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 공방 엿보는 강화전쟁박물관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32)]
난공불락의 요새… 내부의 적은 ‘수뇌부’
몽골의 공성전 무기·전술 ‘생생’
단검 들고 야간 적진 침투작전도
들쭉날쭉한 갯벌지형 ‘전시 수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은 첨단 무기의 경연장이다. 전술 대결 또한 치열하다. 그렇다면, 800년 전 우리 고려의 군인들은 세계 각지를 휘젓고 다니던 몽골군에 맞서 어떤 무기와 전술로 싸웠을까. 그때 역시 고려의 첨단과 몽골의 첨단이 서로 맞부딪쳤다.
고려군의 무기 체계는 몽골군과 대적하기에 충분할 만큼 첨단이었다. 문제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전투 지휘관들이었다. 갖추고 있는 무기를 잘 활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전적으로 지휘관의 역량에 달렸다. 고려의 선박 운용과 해상 전투력 역시 무척 뛰어났는데, 몽골이 감히 덤빌 수 없을 정도였다. 고려군은 또한 현대전에서나 있을 법한 특수부대 야간 침투 작전도 자주 감행해 큰 성과를 거두고는 했다.
강화도 방어 태세와 관련해서는 고려가 강화로 도읍을 옮긴 지 3년이 된 1235년 윤7월 기록에 나타난다. 전·후·좌·우군에 명하여 연강(沿江)을 방수(防戍)하게 했다는 내용이 ‘고려사절요’에 실렸다. 여기서 말하는 연강의 위치가 어디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빠지는 조강의 강화도 연안을 일컫는 게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의 강화대교 이북은 당시 갑곶강으로 불렸다.
그해 12월에는 ‘주(州)·현(縣)의 일품군(一品軍)을 징발하여 강화의 연강 제안(堤岸)을 가축(加築)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때 강가에 쌓았던 언덕을 보강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제방이 조선시대의 돈대 같은 역할을 수행했을 수도 있다.
1236년 9월에는 경기도 안성 죽주성에서 몽골군과 고려군이 공방을 벌였다. 몽골군은 포(砲)를 이용해 죽주성을 빙 둘러 공격했고, 성문(城門)이 포에 맞아 무너질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고려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안에서 역시 포로 역공을 가했고, 몽골 군사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몽골군은 또 인유(人油), 소나무 홰, 쑥, 풀 들을 갖추어 화공을 가했다. 여기 기록된 ‘인유’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몽골군이 이렇게 15일 동안이나 공격했지만 죽주성은 버텨냈다. 몽골군은 끝내 자신들의 공성(攻城) 장비를 우리 측에 넘겨주지 않기 위해 불사른 뒤 철군했다.
고려군은 이미 몽골군의 성곽 공격 방식에 대해 꿰고 있었다. 몽골군이 운제(雲梯)라는 성벽을 올라타는 사다리로 공격하면 고려군은 대우포(大于浦)라고 하는 큰 칼날이 달린 무기로 운제를 부수며 맞대응했다.

몽골군의 성곽 공격 전술은 ‘고려사절요’의 1253년 8월 서해도 양산성 함락 기록에 잘 드러나 있다. 양산성은 사면이 절벽인데다, 사람과 말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만 나 있어 천혜의 요새였는데 이곳의 방어 책임자 권세후라는 자가 그 험준함만 믿고 술만 마시고 방비를 허술히 하는 바람에 함락되고 말았다. 그때 몽골군은 성 앞에 대포를 설치해 문을 쳐부수고 화살을 비처럼 쏘았다. 또 성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불화살로 초막(草幕)을 쏘아 불태운 뒤 병졸이 성안으로 들이닥쳤다. 이렇게 해서 이곳에서만 우리 백성과 장졸 4천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시기 고려의 백성들은 몽골군을 피해 성이나 섬으로 들어갔다. 몽골군은 끊임없이 섬 공략에 나섰다. 몇몇 섬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고려군의 해상전력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고려의 배에는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다. 1256년 6월 몽골군이 수군 70척으로 전라도 압해(押海)를 치려고 했는데, 고려는 큰 배에 대포 2개를 장치했다. 이를 본 몽골군은 “대포에 맞으면 배가 가루가 될 것”이라면서 철군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있다.
야간 적진 침투 작전도 있었다. 1253년 11월, 교동 별초가 밤중에 몽골군 진영에 몰래 들어가 많이 죽였는데, 이때는 짧은 칼과 맨손을 썼다. 야간 투시경도 없이 오로지 단검과 맨주먹으로 상대했다는 얘기다.
전시 수도인 강화도는 고려군의 HQ(headquarters)였다. 강화도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이유는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갯벌 지형이 적군의 상륙을 어렵게 했고, 겨울에는 조강과 염하의 유빙이 막아주었다. 여기에 고려 수군의 뛰어난 장비와 전술도 큰 몫을 했다.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프랑스(병인양요), 미국(신미양요)과의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 장소, 강화군은 기초자치단체로서는 드물게 전쟁박물관을 자체 운영하고 있다. 전쟁박물관은 지나간 전쟁을 잊지 않도록 함으로써 평화의 소중함을 담아가도록 하는 장소다. 강화에 국립세계전쟁박물관을 세워 전 세계를 향한 평화 메시지를 발신하는 ‘평화 보장처’로 삼으면 어떨까.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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