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서고, 마디로 견디다

발길이 닿은 곳은 빽빽하게 들어찬 대나무 숲이었다. 마음이 허물어져 어디라도 기댈 곳을 찾다 도망치듯 들어선 길이었다. 최근 내 삶을 덮친 일들은 마치 예고 없는 해일 같았다.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서늘한 빈자리 위로 시아버님의 병환과 시어머니의 수술 소식이 겹쳐왔다. 그 틈에 친정어머니의 우울은 눅눅한 곰팡이처럼 번져갔고 나는 그 모든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기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내 안의 기둥은 갱년기라는 생애의 뜨거운 열병 속에서 속절없이 휘청이고 있었다.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늪으로 밀어 넣던 오후였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압도적인 수직의 풍경이었다. 대나무들은 마치 하늘을 향해 던져진 초록색 창들처럼 서 있었다. 그 숲에는 적막 대신 ‘사각사각’ 하는 대숲 특유의 숨소리가 가득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들은 일제히 몸을 비틀며 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비명이 아니라 몸 안의 공기를 비워내는 긴 호흡처럼 들렸다.
가만히 대나무에 손을 얹어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촉감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문득 대나무의 생애를 생각했다. 대나무가 저토록 높고 곧게 자라면서도 모진 태풍에 부러지지 않는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그 ‘비어 있음’에 있었다. 속이 꽉 찬 나무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거나 외부의 압력에 정면으로 맞서다 꺾이기 마련이지만 대나무는 제 몸 안에 거대한 바람의 길을 내어준다. 슬픔이 들이칠 때 그 슬픔을 가두어 두지 않고 제 몸을 관통해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 내 마음이 이토록 무겁고 아팠던 것은 어쩌면 밀려오는 고통들을 비워내지 못한 채 꾸역꾸역 안으로만 채워 넣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올리자 대나무의 마디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나무에게 마디는 성장의 멈춤이 아니라 더 높이 치솟기 위한 치열한 도약의 흔적이다. 마디가 없다면 대나무는 제 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아버지를 여읜 상실감, 병실을 지키며 느낀 무력감, 그리고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이 갱년기의 혼란들. 이 모든 시련이 사실은 내 생의 허리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죽절(竹절)’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숲은 고요히 일러주고 있었다. 지금 나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마디를 맺기 위해 생의 에너지를 응축하는 중이라는 것을.
고요히 숲을 응시하다 깨달은 것은 대나무는 홀로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지상에서는 저마다 독립된 개체처럼 고고하게 뻗어 있지만, 땅 밑에서는 수많은 뿌리가 서로 얽히고설켜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 한 그루가 흔들릴 때 옆의 대나무가 소리 없이 그 진동을 나누어 갖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연대 덕분일 것이다. 시부모님의 병환을 돌보고 친정어머니의 그늘진 마음을 살피는 지금의 내 고단함도, 어쩌면 우리 가족이라는 거대한 죽림을 지탱하기 위해 땅 밑에서 눈물겹게 엉켜있는 뿌리의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버티는 이 힘겨운 시간들이 결국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지지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고통의 이유를 긍정하게 된다.
또한 대나무의 푸르름은 한결같으나 결코 고여 있지 않다. 묵은 잎은 떨어뜨리고 새순을 올리는 그 치열한 순환이야말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정한 평온의 본질이다. 슬픔에 매몰되어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처럼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몸을 맡기되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정중동(靜中動)의 자세로 돌아오는 복원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저 깊은 죽림의 청량한 공기가 내 귓가에 속삭여 주는 듯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무감각이 아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되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나무의 복원력을 닮는 일이다. 이 숲을 나가는 순간 다시 일상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여전히 아픈 이들이 곁에 있고, 내 몸의 열기는 식지 않겠지만 내 안에도 대나무처럼 단단한 마디가 하나 더 생겼음을 또 알아간다. 그리고 그 마디 덕분에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리라.
숲을 빠져나오는 길, 등 뒤로 대숲의 서늘한 바람 소리가 따라왔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를 향한 낮은 응원이자 잘 견뎌내고 있다는 무언의 격려였다. 나는 비워진 마음의 마디마다 푸른 등불 하나씩을 켜고, 다시 나의 집으로, 나의 삶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김경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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