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트럼프 “미군 주둔하니 파병하라”… 입지 점점 좁아지는 한국
동맹국들 거부와 답변 회피 사이 줄타기
안보 의존도 높은 한국, 부담도 가장 커
파견하면 피격 가능성…기로에 선 정부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해협 군함 파견 요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처음에는 “바라건대”(hopefully)라는 표현으로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는 수준이었지만, 불과 사흘 만에 ‘안보우산’을 앞세운 사실상의 강요로 전환되고 있다. 동맹국들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양상이다.
외신과 미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일본·중국·영국·프랑스 등을 지목하며 호르무즈해협 항행 보호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스스로 해상 수송로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15일에는 대상 국가를 7개국으로 늘리고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며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16일에는 한층 노골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우리는 일본과 한국, 독일에 수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미군 주둔을 대가로 군사적 기여를 요구하는 ‘안보 청구서’를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실제 외교 채널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호르무즈해협 안전 확보를 위한 국제 협력 필요성이 언급됐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미국이 공식적인 협조 요청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다만 조 장관은 ‘파병 요청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문제는 이러한 압박이 한국에 특히 더 무겁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과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주한미군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재임 시절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거론한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군사·경제 카드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이 최근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한 점을 들어 향후 관세 압박까지 연계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면 유럽 주요국들은 비교적 명확하게 선을 긋거나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독일 메르츠 총리는 “우리 전쟁이 아니다”라며 군사적 기여를 거부했고,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역시 “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프랑스도 교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의 개입에는 선을 그으며, 분쟁이 진정된 이후 제한적 역할 가능성만 열어둔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킹스칼리지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강압적으로 다뤄온 결과, 각국이 가능한 한 거리를 두려 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 국가 역시 미국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WSJ은 동맹국들이 명확한 거부 대신 ‘회피 전략’을 택하는 이유로 미국과의 안보·경제적 연결성을 지목했다. 실제로 일부 유럽 전문가들은 제한적 군사 지원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일본의 대응은 한국과 유사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확답을 피하면서도 자위대 파견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16일 참의원에서 “법적 틀 안에서 가능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혀 군사적 참여 여지를 남겼다. 특히 19일 예정된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일본이 미국 요구에 일정 부분 호응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결국 한국은 ‘거부도, 수용도 쉽지 않은’ 진퇴양난에 놓인 셈이다. 파병을 거부할 경우 한미 동맹 균열이나 추가 압박을 감수해야 하고, 반대로 참여할 경우 이란의 미사일·드론 위협에 직접 노출되는 군사적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 일본과 유럽의 대응을 지켜보며 다자적 틀 속에서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우산’을 지렛대로 동맹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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