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안전한 일터 어디에’…죽음으로 내몰린 노동
기피 대상 고위험 공정 주로 투입
현장 안전불감증도 사고 위험성↑
사업주 눈치에 산재 신청도 머뭇
"환경·인식·인권 개선 필요"

광주·전남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가 더 이상 개별 현장의 우연한 사고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고위험 공정에 외국인노동자가 집중 투입되는 데다 현장의 안전불감증과 언어 장벽, 부족한 안전교육까지 겹치며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다. 단순한 안전대책을 넘어 노동인권 보장과 사업주 인식 개선, 작업환경 전반을 함께 바꾸는 근본적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아 분석한 '업종별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광주와 전남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사상자는 모두 1천734명으로 집계됐다. 광주 894명, 전남 840명이다. 사망자도 적지 않았다. 같은 기간 광주는 11명, 전남은 목포지청 관할 11명, 여수지청 관할 10명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다친 뒤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숨진 사례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만큼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업재해에 더 쉽게 노출되는 배경으로는 위험한 작업환경이 먼저 꼽힌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위험 공정과 고강도 작업에 주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업 속도와 생산량을 앞세우는 현장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도 위험을 키운다. 보호구 착용과 기본 안전수칙 준수가 뒤로 밀리는 일이 적지 않고, 현장에 퍼진 안전불감증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언어 장벽 역시 큰 문제다. 작업 지시나 위험 신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경고 문구를 읽지 못하거나 위험 상황에서 즉각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도 이를 단순히 개인 실수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게 현장의 시각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는 비전문취업(E-9) 비자 제도도 이런 현실과 맞물려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9 비자는 한국어 능력시험과 간단한 기능 평가를 통과하면 발급 요건을 충족한다. 입국 전 한국어 교육도 약 38시간 수준에 그친다. 해마다 10만명 안팎이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오지만, 현장 안전교육과 사고 예방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재를 당한 뒤에도 문제는 이어진다. 외국인 노동자 역시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현장에선 비자 연장이나 사업장 변경 문제 때문에 신청 자체를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주 눈치를 보느라 열악한 노동환경을 문제 삼지 못하거나, 다쳐도 참고 일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비자 만료가 가까워지거나 일터를 옮겨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 산재 신청은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핵심 안전수칙 자료를 제작해 현장 점검 과정에서 안내·배포하고, 이를 17개국 언어로 번역해 활용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작 이런 자료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자료를 만든 것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이메일 전달 수준에 그치거나 일부 단체에 배포를 요청하는 방식만으로는 확산에 한계가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실제로 접하는 산업안전교육 과정에서 책자 형태로 직접 배포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또 정책의 초점을 '안전'에만 좁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산업재해 예방은 보호구를 지급하고 수칙을 안내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라, 위험한 작업 배치와 현장 관행을 다시 들여다보고 노동자가 적절한 대우 속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작업 배치와 설계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고, 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안전은 노동인권과 사업주 인식, 작업환경을 함께 바꿀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