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능보다 백 배 어려운 ‘체류자격’ 입증, 당신은 할 수 있겠나

김양진 기자 2026. 3. 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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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주배경 청년 옭아매는 비현실적 비자 조건들… 법으로 불법체류 강요하는 꼴
2005년 초등학교 운동회 때 오정민씨가 한국 전통 의상을 입고 밝게 웃고 있다. 오정민 제공

2015년 3월 난데없이 “비자를 변경하지 않으면 대학 생활은 물론 한국에 더 머물 수도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세 살 때부터 16년 동안 한국에 살았는데,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동반비자(F-3) 신분이어서 이제는 유학생비자(D-2)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알려준 곳은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이 아니라 그해 입학한 대학의 입학처였다. 심지어 비자 변경 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부랴부랴 관련 서류를 챙겨 D-2 비자로 변경했다.

“‘이게 뭐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갑자기 저보고 ‘너는 외국인(몽골인)이야’라고 하니까요. 그때야 제 비자를 인식하게 됐죠. 임시로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받고 있었던 거라는 얘기입니다.” 2026년 3월9일 경기도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만난 오정민(30·가명)씨의 말이다.

정민씨는 한국에서 무역업을 하는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1999년 한국에 왔다. 어머니는 무역경영 체류자격인 D-9 비자로 한국에 거주했다. 정민씨는 초중고를 모두 고양시에서 나왔고, 한국에 온 이후 지금까지 몽골 여행을 다녀온 건 다섯 번뿐이다. 2016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몽골에는 가까운 친척도, 머무를 곳도 없다. “엄마한테 배워서 (글자를) 쓸 줄은 몰라도 몽골말을 하긴 해요. 그래도 몽골 사람들이 보기에는 몽골말 잘하는 한국 사람 수준이에요.”

“너는 외국인이야”

대학 입학과 동시에 겪었던 정민씨의 위기는 더 큰 위기들의 서막에 불과했다. 정민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1년 정도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다. 또래들처럼 흔한 방황을 했다. 돌아온 결과는 험악했다. 2년제 대학을 다니는 정민씨의 D-2 비자 기한은 딱 2년이었다. 2년 기한에 맞춰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비자가 취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서둘러 비자 갱신을 위해 출입국에 갔더니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돈 벌었지? 일하려고 수업 안 들은 거지?”(출입국 담당 공무원)

결국 정민씨는 지난 2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담당 공무원에게 세세하게 입증해야 했다. 그러고도 몇 년 뒤 정민씨는 미등록 신분이 됐다. 20년 넘게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정민씨 같은 ‘서류상 외국인’을 아무렇지 않게 미등록 신분으로 추락시킨 이 사례는 한국의 이민·비자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폭력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민씨가 출입국에 D-2 비자로 대학에 다닌 2년을 세세하게 설명했음에도 미등록 신분이 된 건 취업의 어려움 때문이다. 정민씨는 졸업반 때인 2017년 하반기부터 전공(호텔관광학)을 살려 실습을 나가보려 했지만 단 한 번도 실습할 수 없었다. 정민씨처럼 2년제 대학을 나오면 전공 관련 업종, 즉 ‘호텔 접수 사무원’(직코드 3922)으로만 일할 수 있다. 통역 등 다른 일은 원천 금지된다. 그마저도 전년도 숙박 인원 중 외국인 비율이 15% 초과(비수도권 기준, 수도권은 30% 초과)하는 호텔에만 취업할 수 있도록 못박아놓았다. 웬만큼 큰 규모가 아니고서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정민씨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는 취업이 가능한 호텔이 5성급 몇 곳뿐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경력 없는 신입사원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다. 취업이 연계되는 실습생을 모집할 일도 없었다. 법무부가 D-2 비자 소유자에게 취업할 수 있는 회사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아둔 것이다.

취업할 수 없는 구직비자

대학 졸업 뒤인 2018년이 되자 D-2 비자를 구직비자(D-10)로 바꿔야 했다. 그러면서 6개월마다 구직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사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었다. D-10 비자 역시 최대 기한은 2년이었다. 2년 동안 취업을 못하면 미등록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서도 조건을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법무부는 ‘호텔 접수 사무원’의 업무 내용까지 세세하게 정해놓았다. 호텔 데스크 업무 외에 청소 등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연봉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약 3천만원) 이상을 줘야 한다. 고용사유서·추천서·납세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출입국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 국적자도 취업이 쉽지 않은 시기였다. “100곳 넘게 원서를 넣었어요. 가족 도움을 받아 면접도 보러 다녔죠. 취업하기도 했어요. 2주 정도 일했죠. 그런데 호텔 쪽에서 출입국에 알아보더니 ‘외국인 손님 기준이 안 돼서 채용하면 안 된다더라’고 했어요. 다른 데 알아봤지만 ‘조건’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정민씨의 말이다.

