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안아, 집에 가자, 나랑 가자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응옥(가명) 언니도 왔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절 밖을 맴도는 언니의 도착을 수영(가명)이 전했다.
셋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언니의 결혼 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듣고 친구는 크게 기뻐했다. 베트남인 엄마가 한국인과 재혼한 언니는 베트남에서부터 친구와 가까운 이웃이었다. 친구가 유학 온 한국 대학에서 다시 만나, 같은 학과에서 친해진 수영까지 셋은 절친이 됐다.
“(언니가 온 걸) 모를까 봐 알려주는 거야.”
셋이 만난 나흘 뒤(지난해 10월28일) 친구는 죽었고 언니는 결혼식을 연기했다. 임신 중인 언니는 친구의 곁으로 오지 못하고 울음을 삼켰다. 부모와 지인들이 이른 새벽(12월13일) 대구의 한 사찰에 모여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가자.”
목소리 크게 외쳐도 되고.
장례 의식을 치르는 베트남인들은 영혼이 따라오도록 이름을 불렀다. 발걸음마다 불러야 혼자 남아 떠돌지 않는다고 믿었다. 세상이 무너졌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온 ‘그날’도 친구의 엄마는 덮개에 싸여 공장 바닥에 누워 있는 딸을 찾았다. 어디 있니,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옷 잡아. 화장장으로 이동할 땐 길 잃지 말고 소리를 좇아오라며 동전을 떨어뜨렸다.
“집에 가자.”
가만히 속삭여도 되고.
영혼을 모셔가려면 고인과 가까운 두 사람이 유골을 안고 가야 했다. 딸의 사망 책임을 물어야 하는 부모는 한국을 떠날 수 없었다. 친구의 삼촌이 49재에 맞춰 조카를 데려가려고 베트남에서 입국했다. 삼촌이 가방에 유골을 넣고 가슴에 품었다. 엄마와 아빠는 공항에서 딸을 보냈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영혼을 배웅할 땐 울어선 안 됐다. 산 자들이 울면 혼이 걱정하느라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고 여겼다. 혼을 인도하는 남은 한명의 역할은 수영이 맡았다. 수영이 친구를 불렀다.
“뚜안(25)아, 가자, 나랑 가자.”
말없이 생각으로만 해도 괜찮았다.
“잘 따라와야 해. 어디 가면 안 돼.”
뚜안이 날아올랐다. 한국에 유학(2018년) 온 지 7년 만에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사랑했던 나라에서 쫓겨나듯 떠났다.
“공장에 무슨 일 있어?”(10월28일 오후 3시15분)
그 문자를 시작으로 수영은 그날 뚜안과 분 단위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뚜안이 일하는 자동차부품 공장(대구 성서공단)에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반’이 들이닥쳤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한다며 한달 전부터 단행된 ‘손님맞이 대청소’였다. ‘합법체류자’ 뚜안은 3층 창고에 숨었다. 작고 낮은 테이블 아래 엎드렸다. 뚜안의 구직비자(D-10은 전문직종이나 첨단기술 분야 취업 활동만 허용)로는 제조업에서 일하지 못했다. 공단의 회사들은 외국인 없이 공장을 돌릴 수 없었고 외국인 유학생들은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등록금도 낼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워(3시26분)… 조금 전 출입국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어(3시39분)… 다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어(4시39분)… 너무해(4시41분)… 평생 잊지 못할 거야(4시53분)… 죽겠어, 어떡해(5시20분)….”
차를 몰고 공장으로 간 수영이 정문 밖에서 단속 상황을 전했다.
“나오지 말고 계속 숨어 있어(4시51분)… 40명 잡았다는데 아직 철수 안 했어(5시10분)… 아직 못 찾은 사람 찾고 있어(6시26분)… 힘내, 조금만 기다려(6시27분)… 어디야, 다 갔어, 너 어디야(6시38분)….”
마지막 문자를 뚜안은 읽지 않았다. 수영이 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뚜안은 1층 공장 바닥에서 발견됐다. 의식을 잃은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안 돼. 울지마.”
삼촌이 소리쳤다. 호찌민 공항에서 뚜안을 맞은 할아버지와 숙모가 터지는 울음을 손으로 막았다.
“울면 뚜안이 못 떠나.”
울음을 금하는 삼촌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단호해서 수영은 놀랐다. 남동생이 굳은 얼굴로 누나의 영정을 받아 들었다. 공장 일을 하겠다는 딸을 아빠가 말렸을 때 뚜안은 듣지 않았다. 부모를 대신해 7살 어린 동생의 학비를 책임지는 것이 딸이자 누나인 뚜안의 꿈이었다.
할머니(엄마의 모)는 절에서 뚜안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좋지 않은 할머니를 걱정해 가족들이 공항 가는 걸 말렸다. 향불 든 스님이 뚜안을 인도했다. 유골과 영정을 제단에 모셨다. 밥과 차와 염원을 올렸다. 울음이 비운 자리를 염불과 종소리가 채웠다. 49재를 마쳤을 때 비가 쏟아졌다.
