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다음엔 페트병 뚜껑 닫아 와요” “아이고, 몰랐어”…우리 동네 재활용 지킴이

“어머니, 다음에는 페트병 뚜껑 닫아서 가져오세요. 그래야 병 안에 이물질이 안 들어가서 재활용이 잘돼요.”
“아이고, 몰랐어. 근데 그동안 왜 안 왔어?”
“너무 추웠잖아요. 한겨울엔 못 해요.”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신흥어린이공원. 오후 5시가 되자 종이가방(쇼핑백)과 큰 비닐봉지를 든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투명 페트병, 우유갑, 플라스틱 용기, 비닐, 종이 등이 가득 담겨 있는 봉투들이었다.
주민들은 가져온 재활용품을 스티로폼·종이·캔·비닐·플라스틱이라고 적힌 대형 수거함에 하나씩 넣었다. 한 주민이 코팅된 종이가방을 종이함에 넣자, 파란색 조끼를 입은 자원관리사 정명자(76)씨가 “이건 코팅이 돼서 재활용이 안 돼요.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돼요”라고 안내했다. 옆에 있던 코디네이터 홍영희(68)씨는 “아버님, 비닐봉지 깨끗하게 잘 씻어 오셨네. 근데 샴푸통 뚜껑은 용수철 때문에 재활용이 안 돼요. 다음엔 샴푸통도 씻어 오세요”라고 거들었다. 수거를 시작한 지 18분 만에 120ℓ짜리 봉투 5개가 채워졌다.
올해 1월부터 수도권의 생활폐기물(종량제 봉투)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소각·매립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더 시급해졌다.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태우거나 재활용 과정을 거치지 않고 땅에 묻는 행위를 금지하는 정책이다. 비수도권 직매립은 2030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수도권 쓰레기가 충청권으로 향하면서 지역 갈등까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아닌 저층 주거지 비율이 절반가량 되는 은평구는 이 문제에 비교적 일찍부터 대응해왔다. 은평구는 2019년부터 ‘은평그린모아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재활용 수거율을 높이기 위해 각 동에 재활용 분리배출을 돕는 자원관리사, 동마다 5개 안팎 거점의 장소·인력을 관리하는 코디네이터를 둔 것이다. 은평구는 현재 16개동 168개소에서 이동식 수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일반 거점 139곳은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 오후 5~8시, 상시 거점 15곳은 동 주민센터에서 평일 오후 2~5시에 운영된다. 자원관리사 284명, 코디네이터 30명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는 자원관리사와 코디네이터는 연 2회 이상 자원순환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사업 목적은 단순히 수거를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제대로 버리는 법”을 익히도록 돕는 것이다. 페트병과 일반 플라스틱의 차이, 비닐과 플라스틱의 구분, 여러 재질이 섞인 포장의 분리 방법까지 주민들이 헷갈리는 지점마다 관리사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재활용품을 가져온 주민에게는 10ℓ 종량제 봉투도 나눠준다.

이날 만난 90대 주민은 요구르트 플라스틱 용기가 가득 담긴 쇼핑백을 내보이며 “여기서 받으니까 그냥 버리면 안 될 것 같아 씻은 뒤 말려놨다가 금요일마다 시간 맞춰 나온다”고 말했다. 이날 수거된 재활용품 양은 120ℓ짜리 봉투 20개나 됐다. 홍씨는 “예전엔 거의 쓰레기처럼 지저분한 상태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깨끗이 씻어오신다”며 “보통 수거 봉투로 25~26개, 많을 땐 30개 가까이 나온다”고 말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은평구 종량제 봉투 수거량은 2022년 5만5153t에서 지난해 4만8960t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재활용품 수거량은 1만7988t에서 2만4764t으로 늘었다. 성동구 등에서도 벤치마킹했다.
이 사업은 ‘재활용 거점’을 넘어 동네 사랑방 구실도 하고 있다. 정씨는 “늘 오시던 분이 안 나오면 무슨 일 있나 걱정된다”며 “주민들이 수고한다며 음식이나 음료를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했다.
은평구 관계자는 “주민이 배출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 품목을 분리해 가져오면서 생활폐기물이 줄고, 재활용품 수거는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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