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2026. 3. 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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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퍼거슨은 과거에 혁명가였다. 무력 투쟁을 도모하는 반정부 조직 ‘프랜치 75’에서 폭탄 전문가로서 활약했다. 폭발물을 제조하고 설치해 차별과 배제의 울타리를 부수려 했으며, 가진 자들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곳간을 열어젖히고자 했다. 비유로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국경지대 군 기지를 습격해 구금소에 갇힌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은신한 지 16년이 넘은 현시점엔 약과 술에 찌든 일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의지조차 품지 못한다. 체제 변혁을 위해 학습했던 급진적 이론들도 거의 다 잊었다. 좌파 역사관은 학부모 상담 도중 딸의 역사 교사 앞에서 ‘맨스플레인’ 할 때나 쓰일 따름이다.

딸 윌라가 납치당하자 밥은 한물간 할리우드 액션물에서 하듯 손수 구출하려고 총을 들고 나선다. 그리하여 그간 감추어온 비장의 액션을 선보이는가. 아니다. 시종일관 허둥거리고, 난간 넘다 굴러떨어지고, 자동차가 급커브 돌 때 톰 크루즈처럼 휙 뛰어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한때 몸담았던 혁명 조직은 절박한 순간 전화선 너머로 관료제적 고지식함을 시전하고, 한때의 혁명가는 ‘네 윗선 나오라 해!’ 식의 관료제적 폐습을 빌려서야 난관을 돌파한다. 딸의 목숨을 구한 결정적 계기들은 밥이 현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그와 무관하게 이미 만들어졌다.

그러니 밥이 지향하여 가담했던 혁명은 실패했다고 봄 직하다. 그는 세상도 자신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라는 제목 그대로 영화는 한 세대의 싸움이 끝난 후 다음 세대가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혈연마저 제거하려는 극우 인종주의자. 그리고 홀로 딸을 양육하며 범박한 일상인이 된, 무모하고 어설프며 가끔 비겁했고 모순적이었던 한때의 혁명가. 둘 중 윌라는 후자가 걷던 길로 나선다. ‘논바이너리’의 뜻을 몰라 “그래서 쟨 남자야 여자야”라 딸에게 묻는 구세대 좌파와는 분명 노선을 달리하겠지만 그들이 가려던 방향으로 한 발 떼어놓기를 택한 거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소식에 지난 추석 즈음 관람했던 이 영화를 떠올렸다. 보는 내내 여러 차례 웃음을 터뜨렸고 그보다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밥의 얼굴 위로 내가 알아온 몇몇 얼굴이 겹쳐 보여서였다. 우울감으로 인해 수면제 없이 잠들지 못하고 술 마시면 같은 말 되풀이하면서도 여전히 ‘투쟁’의 현장에 합류하는 중년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칭하는 아재들과 아지매들. 어느 선생님이 세상을 뜬 선배를 추모하며 남기셨던 문장대로 ‘낡디낡은 꿈을 아직 품고 살며, 지나간 이십대에 대해 수치심과 자존심이 뒤섞여 제대로 된 표현조차 하기 힘들지만, 곤조는 남아 남 등쳐먹고 살진 않고 술 마시면 꼰대 소리를 들으며 입바른 소리를 하는’ 한때의 혁명가들. 당대 최고로 솜씨 있는 감독이 끝내주는 작품을 통해 그이들의 어깨를 토닥토닥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뭐라고, 대신 고마웠다.

극중 밥의 아내를 포함한 조직원은 당국에 붙잡히기 무섭게 조직의 기밀을 술술 부는 겁 많고 연약한 존재였다. 밥을 실질적으로 조력한 것은 과거 동지가 아닌 현재의 이웃이었다. 가라테 도장 사범으로, 동네 잡화점 주인으로, 병원 간호조무사로, 산속 수도원 수녀로 생을 꾸려가며 쫓기는 이들과 내몰린 이들에게 피난처와 피신로를 제공하는, 삶의 자리에서 타인에게 조그맣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

한 번도 혁명가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리되지 못할 사람 또한 누군가에게 현재의 이웃은 되어줄 순 있을 테다. 하나의 싸움 후 다음 싸움이 이어지고 그 싸움이 끝나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질 동안, 공부하고 가르치며 생을 꾸려가는 내가 이웃이 되어서 손 보탤 쪽이 여일했으면 한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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