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보 30주년] 보증에서 플랫폼으로… 경기신보의 다음 30년
1990년대 중반 한국 경제는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세계 경제는 급속한 개방과 통합의 길로 나아갔다. 한국 역시 세계화 흐름 속에서 산업구조가 빠르게 재편됐다. 제조업 중심의 성장 구조는 더욱 고도화됐고 정보기술 산업이 새롭게 부상했다.
하지만 변화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금융 접근성이다. 당시 국내 금융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금융 구조가 강하게 자리잡았다. 은행 대출은 담보와 재무 안정성을 기준으로 이뤄졌다. 부동산이나 자산이 부족한 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금융 기관의 문턱은 매우 높았다. 이들은 아이디어와 성장 가능성이 있더라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금융시장의 구조적 한계는 지역경제 성장에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지역신용보증제도다. 지역신용보증제도는 기업이 담보를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공공 보증기관이 신용을 평가해 보증서를 발급하고 금융기관이 이를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도록 하는 금융지원 체계다. 이 제도의 첫 모델이 된 기관이 경기신용보증조합, 즉 오늘날의 경기신용보증재단이다. 지역경제 금융망 안전의 출발점이 된 경기신보의 30년 역사를 톺아 봤다.

1995년 실시된 제 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는 지방자치 시대의 본격적 출발을 알렸다. 지방자치의 확대는 행정 체계뿐 아니라 경제 정책 방향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중앙정부 중심으로 이뤄지던 정책 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각 지역이 스스로 지역경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정책과제 중 하나가 중소기업 금융지원 문제였다. 지역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고용 창출 및 지역 산업 발전의 핵심 주체였지만 금융 접근성이 낮아 안정적 성장 기반 마련이 어려웠다.

제도적 기반의 부재도 걸림돌이 됐다. 지역신용보증기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간 협의가 필수적으로 관련 법률 개정, 정책적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해서다. 이듬해인 1996년 2월에서야 통상산업부 설립 허가가 나왔고, 같은 해 3월 19일 경기신용보증조합이 공식 출범했다.
출범 당시 조합의 초기 재원은 도 출연금 100억 원, 지역 기업 출연금 104억 원, 금융기관 출연금 11억 원, 기타 출연금 14억 원 등 모두 229억 원이었다. 이 같은 재원 구조는 지방정부와 민간 경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한 협력 모델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제도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기업과 금융기관이 재원 조성에 참여, 지역 경제 발전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 첫 보증서 발급...첫해 보증 295억 원 가능성 증명
신용보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중앙 보증기관과의 재보증 계약 체결이 필요하다. 재보증 계약은 지역 보증기관이 발급한 보증서에 대해 중앙 보증 기관이 일정 비율로 위험을 분담하는 제도를 뜻한다. 지역신용보증기관이 처음 설립되는 상황에서 협상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재보증 한도와 보증료율과 관련 수 차례 협의가 이어졌고 조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1996년 5월 신용보증기금과 재보증 계약이 체결됐고, 역사적인 첫 보증서가 발급됐다. 첫 보증의 주인은 부천 삼진전자산업으로 담보가 부족해 금융기관에 문턱을 넘지 못했던 기업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 금융 안전망의 시작을 알렸다. 설립 첫해 경기신용보증조합이 지원한 보증 규모는 295억 원, 보증을 받은 기업 수는 277개 업체다.

도의 실험은 곧 전국적 제도로 확산했다. 경기신용보증조합의 성공적 출범 이후 경남, 광주, 대구 등 다른 시도에서도 신용보증조합이 잇따라 설립됐고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경기신보는 전국 최대 지역신용보증기관으로 발돋움했다. 올해 기준 보증규모는 누적 60조 원을 넘어섰다.
경기신보는 '신뢰를 담보로 기회를 제공하는 금융'이라는 철학 아래 지역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변화하는 경제환경 속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 IMF, 금융위기, 코로나19...지역 경제 위기 속 보증 안전판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여러 차례의 타격을 받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도 이 같은 경제적 충격에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위기 속 지역 기업들의 버팀목이 된 것은 경기신보다. 경기신보는 보증 공급을 확대하고 긴급 금융지원체계를 가동해 지역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경기신보는 중소기업의 사실상 유일한 금융 통로였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 금융기관들은 위험 관리를 위해 대출을 조이기 시작했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의 금융 공급은 크게 위축됐고, 수출 감소와 내수 침체까지 동시에 겹치며 많은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전 경제 위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 조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매출에 직격탄이 됐다. 음식점, 숙박업, 관광업, 소매업 등 대면 서비스 업종은 매출이 급감하며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경기신보는 긴급 금융지원 체계를 가동, 코로나 피해기업 특례보증, 신속 보증지원 체계 구축, 현장 중심 상담 확대 등을 추진했다. 그 결과 전국 보증기관 가운데 가장 많은 코로나19 지원 보증을 공급하며 위기 상황 속 도내 기업들의 버팀목이 됐다.
# 경기신보의 내일...금융을 넘어 성장 파트너로
경기신보는 금융 산업의 디지털 전환에 맞춰 디지털 기반 금융 서비스를 확대한다. 모바일보증플랫폼 'Easy One'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다. 서비스는 기업과 소상공인이 스마트폰으로 보증 신청과 관련 절차를 진행하도록 구축한 디지털 금융서비스 플랫폼이다.
Easy One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지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보증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보증 신청을 위해 재단 지점을 직접 방문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Easy One 플랫폼은 이같은 절차를 모바일 환경에서 간편하게 진행하도록 구현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크게 줄여 금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고 정책금융의 실효성을 강화한 것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금융 서비스 혁신도 추진한다. 서비스 품질 및 업무 효율성 향상을 위한 챗봇 상담 서비스 도입, 업무 자동화 시스템(RPA) 도입, 온라인 금융서비스 확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디지털 기반 정책 금융기관 전환은 도내 기업과 소상공인이 언제 어디서나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다.
교육과 컨설팅 등 기업 성장 전반을 지원하는 정책도 추진한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위한 온라인 교육서비스 'G-캠퍼스'는 창업 전략, 마케팅, 재무 관리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경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금융 지원과 교육·컨설팅을 결합한 통합 기업 지원 체계도 구축한다. 보증 지원으로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는 동시에 교육과 컨설팅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의 경영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 시석중 경기신보 이사장 인터뷰
"보증 공급은 지속하면서 부실 상환으로 보증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체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시석중 이사장이 밝힌 경기신보의 당면사업과 향후 비전이다.

이어 "경기신보의 30년은 곧 대한민국 지역신보의 역사로 우리가 가는 길이 표준이 돼 왔다"며 "앞으로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의 내용과 혁신에서 진정한 최초가 되는 질적 성숙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청사 내 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 현장의 목소리를 즉각적으로 청취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이곳을 금융 지원의 원스톱 허브로 삼아 시군 지자체, 도내 기업들과의 협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구자훈 기자 hoon@kihoilbo.co.kr
사진=<경기신용보증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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