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펑에 '두뇌' 맡긴 폭스바겐 ID.유닉스 08…"글로벌 EV 中 기술 식민지화 가속"

류종은 기자 2026. 3. 1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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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과 샤오펑이 공동 개발한 준대형 전기 SUV 'ID.유닉스 08'. 사진=폭스바겐

독일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이자 세계 2위 완성차 그룹인 폭스바겐이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실패를 자인하고 중국 스타트업 샤오펑의 '두뇌'를 빌려 첫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선보였다. 지난 수년 동안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고도 SDV 전환에 난항을 겪던 폭스바겐그룹이 중국 기술에 항복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지난 14일 중국 안후이성 공장에서 샤오펑과 공동 개발한 'ID.유닉스 08(ID.UNYX 08)'의 양산 라인 가동을 시작하며 상반기 출시를 예고했다. ID.유닉스 08은 폭스바겐이 2023년 7월 샤오펑에 7억달러(약 1조440억원)를 투자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지 불과 24개월 만에 나온 결과물이다.

폭스바겐은 자체 역량으로 수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운영체제(OS)와 커넥티비티 시스템을 중국 스타트업의 기술력을 빌려 단기간에 해결했다. 실제 ID.유닉스 08은 폭스바겐 엠블럼을 달고 있지만 속내는 샤오펑의 DNA로 가득 차 있다. 샤오펑의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800V 고전압 플랫폼과 스마트 콕핏 솔루션이 대거 이식됐다.

특히 ID.유닉스 08은 샤오펑이 자랑하는 VLA(시각언어행동) 모델 기반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표준 사양으로 탑재돼 주차부터 주행까지 전 과정을 인공지능(AI)이 관장한다. 연산 능력만 1500TOPS(1초에 1500조번 연산)에 달해 폭스바겐의 기존 ID 시리즈와는 궤를 달리하는 '지능형 로봇'에 가까운 성능을 구현했다.
폭스바겐과 샤오펑이 공동 개발한 준대형 전기 SUV 'ID.유닉스 08'. 사진=폭스바겐

차체 크기는 전장 5000mm, 전폭 1954mm, 휠베이스 3030mm로 광활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CATL의 최대 95.04kWh용량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최대 730km(CLTC 기준)를 주행한다. 실내에는 14.96인치 2.4K 듀얼 스크린과 20개의 스피커, 10단계 조절이 가능한 스마트 파노라마 선루프 등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하이테크 사양이 빼곡하다.

랄프 브란트슈태터 폭스바겐그룹 중국 부회장 겸 CEO는 "ID.유닉스 08은 폭스바겐의 역대 최대 규모 신에너지차 공세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올해 중국에서 2주마다 한 대꼴로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폭스바겐이 제조 하드웨어만 공급하는 '하청 기지'로 전락했다는 비판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폭스바겐은 포드와 공동 투자했던 아르고AI에 36억달러(약 5조3640억원(를 태웠으나 2022년 폐업으로 투자금을 날렸다. 또 자체 조직 카리아드에도 70억유로(약 12조원)를 투입했으나 개발 지연으로 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았다. 최근에는 미봉책으로 리비안에 58억달러(약 8조6420억원)를 추가 베팅하며 활로를 찾고 있지만, 정작 가장 빠르고 확실한 대안은 중국 스타트업의 기술을 빌려오는 것이었다.

이런 굴욕은 폭스바겐만의 문제가 아니다. 토요타는 자체 전기차 브랜드 'bZ' 시리즈의 부진으로 중국 BYD와 합작한 플랫폼을 빌려 현지 전용 모델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이를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텔란티스는 중국 립모터 지분을 인수하며 그들의 플랫폼을 쓰기로 했다. 르노 역시 지리자동차와 협력 전선을 구축했고, 포드도 중국 업체의 저가형 플랫폼 채택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차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플랫폼과 배터리 모듈. 출처=현대차그룹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적인 전기차 생태계를 유지하며 유의미한 판매량을 기록 중인 업체는 테슬라와 현대차그룹(E-GMP), GM(얼티엄) 정도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독자적인 E-GMP 플랫폼을 통해 세계 올해의 차를 휩쓸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을 이뤄냈다. GM도 얼티엄 플랫폼으로 전동화 전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미국·일본 기업들은 중국산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솔루션 없이는 경쟁력 있는 전기차 한 대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기술적 파산' 상태에 직면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ID.유닉스 08의 양산이 레거시 제조사들에게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고 경고한다. 100년 넘게 쌓아온 엔진 제조 기술이 전기차 시대의 '바퀴 달린 컴퓨터' 개념 앞에서 무용지물이 됐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 업체들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자존심을 버리고 샤오펑의 손을 잡은 폭스바겐의 선택이 단기적인 점유율 방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기술의 폭스바겐'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잃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