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지탱하는 건 男만이 아냐… 저항하는 女 그렸죠”
전통적 역할 강요받는 인도 여성들
피해자 아닌 억압 맞선 인물로 묘사
가족 체면 중시 탓에 개인 고통 뒷전
사랑·재산권 등 다룬 단편 12편 엮어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영예
“진보한 여성 삶, 통제 방식은 더 미묘”
많은 여성이 안전과 위로를 찾아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다시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설득되거나 압박받았다. 그녀들의 처지와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오래되고 거대한 사회 시스템과 문화가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낙인과, 소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경제적 부담….


“이 이야기는 어떤 한 사건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제가 마주해 온 수많은 경험이 쌓여 만들어졌지요. 가부장제는 남성들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가족들 역시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요. 제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조차도 사회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는지 말입니다.”
‘하트 램프’를 비롯해 인도 작가 바누 무슈타크의 단편 12편을 골라 엮은 소설집 ‘하트 램프(Heart Ramp)’(김석희 옮김, 열림원·사진)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무슈타크가 1990년부터 2023년까지 30여년 동안 인도 공용어 칸나다어로 발표한 여섯 권의 단편집에 실린 단편 50편 가운데 추려 엮은 소설집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에는 남인도 이슬람 문화권을 배경으로 가부장 체제의 모순과 이에 저항하는 인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온전한 개인이 아닌 딸이나 아내, 며느리, 어머니 등 전통적 역할을 강요받는다. 작가는 사랑과 빈곤, 재산권, 조혼, 교육 문제 등을 다루면서 여성들을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불평등과 소외에 맞선 인물로 그려낸다.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들의 억압과 소외의 일상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문장으로 그려진다.
문제적 작가 바누 무슈타크는 왜 남인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고통받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여성들을 그려야 했을까. 그가 묘파한 남인도 가부장제 사회와 저항하는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 무슈타크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표제작 ‘하트 램프’에서 친정으로 돌아온 메룬을 가족들은 왜 이같이 냉대한 것일까. 그들에겐 어떤 생각과 가치관, 사회적 기대나 압박이 자리하고 있는지.
“메룬 가족들의 반응은 단지 잔인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다. 가족들의 반응 뒤에는 명예, 사회적 체면, 경제적 불안에 대한 깊은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 남부를 비롯해 많은 인도 가정에서 딸의 결혼은 일종의 ‘최종적인 자리 잡기’로 여겨진다. 일단 결혼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적응하며 결혼 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기대가 따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종종 가족의 체면보다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소설집을 여는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은 모든 것을 다해줄 것처럼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사랑의 위선을 폭로한다. ‘나’는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초대를 받아 이프티카르·샤이스타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이프티카르는 아내 샤이스타를 위한 타지마할을 짓겠다고 허풍을 떨지만, 아내가 죽자 40일 만에 재혼한다.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의 인물과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는지.
“저는 종종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변치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회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하기에 비교적 빠르게 재혼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여성에게 과부로서의 삶은 도덕적 기대와 다양한 의례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남성에겐 그저 일시적이고 곧 다시 결혼해 정리해야 할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조용한 불균형을 탐색하고, 한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헌신은 곧 평등을 의미하는가? 죽은 여성에 대한 기억보다, 남성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가?”
―작품 발표 이후 의미 있는 현실 변화가 있었는지.
“현재를 돌아보면, 분명하고도 측정 가능한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많은 소녀가 교육을 받고 있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금메달을 받으며, 과거에는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 직업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여성들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많은 공동체의 문화적 관습은 그만큼 달라지지 않았다. 통제 방식은 더 미묘하면서도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감시는 더욱 촘촘해지고, ‘명예’에 대한 기대 또한 더 날카로워졌다.”
1948년 인도 서남부 카르나타카주에서 비교적 부유하고 지적으로 열린 무슬림 가정에서 나고 자란 바누 무슈타크는 1970∼1980년대 남인도 진보적 저항문학 진영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6권의 단편소설집과, 소설과 시집 각 1권씩을 칸나다어로 발표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비롯해 카르나타카문학 아카데미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절제와 규율에 의해 움직여 왔던 그의 일상은 지난해 부커상 수상 이후 크게 달라졌다. 집에서 공항까지 네 시간을 이동하고, 공항 라운지에 머물며,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인터뷰와 행사 일정을 소화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이동 자체가 일상이 돼 버렸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긴 호흡의 소설을 쓰지 못했다. 대신 몇 편의 시만이 불현듯, 거의 무의식적으로 찾아왔을 뿐.
작가이자 변호사인 바누 무슈타크는 다시 집중해 글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활을 정돈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침묵이나 특별히 꾸며진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그의 삶은 여전히 법정과 공항, 공적인 무대와 고독한 사유의 시간 사이를 오가며 흐르고 있고, 이 움직임 한가운데서 문학은 숨 쉬고 있다. 꿈이라거나 희망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꺾인 우리 시대의 수많은 메룬과 함께….
“밤이 깊어질수록 메룬의 가슴을 휘젓는 흥분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그녀는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안부를 물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놀리고, 껴안고, 키스해 줄 사람도 없었다. 전에 그런 일을 해 주었던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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