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은 위헌이다

한겨레 2026. 3. 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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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 경로 논란
시민사회연대단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공론화위원회는 ‘볼록 감축 경로’ 포함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권경락 | 플랜1.5 정책활동가

뜬금없이 ‘볼록이 위헌’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바로 국회에서 진행 중인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공론화 얘기다. 지난 2월 초부터 추진 중인 공론화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 경로를 정하기 위한 절차다. 시민 300명과 청소년 40명으로 구성된 시민대표단의 숙의로 이달 말 진행된다.

이는 재작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한 후속 조치다. 2024년 8월 헌재는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법률로 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엔 올해 2월까지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동시에 헌재는 “전 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우리나라 몫을 정하고”,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말아야 한다”는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따라서 이번 공론화 과정에선 시민대표들에게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함께 헌재 결정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감축 경로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입법 기준은 조만간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것 같다. 국회 공론화위원회가 시민대표단에 물어볼 2050년까지의 감축 경로에 대한 설문 문항에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볼록 경로’를 포함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항으론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동등하게 부담하는 ‘선형 경로’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는 ‘오목 경로’가 함께 제시된다.

볼록 경로는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0이 되는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가는 배출 경로 선의 모습이 위로 볼록한 형태를 의미한다. 즉, 지금은 거의 줄이지 않으면서 2050년 즈음에 가서야 한꺼번에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 경로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위헌이다. 동시에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기술 개발에 전적으로 기대는 방향이라 믿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벼락치기로 한 숙제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이렇게 위로 볼록한 형태의 감축 경로를 불과 3년 전에 본 적이 있다. 바로 윤석열 정부가 2023년에 수립한 ‘탄소중립기본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를 줄이는 문재인 정부의 감축 목표를 유지하긴 했지만, 산업계의 끈질긴 로비로 2030년까지 가는 경로를 위로 볼록하게 설정했다. 그 결과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감축 부담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했고, 나머지 4분의 3에 해당하는 몫을 다음 정부에 떠넘겼다. 당시 ‘국제적 기준에 따른 목표 설정’을 요구한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제1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감축 부담을 피해가려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지난 3년 사이 윤석열 탄핵과 함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민주당은 16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 구조 개혁에 대한 시민의 열망도 크다. 시민사회에선 이번 국회 공론화가 헌재가 제시한 입법 기준의 범위 내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위는 명백히 위헌인 ‘볼록 경로’를 아직까지 제외하지 않고 있다.

만약 공론화위가 ‘선형 경로’와 ‘오목 경로’만 제시하는 것이 균형에 맞지 않고 시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기계적 균형’만 생각한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명백하게 위헌인 ‘볼록 경로’를 선택지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의 권위와 규범력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 합의인 헌법을 여론조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같다.

이재명 정부는 작년에 이미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2035년 기준 2018년 배출량 대비 최소 53% 이상 줄이겠다는 감축 목표를 제출한 바 있다. 여기서 53%는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에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동등하게 부담을 나누는 ‘선형 감축 경로’가 2035년일 때 지나는 숫자다. 만약 공론화를 통해 결과가 ‘볼록 경로’로 도출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미 우리나라는 선형 경로 이상의 감축 목표를 국제 사회에 약속했기에, 이를 후퇴시키는 것은 파리협정의 ‘진전의 원칙’ 위반에 해당한다. ‘볼록 경로’라는 결과가 나와도 실제 국회가 이를 입법할 순 없다는 뜻이다. 위헌이면서 의미 없는 선택지를 시민들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의 위험성에 대해 “인류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연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옥으로 달리는 기차에 탑승한 것이나 다름없다. ‘상황을 봐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만으로 성공할 리 만무하다. 공론화 과정의 선택지엔 실제 써먹지도 못할 가짜 선택지가 아닌 진짜 선택지가 필요하다. 탄소중립으로 달리는 기차 위에 기계적 중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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