터인데, 여기 김연순 대표님이 성평등 마을 사업단에 계셔서 알게 되었어요. 해녀가 돼서 물질하면서 전복하고 소라가 갈수록 없어지는 걸 봐요. 진짜 황량해요. 제주 바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파란에서 해양시민과학센터 산호탐사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호미: 그렇게 연결되는군요! 명효 씨는 물질하는 일이 바다를 지키는 일이네요.
명효: 저뿐 아니에요. 해녀 삼촌들은 바다 속에서 생계를 꾸리면서도 바다를 지켜오셨어요. 바다와 공존했기 때문에 해녀가 지속 가능하다고 하거든요. 해녀야말로 진짜 태초의 에코 페미니스트예요. 그래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게 ‘제주 해녀문화’거든요.
해녀공동체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어요. 우리는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해요. 그냥 다 잡지 않아요. 어린 건 잡지 않죠. 해녀공동체는 약자,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도 발달해있어요. ‘할망바당’이라고, 나이드신 해녀분들을 위해서 ‘먼바다’ 소라 작은 걸 뿌려놔요. 연세 있으신 분들은 멀리 못 나가시니까요.
저는 바다에 들어갈 때 꼭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요. 바닷속 해양 생태계 모니터링을 해야 하잖아요. 이게 바다의 몇 프로라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고 하는 거예요. 한 군데라도 어촌계에서 이걸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103개 어촌계에서 다 하면 해양보호구역이 얼마나 늘어나겠어요? 그 시작을 우리 마을부터 할 거예요. 우리 마을이 해안보호구역 안에 있어요.
또, 우리 마을에서 ‘해녀가 되지 않는 해녀학교’를 하고 있거든요. 제주해녀문화연구원이랑 같이요. 제가 해녀학교 다니면서 보니까, 막연한 호기심이나 해녀자격증 땄다는 거 SNS에 자랑하고 싶어서 하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해녀가 그냥 해녀가 되는 게 아니라, 해녀공동체 속의 해녀거든요.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나 인권감수성, 공동체성도 많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우리는 ‘해녀가 되지 않는 해녀학교’를 2025년부터 하고 있는데 지역사학자, 해녀연구자 분들 다 모셨죠. 강사도 교육생도 너무 좋아하세요.
|
▲ 해녀 탈의실 마당에는 해녀 삼촌들의 잠수복이 마르고 있다. 명효 씨는 제주 바다와 공존해온 해녀를 ‘태초의 에코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사진 제공-호미) |
92년 역사 마을제에 남자만 입장…3년만에 촬영 허락 받아
성평등 마을 사업이 바다까지 이르러, 어촌계도 성평등하게 바뀔 것
호미: 하시는 일이 정말 많네요. 마을활동까지 하시고요.
명효: 우리 마을이 92년 동안 마을제를 해오고 있는데, 제가 촬영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 안된다고 하는 거예요. 마을제에 남자들만 들어가야 하고, 일하는 여자들도 생리도 끝난 사람, 과부 이런 사람들만 마을제에 참석할 수 있거든요.
촬영 허락이 3년만에 받아들여졌어요. 마을 회장님이 봉행 위원장님 허락받아서요. 92년 금기를 깬 거죠. 재단에 카메라 설치하고 제사 지내는 거 다 촬영했죠. 그러면서 봉행 위원장님이 1933년도 마을제 기록이 담긴 동지 모아놓은 거를 꺼내서 보여주셨어요. 지역사회학 연구하시는 분들께 보여드렸더니 엄청 희귀한 기록이라고, 이렇게 모아두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삼촌들이 고령이시니 살아계실 때 이걸 정리해서 우리 마을 역사를 기록하자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어요.
마을 건강교실도 열고 하면서 마을 분들이 마음을 많이 여셨어요. 자주 모이게 되고, 오기는 힘들어도 오면 좋다 하시고. 일단 모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성평등 마을 사업도 제안 드렸더니 그냥 오케이 해서 하고 있어요. 성평등 연극도 하고, 강의도 하고, 프로그램들도 되게 좋아하세요. 삼촌들은 우리가 평등하지 못했다는 것도 모르셨다고 하세요. 처음에 제게 했던 말들, ‘출가외인이다’, ‘여자는 마을제 못간다’ 이런 거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우리 부녀회장님도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10년만에 회장이 되신 거거든요. 정말 마을을 사랑하시는 분이고 열심히 하시는 분이고 인정받고 계시는데도요. 성평등 워크숍 하면서 누가, “여자도 이장 해야지.” 했더니, 다른 분이 “에이, 그건 아니지” 하시더라고요. 남자든 여자든, 이주민이든 선주민이든, 열심히 할 사람이 이장을 해야할 텐데, 아직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 차별 때문에 일할 사람을 못하게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되겠어요? 나 같으면 떠날 것 같아요. 우리 마을에 정말 필요한 시기에 성평등 사업 제안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마을이 많이 도움을 받을 것 같아요. 조금씩 마을이 변화할 거라고 기대해요. 어촌계도 성평등하게 바뀌겠죠.
호미: 성평등 마을 사업이 바다까지 이르겠네요. 또, 육지와 바다, 인류와 비인류를 넘어 바다 속 물살이에게까지 잇는 활동 의미 있게 잘 들었습니다. [끝]
[필자 소개] 호미.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지만 다시 귀농 준비를 하고 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지민주 노래 ⌜세상에 지지 말아요」를 따라썼다) 드러내려고 쓴다.
Copyright © ildar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