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칼럼] AI, 성배인가 독배인가?

인공지능(AI)이 일상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오늘날, 우리는 이 기술을 인류의 모든 난제를 해결해 줄 현대판 '지니'이자 '성배'로 추앙하곤 한다. 복잡한 수식이나 코딩, 글쓰기부터 발표 자료 제작까지, AI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경이로운 효율성을 증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결과물 이면에는 '맥락의 소멸'과 '의미의 빈곤'이라는 치명적인 독이 스며들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능의 해결사로 맹신하는 순간, 이 성배는 인간성을 부식시키는 독배로 변모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더 뉴요커(The New Yorker)'의 조슈아 로스먼과 재런 레이니어는 AI가 단순히 도구의 영역을 넘어 문화의 본질을 뒤흔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레이니어는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콘텐츠'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수신자의 반응만을 유도하는 '라이브 합성(Live Synthesis)'이 채울 것이라 경고한다. 이는 예술과 지식이 창작자의 고유한 삶의 궤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말초적 취향을 저격하는 맞춤형 자극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는 문화를 개인화된 고립으로 몰아넣는다. 과거의 예술이 공동체의 보편적 경험을 제공했다면, AI 시대의 문화는 타인과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면서도 철저히 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각'을 제공할 뿐이다.
사회학적으로도 AI는 '디지털 파놉티콘(panopticon)'이 되어 개인의 선호를 완벽히 파악하고 통제하는 사회적 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알고리즘이 인간의 판단력을 대신할 때,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의 피드백 루프에 갇힌 객체로 전락한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도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인간의 창조적 행위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숭고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AI의 자동화된 창작은 이를 기계적 프로세스로 격하시키는 알고리즘 우상 숭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돕기 위한 도구에 머물러야 한다. 기술이 연산 능력이나 데이터 처리 속도에서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상회하는 강력한 기제가 될지언정, 특정한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과 다층적인 맥락 분석을 통해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은 결코 기계에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AI가 쏟아내는 '무동기적 예술'과 파편화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창작자의 의도와 삶의 맥락을 복원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차원의 실천적 대응이 요구된다. 첫째는 AI가 제공하는 정보와 환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정교하게 편집되고 조작된 결과물일 수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는 '비판적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가짜 뉴스를 가려내는 수준을 넘어, 기술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어떻게 편향되게 재구성하는지를 감시하는 비판적 지성을 의미한다. 기계의 효율성에 매몰되어 스스로 사고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기술이 파편화시킨 개인들을 잇는 '아날로그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좋아요'와 개인 맞춤형 추천 시스템은 우리를 각자의 취향이라는 감옥에 가둔다. 우리는 기계적 알고리즘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만남, 즉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므로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며 공통의 가치를 논의하는 실제적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연결만이 디지털 기술이 초래한 고립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책이 될 것이다.
결국, 의미는 단순히 발견되거나 수집되는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능동적으로 발명되고 부여되는 것이다. 창조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AI를 효율적인 도구로 영리하게 사용하되, 그 결과물이 도출되기까지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권 및 도덕적 책임이 오직 인간에게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한 기술적 환상 속에 안주하며 인간됨의 근원적 가치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때로는 고통스럽고 비효율적일지라도 진실한 연결과 삶의 맥락을 지켜낼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 서 있다. 문명의 향방은 AI의 연산 성능이나 매끄러운 생성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인간적 오리지널리티'와 그 존엄한 책임감에 달려 있다.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 전 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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