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에 사람 대신 '야생동물' 담는 영국...다른 나라도?
'선택된' 자연의 기준은?

영국 중앙은행(Bank of England)은 11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차기 지폐 테마로 영국 토종 야생동물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대국민 의견수렴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자연을 선택한 응답이 전체의 약 6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여름 추가 의견수렴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지폐에 담을 야생동물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현금 사용 비중은 줄고 있지만, 지폐는 여전히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매체다. 물건을 사고받는 과정에서 손에 쥐어지는 만큼, 화폐에 담긴 이미지는 장기간에 걸쳐 대중에게 노출된다. 어떤 이미지를 넣느냐는 곧 국가가 무엇을 상징으로 내세우는지, 인식으로도 연결된다.
화폐 속 야생동물, 영국이 처음은 아냐

한국은 대표적으로 500원 동전에 두루미가 그려져 있다. 장수와 고결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야생 개체 수는 제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다만 화폐에서는 보전보다 상징적 의미가 더 크기로 알려졌다.

브라질은 황금사자타마린을 지폐에 담았다. 한때 개체 수가 급감했지만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된 종으로, 보전 성과가 반영된 경우다. 뉴질랜드는 노란눈펭귄을 5달러 지폐에 넣었고, 르완다는 마운틴고릴라를 국가 상징으로 활용한다. 필리핀 역시 필리핀수리를 지폐에 넣어 자국 생물다양성을 상징하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은 동물을 화폐에 담는 방식과 의미를 달리해왔다. 사례를 개별적으로 보면 다양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전 세계 화폐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일정한 흐름이 드러난다.
선택된 자연, 국가의 생물다양성 반영하지는 않아
호주 그리피스대 연구진(Beaudee Newbery 등)이 2024년 학술지 People and Natur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7년까지 전 세계 207개국에서 발행된 지폐 4541장을 분석한 결과 전체 지폐 가운데 약 15.2%에 야생동물이 등장했다. 확인된 종만 352종, 총 841건의 동물 이미지가 포함됐다.
화폐 이미지는 가장 보편적으로 노출되는 공공 이미지면서, 어떤 동물이 선택되는지를 통해 사회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살펴보자는 연구다.
지폐에 등장하는 동물은 어느 한 특징에 강하게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전체 종의 약 83%가 조류와 포유류였고, 약 90%는 육상종이었다. 이는 실제 생물다양성 분포와는 다른 양상이다. 종 다양성이 높은 양서류나 무척추동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멸종위기종도 적지 않았다. 지폐에 등장하는 동물 가운데 약 30%는 멸종위기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종 대비 비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선택이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특정 종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인식을 높이기 위한 방식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지폐에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종에 대한 인식이나 보호로 이어지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남는다. 연구에서는 화폐 이미지가 널리 노출되는 만큼 상징적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인식 효과는 시민 인지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도 언급한다.
또 하나 확인된 특징은, 지폐에 등장하는 종이 반드시 해당 국가의 생물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화폐에 등장하는 동물은 대부분 토착종이지만, 실제 종 다양성과 비례해 선택되지는 않았다. 즉, 국가를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종이 선택되는 경향이 더 뚜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