한국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뚜안은 꽃으로 가득한 할머니(꽃장사) 집에서 살았다. 베트남 전쟁 뒤 뚜안 엄마 가족은 파괴된 북쪽 고향을 떠나 남쪽의 호찌민으로 이주했다. 가족을 북쪽에 두고 일거리를 찾아 내려온 아빠가 엄마를 만나 결혼해서 할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그 집에서 뚜안과 동생은 태어났다. 딸 부부가 돈을 벌러 한국으로 떠났고 손녀는 공부하러 한국으로 따라갔다. 손자만 남은 할머니의 집으로 손녀가 작은 함에 담겨 돌아왔다. 전쟁과, 폐허와, 이주와, 삶 또는 죽음의 무게를 누구의 저울에 올려 따져야 할지 할머니는 뚜안의 옷을 태우며 혼란스러웠다.
“이제 가보렴.”
수영은 그 집에 사흘을 머물며 뚜안에게 분향했다. 사흘째 되던 날 “뚜안을 무사히 데려와줘서 고맙다”며 할머니가 말했다. “그만하면 됐으니 할머니 걱정 안 하게 어서 가보라”고 했다. 수영의 할머니 집도 호찌민에 있었다. 14년 전 수영은 엄마 아빠를 따라 한국으로 귀화했다. 귀화 전 수영도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부모를 졸라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에 ‘이렇게’ 같이 오게 될 줄 몰랐어.”
뚜안의 혼에 팔짱을 끼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 수영은 오래되지 않은 약속을 떠올렸다. 5개월 전 수영이 베트남에 왔을 때 뚜안도 동행하길 원했다. 할머니와 동생이 보고 싶었지만 졸업(지난해 2월) 뒤 일을 구하지 못한 뚜안은 비행기표 값이 부담스러웠다. 다음엔 꼭 같이 오자던 약속을 ‘이렇게’ 지키게 될 거라고 수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반년이 안 돼 다시 만난 손녀에게 수영의 할머니는 거꾸로 뚜안 할머니를 염려했다. “친구 할머니 옆에 있으라”며 수영의 등을 밀었다. 딸과 손녀를 한국에 보낸 할머니들은 서로를 몰라도 서로의 애달픔은 알았다.
띠엔은 여전히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수영은 하노이로 띠엔을 만나러 갔다. 띠엔도 대구로 유학 왔으나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못해 미등록이 됐다. 뚜안이 추락사했을 때 띠엔은 같은 공장 같은 층에서 일했다. 뚜안이 2층에서 3층으로 도망치기 직전 띠엔은 2층에서 내려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입하는 단속반을 발견하고 동료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다 첫번째로 수갑을 찼다. 면회 온 수영에게 뚜안의 죽음을 듣고 울먹이던 띠엔은 며칠 뒤 강제 출국돼 베트남에 돌아와 있었다. 띠엔은 베트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갑작스런 단속·추방과 친구의 사망으로 몸과 마음이 크게 위축돼 있었다.
김해공항행 비행기 안에서 수영은 띠엔이 해준 말로 어지러웠다. 띠엔이 단속반에게 가장 먼저 잡힌 이유가 있었다.
“베트남에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그랬어. 단속 들어오면 도망치지 말라고. 다치는 것보다 잡히는 게 낫다고. 잡혀서 베트남 돌아 오면 된다고. 돈 버는 것보다 무사한 게 먼저라고.”
엄마의 당부대로 띠엔은 순순히 체포됐고 지금도 살아 있었다. 수영은 후회했다. 그날 뚜안에게 속보 전하듯 단속 상황을 알리지 말걸. 그냥 힘내라는 말만 할 걸. 불안해하지 말라고 진정시킬 걸. 잡혀도 괜찮다며 안심시킬 걸.
뚜안 엄마도 같은 후회로 자책했다. 그동안 딸에게 열심히 살라고만 했다고. 학교 다닐 땐 열심히 공부하라고, 졸업 뒤엔 열심히 일 찾으라고, 계속 “열심히 열심히”만 강조했다고. 위험하게 도망치지 말라고 왜 못 했을까. 비자가 있으니 잡혀도 벌금만 내면 된다고, 어쩔 수 없이 베트남 돌아가도 큰일 아니라고, 그동안 할 만큼 최선을 다해준 것만도 고맙다고, 왜 그 말을 못 해줬을까. 엄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수영이 뚜안의 49재를 치르고 귀국한 지 일주일 뒤 대구 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이 부모에게 사과(12월31일)했다. 뚜안의 죽음을 고인의 실수라고 주장하던 한국 정부는 뚜안 아빠가 아스팔트에 오체를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농성한 뒤에야 강압 단속을 인정했다.
수영은 그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라도 친구를 부르며 말해주지 않았다. 다신 뚜안에게 한국 소식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구가 베트남에서 따뜻하고 평화롭게 안식하기만 원했다. 뚜안의 마음 한 가닥이라도 이 추운 나라에 남아 있지 않길 바랐다. 몸이 얼어붙는 냉기는 ‘대한민국이 내 나라’인 수영(☞17회 ‘우리? 너희? 그냥 나!’)의 혈관으로도 예고 없이 침범했다.

이문영 | 이슈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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