2020년 정민씨는 결국 미등록 신분이 됐다. 지금은 단속을 피해가면서 이삿짐센터와 건축 현장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미성년 이주배경 학생이 성인이 되면 체류자격을 바꿔야 한다는 정보 자체를 가족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나 출입국에서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라 사실 알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2026년 2월26일 용산나눔의집이 개최한 ‘이주배경 후기 청소년 주거비 지원 장학사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이주배경 고등학생들이 고민을 적어 놓았다. “선생님께서도 잘 모르셔서 할 수 없었던 입시상담’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제공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동을 제공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경로를 마련하기보다 체류자격을 끊임없이 심사하고 걸러내는 데 더 큰 비중을 둔 한국의 이민정책은 외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초중고를 졸업하는 등 한국 사회가 키워낸 ‘외국인’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91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는 사람’(2025년 215만9052명)이라는 범주로 ‘장기체류 외국인’으로 보거나 ‘방문동거 및 동반비자 체류자’(2024년 15만1702명)라고 부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관련 통계도, 실태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의 한 중등교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반 친구들보다 한두 살 나이가 많은 동반비자(F-1·F-3) 자격 이주배경 학생들은 고교 재학 중 19살이 되고 ‘미등록’이 되고 나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또 고교 진학 때 학생의 적성을 고려해 특성화고 제과제빵과를 추천했는데 이후 제과제빵업이 출입국이 정한 외국인에게 허용된 90여 개 직종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돼 새로운 전공을 찾아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용산나눔의집’은 2025년 비자 제도를 분석해 ‘외국인 가정 자녀의 진로 계획을 위한 기본 정보’라는 안내문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25년 4월 정민씨처럼 한국에서 성장한 외국인을 위한 ‘특화 취업 비자’(E-7-Y)가 신설됐다. 대학 진학 외에 취업 등 삶을 다르게 살아볼 시간을 벌어준 작은 진전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초중고를 모두 졸업해야 하는 등 대상이 협소하고 신청 가능 연령도 24살까지다. 이 때문에 신청자도 2026년 2월 기준 12명에 그쳤다. “한국 비자 정책은 문제의 근본을 고치기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비자를 만드는 식으로 대응해왔어요. 고교를 졸업했는데도 합법적인 취업이 어렵다고 문제 제기를 해왔더니 ‘그래, 그러면 취업 길도 어느 정도는 열어줄게’라는 정도의 상상으로 E-7-Y 비자를 만드는 식이죠. 이 친구들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한국에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건데 자꾸 곡해하죠.” 강다영 용산나눔의집 활동가의 말이다.

202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을 위한 입법·정책적 대응 방향과 향후 과제’ 보고서가 ‘국내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이주아동·청소년에게 완화된 조건으로 영주 체류자격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에 투자한 한국 사회에도 보상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대안을 내놓은 건 그런 까닭에서 비롯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동생들

정민씨의 어머니도 27년 동안 한국에서 사업하며 꼬박꼬박 세금을 냈지만 영주권 신청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낸 ‘비자 내비게이터’(2022년 12월)를 보면 영주권자가 되는 조건은 간단하다. ‘거주비자(F-2) 체류자격으로 5년 이상 국내 체류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생계유지 능력과 기본 소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정민씨 어머니는 다른 조건들은 물론 연소득 약 1억원으로 ‘전년도 1인당 GNI 2배’ 기준까지 충족했다. 하지만 무역업 특성상 소득이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이 탈락했다. 노동소득처럼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소득만이 영주권 취득을 위한 소득으로 인정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렇게 한국의 영주권 취득을 위한 소득 기준 요구는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024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엄격한 소득 기준 때문에 한국의 영주권 취득은 어렵다. 장기체류자 가운데 영주권을 가진 비율은 9.9%에 불과하다. 일본의 37%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 높은 소득 기준은 특히 젊은 노동자에게 큰 장벽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민씨는 대학생인 동생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냇동생을 두고 “지금이라도 몽골어를 가르쳐서 몽골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게 우리 가족의 요즘 고민”이라고 말했다. 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났고, 정민씨와 달리 몽골어를 모른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자기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한국에서 자라 학교 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스스로 선택해 일하거나 공부하려고 온 이주노동자·유학생과 어떻게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건가”라며 “법무부는 형평성 운운하는데, 안정적으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정주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젊고 건강할 때 일하게 한 뒤 늙으면 돌아가라는 게 지금 체류 관리의 기조”라고 지적했다.

“체류자격을 부여할 때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맞출 수 없는 요구를 비공개 내부 지침이라며 내세워요. 가족관계증명서를 내면 유전자 검사지를 가져오라는 식이죠. 그걸 못 넘으면 ‘그래서 너는 탈락’이라는 식이에요.” 김 연구위원의 말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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