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주민 87% ‘PTSD 위험군’
행정 불신 탓 불안 악화

지난해 발생한 영남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여성·장기 거주자일수록 PTSD 위험이 높았고, 행정에 대한 불신이 심리적 불안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확인됐다.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는 경북 안동·의성·영덕의 산불 피해 주민 각 100명씩, 총 3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해 17일 공개한 ‘2025 초대형 영남 산불 피해 실태조사 최종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PTSD 위험군에 속한 사람 중 67%는 ‘심각한 PTSD 위험’ 이상의 고위험군이었다. ‘정상’ 범위는 8%에 그쳤다.
응답자 296명 중 82%가 60세 이상 고령층이었고, 40년 이상 장기 거주자가 절반에 달하며, 1인 가구는 21%였다. 주택 등 물적 피해가 클수록 PTSD 위험이 뚜렷하게 상승했다.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경험한 사람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임시 대피소를 경험한 집단은 PTSD 고위험군에 속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3배 높았다. 대피소 생활 만족도가 낮을수록 PTSD 위험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산불 피해 이후 소득 회복 수준이 낮거나, 피해 복구 과정에서 공동체와 갈등을 겪은 경우에도 심리적 불안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 복구 과정에서 행정의 대응이 심리적 불안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피해 평가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낄수록, 복구 지원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인식할수록 PTSD 수준은 더 높았다. 복구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집단에서도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았다. 복구 과정에서의 ‘2차 피해’ 경험이 트라우마를 장기화시키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정부·지자체에 대한 불신도 심리 불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정보와 물품에 대한 적절한 지원이 이뤄졌다고 인식할수록 PTSD 위험도는 낮아졌다. 물품 배분 등 공정한 지원이 이뤄졌다는 인식이 큰 집단에서는 PTSD 고위험 가능성이 32% 낮게 나타났다. 정부·지자체가 진행한 피해 평가 등 행정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PTSD 위험 수준이 낮았다.
대다수 주민들은 산불 피해·복구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응답자 273명 중 75%는 복구 지원비 내역과 산정 근거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270명 중 48%는 확인 방법을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주택·영업장·가재도구 피해 평가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행정기관에서 실제 입은 피해보다 낮게 평가했다고 답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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